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자신의 휴대폰으로 대출을 받는 20대 청년들이 늘면서 이들에 대한 통신 채무도 증가하고 있다. 사상 최대 청년실업률을 기록하면서 휴대폰 대출까지 받아야 하는 20대 청년들이 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을 찾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4일 청년의 금융문제와 재무설계 상담을 하는 '내지갑 연구소'에 따르면 휴대폰 대출에 대해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 광주에 거주하는 A(20)씨는 통신요금만 200만원이 넘는다. 대학을 진학하지 않은 그는 2016년에 생활비가 필요해 돈을 융통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으로 휴대폰 대출을 접하게 됐다. A가 대출 광고 업체에 전화를 하자 대출업자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와 대출 약정서를 작성했다. 대출조건은 휴대폰 1대당 50만원으로 총 4대를 개통해 대출업자에게 건네줬다. 이후 A는 통신요금과 단말기 할부대금을 연체해 극심한 채무독촉을 받았다. 그에게 청구된 통신요금은 200만원이고 단말기 연체 대금은 370만원이다.  

이런 일 들이 직업이 없고 신용등급이 낮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신분증만 있으면 당일에 몇백만원 정도를 준다는 감언이설에 급전이 필요한 청년들이 꼼꼼이 따져볼 겨를도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 일부는 닥쳐올 위험을 알면서도 당장 돈이 더 급해 저런 거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자가 낮은 시중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도 안정적인 소득과 신용등급을 요구한다. 몇십만원 연체가 있어도 대출심사 대상에서 탈락이다.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로 높다는데 급전이 필요한 청년들을 위한 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만들어낸 신조어 '내구재 대출'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소득 없는 청년 사이 유행 '내구제 대출' 이란 ?

‘본인 명의 휴대전화만 개통할 수 있으면 누구나 이용 가능’.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내구제 대출’를 검색하면 카페나 블로그에 게재된 대출광고의 내용이다.

‘내구제 대출’은 나를 구제하는 대출의 줄임말이다. 내구제 대출은 다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이 자신 소유의 휴대전화, 노트북 등을 대부업자에게 넘기면 대부업자가 돈을 융통해 주는 대출방식이다. 대부업자는 이 물건을 팔아 수수료를 챙기고 판매 금액의 일부를 대출한다. 대출업자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서 휴대폰 4~5개당 약 200~300만원선으로 대출한다.

내구제 대출은 주로 20대 초중반 청년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특히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20대 청년들이 많이 이용한다. 이들이 대출을 위해 대부업자에게 주로 넘기는 물건은 휴대폰이다.

이렇게 넘어간 휴대폰은 대게 ‘대포폰’으로 넘겨져 범죄에 이용된다. 이 과정에서 정보이용료, 국제전화 등 요금폭탄이 명의자에게 청구된다.

청년들의 부채와 재무에 관해 교육과 상담을 하는 ‘청년 내지갑 연구소’ 한영섭 소장은 "20대의 요금 연체에는 내구제 대출에 대한 영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20대 청년들이 내구제 대출을 이용하는 이유는 대출이 쉽기 때문이다. 일반 대출에 필요한 직업, 소득, 신용은 내구제 대출에서 묻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청년의 실업과 청년 대상 금융의 부재에 있다는 지적이다. 청년의 실업이 생활의 궁핍을 야기하고 대출이 필요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현실이지만 정작 이들을 위한 금융은 전무하다는 지적이 많다. 안정적인 소득과 높은 신용을 요구하는 시중은행 대출조건에 20대 청년들이 들어맞는 경우는 드물다. 급전이 필요한 20대 청년들이 손쉬운 내구제 대출을 이용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통계청이 2일 밝힌 2017년 12월 기준 15세부터 29세 사이 청년 실업자 수는 105만 3000명으로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연평균 22.0%에서 22.7%로 증가했다. 이 같은 청년들이 금융이 필요할 때 찾아갈 곳이 없다. 

한영섭 소장은 내구제 대출에 대해 "이들에 대해 도움을 줄 전문가도 많지 않다. 대출 연체시 해결을 하는 방향보다는 청년들이 친구들을 끌어들여 다시 내구제 대출을 받게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이어 “소득이 불완전한 청년들이 제도권 금융으로부터 돈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약탈적 금융공급에만 노출되어 있다”며 “이런 문제에 당장 금융적 대안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복지의 관점에서 청년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무조정 4각 지대 ‘청년 연체 통신요금’

여러 대의 휴대폰을 개통해 내구제 대출을 받으면 이후 남는 것은 '단말기 대금'과 '통신 요금' 두 가지다. 대부분 청년은 이 요금은 갚지 못하고 채무를 지게 된다.

2016년 1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이동통신 3사의 요금체납 현황에 따르면, 전년 말 기준 20대의 요금 체납이 13만 9185건(체납액 511억6100만원)이었다. 그 밖에 30대는 8만8950건(282억4300만원), 40대는 8만4867건(223억3200만원), 50대는 6만8919건(179억6천만원) 순이었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면 20대의 통신요금 연체는 압도적으로 많다.

내구제 대출 이후 발생하는 단말기 대금은 상당 기간 연체가 되면 통신사에 보증을 섰던 서울보증보험이 그 연체대금을 변제(대위변제)한다. 이 과정을 거쳐 채권자는 통신사에서 서울보증보험이 된다.

통신사 채권은 금융회사의 채무가 아니어서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대상이 해당하지 않는다. 채무상담과 재무설계를 하는 '희망 만드는 사람' 서경준 본부장은 "신복위의 채무조정 대상이 되려면 채권이 서울보증보험으로 이관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보증보험이 채권자 지위를 갖는 상당 기간 동안 청년들은 채무조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심에 노출된다.

서울보증보험이 채권자가 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단말기 요금이외에 체납된 통신요금은 여전히 통신사에 남는다. 통신사의 채권은 신복위 채무조정 대상이 아닌 점을 감안하면 내구제 대출로 신복위에 채무조정을 신청하더라도 일부만 채무가 조정되고 일부 채무는 그대로 남는다.

서경준 본부장은 "이렇게 남게 되는 통신요금의 경우 통신사와 개별협상을 통해서만 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 본부장은 이어 "상담사례 중에는 내구제 대출로 사용된 휴대폰이 범죄에 이용돼 채무조정 시 비면책 채무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연체된 단말기 대금과 통신 요금을 모두 조정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개인회생 절차를 밟아야 한다. 더러는 채무 금액이 과다해 파산신청을 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노동력이 있다고 간주되는 청년에 대해 파산절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개인회생을 거쳐야 하는 경우도 쉽지 않다. 개인회생은 소득에서 생활비를 뺀 나머지를 갚아야 하는 제도다. 소득이 없다면 개인회생 신청은 가능하지 않게 된다. 개인회생도 소득이 불완전한 청년들에겐 이용하기 어려운 제도다.

한영섭 소장은 “청년들의 채무조정에 관해서는 이들의 사정에 맞는 적합한 제도가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나 당국이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