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가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은 구속 1년 만에 풀려났다. 구속 353일 만이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 전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황성수 전 전무도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모두 자유의 몸이 됐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 대해 "삼성의 후계자이자 삼성전자 부회장, 등기이사로서 이 사건 범행을 결정하고 다른 피고인들에게 지시하는 등 범행 전반에 미친 영향이 크다"면서도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긴 어려웠던 점, 수동적으로 범행에 이르렀고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혐의가 2심에서는 대부분 무죄가 됐다. 2심 재판부는 포괄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재단 출연금도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특검이 재단 출연금을 뇌물로 규정하며 일반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 모두 포함해 기소했으나 무위로 돌아간 셈이다. 거의 대부분의 대기업이 재단에 출연금을 냈기 때문에, 이 지점이 무죄가 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정유라 승마지원에서 마필제공에만 일부 뇌물죄를 적용했을 뿐이다. 가장 형량이 높은 해외자금도피 혐의도 1심에서는 일부 인정됐으나 2심에는 무죄로 결론났다. 논란을 일으킨 0차 독대로 인정되지 않았고 국회위증혐의도 무죄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 부회장 공백이 길어지며 삼성은 근 1년간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특검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며 최태원 SK 회장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등 대부분의 그룹 오너들에 대한 수사를 종결한 후 사실상 이 부회장과 삼성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2심 판결로 특검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삼성의 반응은 아직 조심스럽다. 조만간 공식입장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부재가 길어지며 삼성의 성장동력 발굴이 늦어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 부회장의 복귀로 모든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기는 어렵겠지만, 이제 조금은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옥중에 있으면서도 간접적이지만 삼성을 원만하게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사장단 인사를 통해 50대 최고경영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1월 폐막한 세계최대 가전제품 전시회 CES 2018도 무난하게 마쳤다는 평가다. 최근 삼성전자는 동남아시아의 그랩택시와 업무혁약을 통해 현지 스마트폰, 모빌리티,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 공략에 나서는 한편 중국 완다 그룹과 손잡고 중국 LED 극장을 개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헤쳐가야할 파도도 높다.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 수퍼사이클(장기호황)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중심의 경쟁력은 아직도 요원하다. 스마트폰은 지난해 4분기 애플에 밀려 2위로 떨어졌으며 생활가전 경쟁력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이 부회장 구속 전에는 삼성페이의 근간이 된 루프페이 등 굵직굵직한 인수합병이 줄을 이었으나 현재는 하만 인수 후 뚜렷한 성장동력발굴도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브랜드 평가 전문 컨설팅업체인 브랜드파이낸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아마존과 애플, 구글에 이어 4위에 랭크되어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선정한 지난해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는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포천이 선정한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는 5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이 부회장 구속 기간이 길어지며 삼성전자의 위상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뜻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 공백이 길어지는 사이 삼성전자는 큰 문제없이 운영되어 왔으나 이는 사전에 세워둔 계획이 이뤄질 것일 뿐”이라면서 “재계에서도 기대가 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