[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가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함에 따라 근 1년간 이어지던 삼성의 총수 유고 사태도 끝나게 됐다. 이 부회장은 석방 직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만나러 간다”면서 경영일선 복귀 시점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항소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하겠다"고 강조했다.

외신은 리더십 공백에 빠진 삼성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가 현실이 되자 재계의 시선은 삼성의 ‘다음 행보’로 쏠리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렸기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한편, 기업 전반의 꺼져가는 성장 동력을 키우려는 노력이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에 휘말려 그룹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는 한편, 주요 임원들이 퇴직함에 따라 리더십 공백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물론 이 부회장의 공백에도 삼성전자는 사장단 인사를 통해 50대 사장을 전면에 포진시키고 인텔리전스 가전 인프라 강화에 나서는 등 의미있는 행보를 이어왔으나 장기적인 계획을 짜는 것은 요원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의 귀환에 삼성은 물론 재계 전반이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핵심 먹거리를 분명하게 발굴하고 지속적인 정책 로드맵을 구성하는 것이 돌아온 이 부회장의 당면과제라는 말이 나온다.

올해 창립 8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는 지난해 영업이익 54조원, 매출 239조원이라는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최고의 순간이다. 그러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 수퍼사이클(장기호황)에 힘입어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지만,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영역에서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시스템LSI 사업은 지난해 4분기 OLED DDI 공급은 증가했으나 AP와 이미지센서 수요가 감소했으며 파운드리 사업도 주요 거래선용 제품의 판매 둔화로 실적이 악화됐다.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영업이익 10조9000억원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에서 나왔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를 유지하며 전체 반도체 시장의 강자인 인텔을 압도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순간인데다 다음 먹거리인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에서 주춤하는 것은 충분한 위험요소다.

디스플레이 사업도 지난해 영업이익 1조4100억원, 매출 11조1800억원을 기록하며 숨 고르기에 나섰다.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 9700억원과 비교하면 실적이 소폭 상승했으나 계절적 비수기와 패널 가격 하락으로 의미있는 성과는 요원했다는 설명이다.

스마트폰 사정은 더 나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IM부문에서 영업이익 2조4200억원, 매출 25조47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3조29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주춤하는 분위기다. 비수기로 꼽히는 4분기라지만 갤럭시 스마트폰 브랜드 위상이 다소 흔들렸다는 말이 나온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지난해 4분기 기준 1위 자리를 애플에 내줬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1일(현지시각) 지난해 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스마토폰 7440만대를 출하, 점유율 18.6%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으나 중저가 라인업이 뒤를 받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톱10에 들지 못하고 있으며 지난해 4분기 인도 시장에서는 샤오미에 밀려 2위로 주저앉았다.

미국에서는 아이폰X를 내세운 애플에 더블 스코어 차이로 밀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1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4분기 미국 스마트폰 판매량이 총 5120만대이며, 여기서 2239만대가 아이폰이라고 밝혔다. 애플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한 44%를 기록했으며 삼성전자는 21.1%로 크게 위축됐다.

생활가전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5100억원, 매출 12조7200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프리미엄 TV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는 곳이 없다. 최근 미국의 삼성전자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등 대외환경도 크게 악화되고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각 사업부의 사정을 살펴보면 심각한 불안요소가 산적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강조해온 뉴 삼성(New Samsung)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각 사업부 점검에 나서는 한편,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조 단위의 투자계획이 필요한 만큼 실질적 총수인 이 부회장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지난해 가동한 평택 반도체 공장도 이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인수합병도 고려가능한 선택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구속된 후 전장사업체 하만, 그리스 음성기술업체 이노틱스, 인공지능 국내 스타트업 플런티를 인수합병했다. 하만 인수합병이 이 부회장 구속 전 결정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노틱스와 플런티만 인수한 셈이다. 그러나 이노틱스는 인수가격이 5000만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플런티는 국내 스타트업에 불과해 큰 의미를 보여하기 어렵다.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시기와 180도 다르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와병 후 총수 역할을 맡으며 총 14건의 인수합병을 지휘했다. 면면도 화려하다. 2014년 8월 스마트싱스, 콰이어드사이드를 비롯해 11월에는 서버용 SSD 소프트업체인 프록시멀데이터를 인수했으며 2015년 11월에는 브라질 문서 출력관리 기업인 심프레스도 전격 인수했다. 2015년 2월에는 삼성페이의 모체가 된 루프페이를 인수했고 3월에는 사업용 디스플레이 시장 전통의 강자인 예스코일렉트로닉스도 손에 넣었다.

2016년 6월에는 클라우드 업체 조이언트, 스마트TV의 애드기어도 연이어 인수했고 8월에는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주택 및 부동산 관련 시장에서 럭셔리 가전 브랜드로 명성이 높은 데이코도 품었다. 삼성전자 인공지능 기술력 핵심인 비브랩스 인수에도 이 부회장의 결단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해 잠시 중단됐던 인수합병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 루프페이 기술로 구현한 삼성페이 서비스. 출처=삼성전자

한편 삼성은 이 부회장의 귀환을 두고 별도의 공식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으나 크게 안심하는 분위기다. 삼성 관계자는 “리더십 부재로 걱정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부터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