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전 최순실)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이 사건의 핵심범죄인 뇌물공여죄와 관련해 정유라 승마지원을 통한 단순뇌물공여죄, 한국동계스포츠영제센터 출연을 통한 제3자 뇌물공여죄 부분은 일부 유죄 선고를 받았고,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통한 제3자 뇌물공여죄는 무죄판단을 받았다.

한편 그 밖의 공소사실인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은 뇌물공여죄의 영향으로 일부 유죄 판단을,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은 전부 유죄 판단을 받은 바 있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특검과 변호인단 중 어느 쪽의 주장이 재판부에 의해 받아들여질지, 궁극적으로는 이 부회장이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 현업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로 모아지고 있다.

- 속이 타들어가는 특검, 철옹성 같은 변호인단

이번 항소심에서 특이할만한 점은 특검이 지난해 11월 9일, 12월 20일, 12월 22일 등 세 차례에 걸쳐 법원에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는 점이다.

실무적으로 검사는 충분한 수사를 거쳐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고 피의자를 기소하더라도 유죄의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확신이 설 경우에만 공소장을 작성한다. 또한 공소장은 일선 검사의 손을 떠나더라도 사건의 경중에 따라서는 사소한 문구 하나까지 고위급 검사의 결재를 받아 제출되는 ‘공들인’ 문서인 까닭에 공소장 변경 역시 매우 신중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특검이 세 차례에 걸쳐, 그것도 이미 재판이 상당히 진행된 항소심 막판에 몰아서 공소장을 변경했다는 것은 그만큼 특검 측 항소심 공판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검이 공소장 변경을 한 경위나 내용을 살펴보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농후해진다. 우선 특검은 결심공판을 불과 1주일 앞둔 상황에서 정유라 승마지원을 ‘단순뇌물공여죄’가 아닌 ‘제3자 뇌물공여죄’의 관점에서 검토해 보라는 법원의 요구에 따라 공소장을 변경했다.

1심 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을 공동정범으로 보고 정유라에 대한 지원을 박 전 대통령에 지원으로 보았지만, 항소심 법원은 이 두 사람을 공동정범으로 보기는 어려워 만약 특검이 이 부분에 대한 ‘단순뇌물공여죄’ 주장을 ‘제3자 뇌물공여죄’ 주장으로 변경하지 않는다면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예단’을 내비친 것이다.

특검 입장에서는 법원이 공소장 변경 요구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한 무죄 선고의 가능성을 줄여줬다는 점에서는 다행스럽지만, ‘단순뇌물공여죄’와 달리 ‘제3자 뇌물공여죄’는 ‘부정한 청탁’에 대한 입증이 요구되고 그에 대한 입증책임은 고스란히 특검에게 있어 여전히 일부유죄라도 유지하기 위한 험로가 예상된다.

또한 특검은 1심 법원에서 논란이 되었던 ‘묵시적 청탁’의 존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독대 사실까지 추가로 주장하며 공소장 변경을 했지만, 이렇다 할 실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더 나아가 특검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미르·K스포츠 재단 지원 부분에 대해서는 1심에서 주장하던 ‘제3자 뇌물공여죄’ 이외 ‘단순뇌물공여죄’를 공소장에 추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투망식’ 공소사실 기재는 법원으로 하여금 수사기관이 유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로 기소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무적으로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결국 특검 입장에서는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항소심에서 고전을 했고, 변호인단 입장에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특검을 상대로 철옹성 같은 방어 전략을 펼쳤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항소심 법원, 작량감경 카드 쓸까?

항소심에서 변호인단이 다소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은 사실인 듯하나,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이번 사건과 같이 정치적인 고려를 배제할 수 없는 재판에서는 법리적 대결보다는 여론의 향배가 최종적인 선고형을 결정하는데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이 부회장은 한 차례 작량감경의 선처를 받을 기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작량감경을 받게 된다면 그 기회에 집행유예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부회장의 경우 이전의 특별한 전과가 없고 그동안 삼성전자를 이끌어 오며 국가 경제에 공헌한 점 등이 고려돼 작량감경을 받더라도 법리적인 문제는 없다.

다만, 이런 결과는 지난해 적폐청산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특검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재판 중 하나인 이 부회장 사건에서 사실상 패소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에 결국 칼자루를 쥔 항소심 법원으로서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과연 항소심 법원이 법리에 충실하면서도 국민 법감정에 어긋나지 않는 솔로몬의 판결을 내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