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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돼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02.05  17:34:27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이 있다. 주로 해병대에서 사용했는데, 요즘은 보통 사람들도 많이 쓴다. 직장 내에선 특별한 업무를 제외하면 예정된 스케줄을 미리 알거나 시간 조절이 가능하다. 또 외부와 관련된 일이라 하더라도 상호간의 협의를 통해 받아들여진다.

커뮤니케이션 세계는 다르다. 미리 알 수도 없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상장사라면 웬만한 사항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다. 중요 사항은 공시로 알려야 한다. 언론은 공시 나간 사실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내용을 파고든다. 언론은 뉴스, 즉 새로운 사안에 대해 알리는 것을 업으로 삼지, 이미 알려진 이야기를 또 전파하지 않는다. 공시처럼 이미 알려진 사안이라면 최소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부분을 추가 하든지 아니면 다른 알려지지 않은 것들과 함께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

 

잡아떼고 도망가면 결국 Deadline에서 죽는다

발제 한 주제에 대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취재해서 기사화 하고자 한다. 그것도 마감 시한 내에 원고가 제출된다. 요즘은 기사 작성, 탈고, 데스킹해서 편집하고 출고되는 것이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인쇄된 신문들은 멀리 있는 지방부터 먼저 배송된다. 윤전기에서 일찍 인쇄를 마친 신문 즉, 가판이라 하는데, 이후 몇 단계 작업을 더 거쳐 수도권 배달판 신문이 완성된다. 이를 위해 오후 서너 시까지 약속된 시간 내에 원고가 완성되어야 한다. 때문에 기자들은 인정사정 봐 줄래야 봐 줄 수가 없다. 사안에 대해 정보를 파헤치고 마감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예민해지고 급해진다. 오죽했으면 약속된 기사 마감 시간이 데드라인 (Deadline)이라는 섬뜩한 표현으로 굳어졌을까?

취재할 때 관련자들과 직접 연락이 힘든 경우에는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 사안에 대해 알만한 다른 사람들을 찾게 된다. 때를 놓친 제대로 된 기사보다는 조금은 불충분하더라도 좀 더 앞서 보도할 수 있다면 언론은 후자를 택한다. 일단 선점 후 후속 보도의 형태로 추가 취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포탈에 게재된 속보들 중에는 십여자 내외의 제목만 딸랑 올라온 기사도 많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보던 동료들은 한결 같이 농담을 던지곤 한다.

“핸드폰 꺼 버리고 그냥 잠수 타요.”

“자리 비우고, 없다고 해요.”

“그냥 모른다고 딱 잡아 떼요.”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진짜 커뮤니케이션 담당이라면 아무리 난처한 상황이라도 핸드폰을 꺼 버리거나, 연락을 무시할 순 없다. 모르쇠로 나갈 수도 없다. 어떻게든 회사의 입장에서 최대한 얘기하고 설명하고 이해도 구하고 납득시켜야 한다.

딱 잡아 떼거나, 핸드폰을 꺼 버리거나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락이 안 되니 취재를 포기하고 기사를 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이라 빨리 기사를 내보내야겠다고 언론사에서 판단하면 어떻게든 기사를 추진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정확히 얘기 해줄 수 있는 담당자가 연락되지 않는다면 대신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마이크가 넘어간다. 그럴 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넘겨 짚은 이야기가 회사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경쟁사나 반대 입장에 있는 기업들과 채권기관에게 마이크가 넘어갈 수도 있다. 일반론에 입각하여 말하기 좋아하는 학자가 엉뚱한 답변이라도 하게 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어설픈 루머 인용이나 ‘회사측은 답변을 거절했다’거나 ‘언급을 회피했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 이슈 내용보다 회사의 무책임한 태도가 새로운 문제를 더하게 되어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 요즘은 기사에서 댓글도 많이 인용한다. 댓글은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단지 드러난 사항에 대해 익명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강하고 독한 댓글 일수록 눈에 띄는 법이다. 그렇게 인용되는 댓글 일수록 뼈아픈 내용이 많다.

 

작정하고 파고들기 전에 머리를 맞대라

한참 전 이야기인데, 모 일간 매체에서 국내 대기업들의 창업주를 중심으로 한 성장사를 50여회 시리즈로 썼던 적이 있다. 거의 매주 대형 기획 기사를 써나간다는 것이 언론사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곤욕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체 시리즈기사 게재 기간만해도 일년이 훌쩍 넘었는데, 나중에 그 시리즈는 2권의 양장본 서적으로 발간됐다. 당시 재계 순위로 봐서는 그 시리즈에 들어갈 만큼의 기업규모는 아니었는데, 떠오르는 기업으로 알려지면서 매체 쪽에서 통보를 해왔다.

