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지난 23일 정부는 작년 12월 28일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통해 결의된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 구체안으로 금융부문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의 주요 골자는 ①가상통화 거래와 관련한 금융거래에 본인확인이 가능한 실명거래를 정착시키기 위해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 즉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오는 30일부터 각 시중은행에서 실시하기로 한다는 것 ②가상통화 거래는 주로 은행 등 금융회사를 거래의 매개체로 활용하고 있어 금융회사가 자금세탁의 통로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 앞으로는 금융정보분석원이 금융회사에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강화할 것을 요청하는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제정·시행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 등 그동안 정부가 주로 언급해 왔던 가상통화에 대한 강경대응책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최근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에 반대하는 청와대 민원이 폭주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가상통화 거래 규제에 대한 20~30대 청년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그 보다는 현재 가상통화 거래 규제에 관련한 아무런 근거 법률도 없는 상태에서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까지 강행한다는 것은 자칫 위헌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커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안국법률사무소 정희찬 변호사는 같은 달 13일 정부가 발표한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은 아무런 법률적 근거도 없이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 행복추구권, 재산권을 침해한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며 이에 대한 위헌확인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현재 이 사건을 사전 심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제2지정재판부는 해당 헌법소원이 본안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요건, 즉 헌법소원 청구의 적법성을 갖추었는지를 검토 중에 있으며, 지난 8일부터 25일까지 소관부서인 금융위원회에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 의 내용으로 포함돼 있던 가상화폐 거래소 관련 가상화폐 발급·제공·중단 요청의 근거 법령은 무엇인지, 이번 헌법소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소명을 요구해 의견서도 모두 제출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지정재판부가 헌법재판소법제 72조 제4항에 따라 사건 접수일로부터 30일 이내인 다음 주 초까지 각하결정을 하거나 전원재판부로 회부해 본안 심리절차를 받게 하는 것뿐이다.

만약 이 사건이 본안 심리절차를 밟게 된다면, 헌법재판소로서는 정부가 발표한 12월 13일자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을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규정해 ‘위헌확인’을 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물론 헌법상 기본권인 평등권, 행복추구권, 재산권은 어떠한 경우에도 제한이 불가능한 신성불가침의 기본권은 아니다. 오히려 재산권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23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사회적 목적이나 기능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예정해 두고 있다.

또 경제적 분야의 평등권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한 차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기도 하다.

다만, 문제는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 상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을 하되, 그 형식은 반드시 ‘법률’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오로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관여한 ‘법률’에 의해서만 비로소 제한가능하다는 것으로, 이번 정부의 대책 발표와 같이 근거 법률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권력 행사는 평등권, 행복추구권, 재산권이 경우에 따라 제한이 가능한 기본권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통한 기본권 침해 문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라는 강경대응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로 돌아선 데에는 이러한 고민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라는 조치는 별도의 법률제정이 없는 한 헌법상 허용되기 어려운 초법적 기본권 침해행위이지만,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는 적어도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등 법률적 근거가 이미 마련되어 있기에 비록 그 효과는 미미할지언정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기본권을 제한할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목적과 취지가 좋아도 수단과 형식은 적정해야 한다는 것이 법치국가적 기본원리라는 사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