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문주용 편집국장 ] 예의바르고 약속 정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친구가 점심 약속시간에 늦게 와 털썩 앉았다. “감사원 갔다 오느라. 그 안에서 시간이 좀 많이 걸렸네, 미안.”

공공기관에 몸담고 있는 이 친구는 과거 투자 결정 사안을 놓고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윗사람의 잘못을 아랫사람이 인정하라는 확인서 날인을 거부, 실랑이를 벌이다 왔다는 것. 이미 몇 차례 똑같은 일을 반복한 뒤였다. “다른 걸 떠나서, 감사원이 실적감사는 그만했으면 좋겠어.”

감사 나왔으니 뭐라도 잡고 가야 한다는 ‘건수 채우기’는 제발 그만두라는 얘기다. ‘건수 채우기’는 공직사회에서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적폐가 된 지 오래다. 피감사 대상은 안중에 없다.

최근 감사원의 거친 감사를 받아 조직이 풍비박산이 난 또 다른 공공기관. 법원까지 간 끝에 피감 당국자가 무죄를 선고받아 복직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그 기관에 이 당국자의 징계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억울한 간첩누명을 썼다가 구제된 피해자들의 사례가 TV에 나왔는데, ‘감사원판 응징’도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공직자의 인사문제에만 국한된다면 상처받은 국민들 한풀이를 대신해준 거라고 넘기겠다.

한 연기금의 투자담당 간부. 스타트업 투자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에 반대로 하소연을 한다. “스타트업 투자요? 절대 못해요. 혹시 깨지면 자체 감사에다 감사원 감사까지, 그걸 어떻게 감당해요? 투자 성과 좋을 때는 조직 전체가 나눠 먹자고 달려들다가, 실패하면 윗사람은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 나가고, 온전히 저 혼자 뒤집어쓰는 세상인데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 이에 한 마디 경고도 않은 감사원의 무능과 나태를 탓해야 할 일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우리 아무 힘이 없는 기관 아니냐. 청와대 눈치를 봐야 한다”며 빠져나가 버리니.

그런데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 사람들 얘기를 듣다 보면 항상 감사원은 무섭고도 집요한 권력기관이었다. 과거 결정 시점의 정당한 판단에 아무 소리 않다가도, 몇 년 지나 정권이 바뀌면 ‘왜 그랬냐’며 칼 들고 덤벼들기 일쑤다.

이런 카멜레온 같은 둔갑술은 특유의 ‘유리한 위상’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감사 결과를 최종 결정하는 곳인 듯하지만, 실은 결과를 집행하는 곳이 아니다. 감사결과를 결정하고 결과를 토스해주는 배구의 세터다. 강스파이크로 때려야 할 때는 검찰에 수사의뢰나 고발하고는 일을 다 했다고 한다. 잘못된 감사결과로 밝혀져도 그건 검찰 잘못이 된다. 작은 사건은 담당부처에 징계를 요구한다. 담당부처나 공공기관이 징계를 거부하면 갖은 이유로 시비를 건다.

이런 공직자 환경에서 최근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규제혁신 토론회’를 열었다. 혁신성장 선도사업에 대한 규제혁신 추진성과를 진단하고 앞으로 추진방안을 논의했다 한다.

거창하게 말하기로, 기존의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에서 더 나아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전환’을 추진방향으로 내세웠다 한다. 과거 ‘포지티브 규제방식’에서, 혁신산업에 대해 네거티브 방식으로, 더 나아가 ‘포괄적 네거티브방식’으로 나가겠다는 목표를 덧붙인다.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감사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감사원 감사를 받고 온 친구 사례처럼, 정당한 절차를 거쳐 투자 판단을 내린 사안에 대해 결과가 나쁘면, 또는 정권이 바뀌면 다시 꺼내 감사하고 징계 요구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장담이 필요하다.

혁신성장산업을 위한 규제방식의 혁신이라 했으니, 연기금 투자 담당자의 하소연처럼 스타트업 벤처 투자에 대해서는 투자결졍에 ‘면책하겠다’는 혁신의 약속도 필요하다. 그런 다짐과 약속이 없다면, 공직자들은 언제든지 터질 뒤통수를 까놓고 다녀야 하는 상황 아닌가.

일을 시킬 땐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것인지, 묻지 않을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전권을 주겠다며 일을 시켜놓고, 잘못되면 책임 추궁하는 건 전권을 준 것도, 일을 시킨 것도 아니다. 그냥 사람을 부린 것이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자사 직원들의 “저는 책임 없습니다”라는 말에 노이로제가 걸렸다. 손 회장은 임원들에게 “모든 직원이 그 생각을 달고 산다는 걸 알고 일 시켜라”고 했다. 즉 “내(임원)가 책임질 테니 너(직원)는 전권을 갖고 일해라”라고.

규제혁신을 구호로 그칠게 아니라면 먼저 정부의 누가 책임질 것인지, 이를 공식문서화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면책’이 있어야 소신이 살아 움직인다. 그래야 관용이 생기고 도전과 기회가 꿈틀거린다. 다만 범법은 별개의 문제다.

참, 이 정부가 해서는 안 될 규제완화가 있다. 금융규제 완화는 절대 안 된다. 이 정부의 능력으로는 감당 못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