공인이라 할 상장사 기업주 입장에서도 자신의 가족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기업 규모도 대기업만큼 되지 않은 상황에서 괜한 주목만 받게 되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때문에 ‘절대로 기사화되지 않도록 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 신문사는 이미 많은 자료들을 모으고 취재를 진행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아무리 프로젝트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취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해도 회사 의사와 상관없이 취재는 계속됐다. 여러 관공서와 기업 주변의 기관 및 관계자, 심지어 기업 내부에서도 알 수 없는 부분들까지 깊숙한 취재가 진행됐다. 언론사에서 맘 먹고 파고들고 있던 상황이었다.  

커뮤니케이션 경험도 그리 길지 않았던 때였기에 부담이 더했다. 매일 같이 연락하고 찾아가서 매달렸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중단시킬 수가 없었다. 속이 타 들어가던 어느 날 연배가 꽤나 되던 팀장이 굳은 표정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그 팀장은 직장생활은 오래했지만 커뮤니케이션 관련 경력은 거의 없었다. 신문사를 무작정 찾아가 어떻게 할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편집국에 들어서면서 몇몇 안면 있는 기자들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아는 체 할 수도 없었다. 담당 기자는 마침 일이 있었는지 자리를 비웠고 데스크자리로 다가갔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다음 순간 충격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순하디 순한 팀장의 입에서 욕설이 섞인 험한 소리가 나왔다. 당황한 데스크가 못마땅해 하는 표정으로 말을 맞받자, 팀장은 저고리 안주머니로 손을 집어 넣으며 한 마디 더 던졌다.

“사표를 써뒀습니다. 귀사 하면 바로 제출할 것입니다. 이쯤에서 그만두시죠.”

양쪽에서 한 마디만 더 나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우려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데스크가 아니라 기사를 준비하던 기자에게 였지만, 욕설 섞인 말은 상상불가의 선전포고였다. 팀장의 몸을 껴안고 억지로 편집국 밖으로 밀어 부쳤다. 말은 거칠게 했었지만 백발의 팀장도 밖에 나와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라이터 불을 켜는 데만 한참 걸렸다.

담당 기자는 그 일을 듣고는 분개했고 금방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았다. 매체와 등지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기사 한 두 개 가지고 고생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이라 더욱 겁이 났다. 이후로 더 자주 기자를 찾아갔다. 한동안 거의 매일 갔던 것 같다. 피맛골 막회집에서 소주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신문사 계단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셔가며 매달린 덕에 한참 뒤에는 마음을 풀었다. 다행이 그 시리즈에는 다른 회사가 들어가고 진행 중이던 취재는 중단됐다. 팀장은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얼마 뒤에 다른 업무로 보직이 전환됐다.

 

정면돌파가 답, 둘러댄 말이 기업을 파국으로 몰수도 있다

커뮤니케이터는 회사의 대변인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피하거나 연락 두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벌어진 상황은 되돌릴 수도 없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모른다고 발뺌해도 안 된다. 순간적으로 곤경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둘러댄 말이 결국엔 파국으로 연결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떻게든 회사의 입장을 전달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래도 안되면 기사를 쓰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전화상으로 아무리 서슬이 시퍼렇게 취재하던 기자라도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좀 더 경륜이 많은 선배 기자들에게도 매달린다. 그런 고생이 나중에는 명분이 된다. 어쩔 수 없는 경우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는 법도 있는데, 제일 마지막에 할 방법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사자와 풀어야 한다. 설령 고위직을 통하더라도 당사자 모르게 하는 것은 화를 더 키우는 것과 같다. 그럴 때 명분이 약이 된다.

회사 경영이라는 것이 불법과 합법 사이의 담벼락을 아슬아슬 하게 걸어가는 것에 비유되곤 한다. 불법이 아니면 합법이라는 말인데, 사실 정서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도 많다. 아무리 불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서적인 부분을 훼손했을 때 여론이 가만히 있질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이유다.

소통하고자 한다면 분명하게 답은 전해져 온다. 당시에는 적극적으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별 소득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달라진다. 스포츠경기에서도 질 수 밖에 없는 경기라 하더라도 무기력하게 이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다음 번 시합을 이기기 위해서 이번에 지는 경기를 최대한 잘 져야 한다. 적극적이고 악착같이 해야 그 다음 경기에서 양상이 바뀐다. 안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난처한 취재 상황이 절대로 즐거울 수 없는 법이다. 그게 끝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기기 위하여 기꺼이 패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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