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1982년 장영자·이철희 사건이 세상을 흔들자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금융실명제를 제안합니다. 모든 금융거래를 당사자의 이름으로 하도록 만들어 투명한 거래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고, 금융실명제는 첫 문민정부를 연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러서 빛을 봅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1993년 8월12일 오후 7시 45분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 금융실명제 도입을 전격 선포했고 이를 어길 경우 천문학적인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융실명제 발표 직후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금값이 치솟습니다. 그러나 이도 잠시,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갈 길을 잃은 지하자금들은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서서히 증권시장으로 유입되었고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문민정부도 융통성을 발휘했습니다. 실명제 초기 5000만원까지는 출처를 조사하지 않는 등 조심스러운 시장 안착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금융실명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가상통화 실명제 문제와 금융실명제의 파급효과가 비슷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30일 정부는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전격 단행했습니다. 외국과 한국의 가상통화 가격이 차이나는 소위 김치 프리미엄도 거의 사라졌고 시세는 하락 일변도입니다. 실제로 가상통화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1일 정오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1100만원 수준에서 횡보를 거듭하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가상통화 실명제가 코인의 하락세를 부추겨 궁극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비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일까요?

가상통화와 블록체인의 연결고리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가상통화에도 ICT 기술의 비전이 충분하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현재 정부는 가상통화를 법적으로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를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명제 도입을 통해 거래 환경을 투명하게 구축하겠다는 의지는 당연히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일각의 주장처럼 당장 가상통화 가격 하락세가 이어져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요소는 있지만, 이는 문민정부 당시 금융실명제가 대한민국 경제를 파탄시킬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대다수의 경제 전문가와 정치인, 언론의 공포감 조성과 비슷합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강하게 끌어가려면 햇빛이 찬란하게 비춰지는 중앙무대로 끌어와야 합니다. 무기명 거래를 통해 시장의 과열만 조장하는 자금들을 영리하게 끌어오는 한편 그 과정에서 정부의 유연한 대처도 필요합니다. 지나치게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모이기 어렵다지만, 지독한 오폐수로 더러워진 물에는 고기가 아예 살 수 없는 법입니다. 혼탁한 물을 정화해 새로운 기술을 양지로 들어올려 육성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우리는 전격적인 금융실명제로 그 효과를 톡톡히 보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