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게임이라는 가상의 공간은 현실 세계와 동질적이기도 하지만 이질적이기도 하다. 두 공간에는 먼저 유저의 성별이 일치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게임 공간 내에서 80% 이상의 유저들은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 즉 현실의 성(남성인가, 여성인가)과 게임 속에서의 성 정체성을 일치시킨다.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필자도 한 번은 WOW(World of Warcraft)를 하면서 10대 소녀 캐릭터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냥 10대 소녀라면 게임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서 선택해 보았는데 의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필자를 아는 지인들은 게임 내에서 필자의 소녀 캐릭터 선택을 장난이나 연구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어떤 지인이 지나가면서 슬쩍 한 마디 던졌다.

“묘한 취미를 가지셨네요… 교수님.”

‘묘한 취미라니? 나는 이런 취미가 없는데…. 연구 차원에서 한 건데….’

내심 몹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필자는 지나가는 지인들을 다 붙잡고 ‘연구를 하고 있노라’고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었다. 설명해도 안 해도 뭔가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후 필자의 캐릭터는 모두 오크 등 중년 남성을 연상할 수 있는 형태로 설정하고, 두 번 다시 10대 소녀의,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치마나 반바지를 입고 뛰어다니는 캐릭터를 쓰지 않게 되었다. 하기야 중년 남자로 알고 있는 사람이 20대 초반의 젊은 엘프 여성 캐릭터를 하고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필자 역시 묘한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으니 할 말이 없기는 하다.

게임은 인간 사회의 반영이기도 하다. 인간 사회와 똑같은 형태의 가상사회를 꿈꾸었던 게임 중에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도 있다. 과거 2000년대 중후반에 등장해 지금의 인공지능 알파고나 가상화폐 비트코인 정도의 충격을 주었던 세컨드 라이프는 2003년 미국 린든랩이 운영을 시작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말 그대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가상공간으로, 그곳에서는 인간의 삶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 현실 사회의 규제와 속박을 벗어나, 유저는 새로운 인격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때로는 현실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건과 조우할 수도 있다. 악인과의 조우도 그중 하나다.

필자는 인터넷 사회의 이해를 위해 수업 시간에 세컨드 라이프를 교재로 수업을 진행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유저의 자율성이 높은 대신 사용이 까다롭다. 자율성이 높다는 것은 유저들이 필요한 공간 구성이나 물건 제작 등이 가능한 대신 초보 유저들이 조작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세컨드 라이프 내에 중앙대 건물을 세우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필자의 아바타가 헤드셋을 사용해 강의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아바타를 강의실 의자에 앉히고 강의를 듣거나 토론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처음 몇 주는 학생들을 강의실에 입장시켜 앉히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렸다.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처음 공간으로 진입하면 강의실 천정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생각해 보라. 갑자기 강의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그나마 떨어지면 다행이다. 어떤 학생은 낙하하는 조작을 못 해 강의실 천정에 그대로 떠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외쳤다. ‘교수님, 어떻게 내려갈 수 있나요?’

한 번은 어떤 여학생이 횃불을 들고 강의실로 들어왔다. 필자가 수업 중에 횃불을 들고 있으면 안 된다고 했더니 그 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저에게 이 횃불을 주고 갔는데 어떻게 끄는지를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되지요?”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그는 수업 시간 내내 횃불을 들고 있었다. 필자는 만일 강의실에 불이 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엄히(?) 훈계했다.

수업 중에는 소니MGM이나 IBM, 토요타 같은 글로벌 기업 건물에 가서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토론하기도 하고, 해외 유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도 하는 등 자유분방한 수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한 여학생이 미국인으로 보이는 남성(백인 아바타를 사용한)으로부터 ‘자신의 헬기를 조종해 보지 않겠는가’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매우 친절하고 자상한 태도로 권유했기에 그녀는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그런데 그녀의 조종이 미숙해서인지 헬기는 하늘을 뱅글뱅글 돌다 지상에 추락해 크게 파손되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그가 노발대발하다 갑자기 권총을 꺼내 들어 그녀에게 발포했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다시 어딘가의 건물에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기관총을 꺼내 와 그녀를 향해 난사했다. 게임 속 가상세계 이야기라 아바타는 총에 맞아도 얼마 후에 부활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여학생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20여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누군가 총을 쏜다는 것을 상상도 하기 못했던 그녀의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 이야기를 듣던 필자도 충격이 크기는 마찬가지였다.

가해자 아바타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그 여학생은 아이디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문제였다. 이런 문제는 게임공간과 유저의 자유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발생하는 딜레마였다.

세컨드 라이프뿐만이 아니었다. 게임 내의, 특히 MMORPG 내에서의 악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는 필자에게 있어 고민이었다.

선인과 악인, 게임 내에서는 이 양자가 항상 존재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악인과 아무 대가 없이 타인을 도와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공존하는 곳이 게임의 세계다. 게임은 현실세계의 반영이라는 것, 이를 이해하는 것이 게임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