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현대 IT투자업계의 ‘마이더스의 손’ 손정의도 실패한 투자가 있다. 1995년 8억달러에 인수한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컴덱스(COMDEX, Computer Dealers Exposition).

버클리 대학생이었던 손정의는 학생시절 라스베이거스에서 컴덱스가 개최한 IT전시회를 보고 이를 인수하기로 결심하고 인수에 성공했지만, 컴덱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시 컴덱스보다 작았던 CES(국제가전박람회, 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라는 영광의 자리를 차지했다.

CES행사를 주관하는 미국 소비자가전협회(CEA, Consumer Electronics Association) 대표 겸 CEO인 게리 샤피로(Gary Shapiro)는 2015년에 “CES가 IT업계의 혁신정신을 더 효과적으로 대변할 것”이라며 CES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의 장담대로 CES는 세계 최고의 IT기업들이 혁신기술을 뽐내는 한복판이며, 미래기술에 대해 의제를 제시하는 현장이 됐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열리는 CES는 IFA(독일 베를린 국제 가전 박람회), MWC(스페인 무선통신분야 전문 박람회), CeBIT(독일 하노버 국제 정보통신 박람회)과 함께 세계 4대 가전 박람회로 분류되지만, 참가하는 기업 수와 관람객 수로 보았을 때 단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시회다.

▲ 팀 백스터(Tim Baxter) 삼성전자 북미총괄 사장이 CES2018 삼성전자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평범한 CES, 미래 기술에 대해 의제를 제시하기까지

CES는 최근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 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로 명칭을 바꾼 미국 소비자가전협회가 1967년 뉴욕에서 1만7500여명의 참여자와 250여개의 전시로 시작했다.

뉴욕에서 시작한 CES는 1973년부터 겨울 CES와 여름 CES로 나누어 연 2회 모두 시카고에서 열었다. 1997년 1월 시카고의 날씨가 너무 추워 관람객들의 방문이 뜸해지자 CEA는 ‘3일 동안의 멋진 경험’을 전시사업과 연결지어 관람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겨울 CES 장소를 관광도시인 라스베이거스로 옮겼다.

CES를 주최하는 CTA의 대표 게리 샤피로는 시카고에서 열던 여름 박람회에 노동조합과 마찰이 생기고, 시카고시가 박람회 개최를 당연시하며 박람회를 소홀히 대해 여름 시카고 CES는 자연스럽게 끝을 맞이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주최 측이 1998년부터 라스베이거스 행사에 집중하면서 국제 CES는 1년에 한 번, 새해 1월에 열리는 박람회로 자리 잡게 됐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제 CES는 전통적인 기술 산업과 미래 혁신적인 기술 산업을 아우르며 올해 기준으로 첫 박람회와 비교해 10배 이상 확대됐다. CES2018에는 3900여개 전시 참여 기업과 18만 4천여명의 관람객, 7000여 미디어 매체와 150여개국 이상이 참여했다.

▲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국제 CES 참여자 수 추이. 출처=국제 CES

CES, 새로운 기술ㆍ새로운 의제 선점… ‘관람객에게 설렘을 주다’

1월에 박람회를 개최하는 CES에 대해 삼성전자 홍보팀 김용호 과장은 “새해 시작에 맞추어 개최되기 때문에 신기술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다”고 CES 행사에 참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CES와 경쟁관계인  MWC는 2월 말, CeBIT은 3월, IFA는 8월 말이나 9월에 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해외전시팀의 송연 과장은 CES에 대해 “이슈를 선점하는 능력이 특히 뛰어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개발혁신을 통해 미래의 성장 동력을 만들고 있는 기업들은 자신들이 가진 신개발 기술을 CES에서 보여주고 있다. CES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이용해 다른 박람회보다 먼저 혁신기술에 대한 이슈를 차지하고 전파하고 있는 것.

혁신기술에 대한 집착은 당시 최대 가전박람회였던 컴덱스를 누르는 동인(動因)이었다.

새해 1월에 열리는 특성으로 기업들의 신기술 발표 현장이 되었다고 평가받는 CES는 사실 1998년이 되기까지는 자신들이 2개월 앞인 전년도 11월에 열리는 컴덱스보다 최신 기술에 대한 이슈 선점에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주최 측은 CES를 컴덱스보다 먼저 이슈를 선점해 더 우위에 선 박람회로 만들기 위해 혁신기술을 일구어낸 중요한 연설자를 선정하고 기조연설(Keynote)을 시작했다. 결국 CES는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빌 게이츠의 기조연설을 내세워 박람회를 업계의 주요 행사로 홍보하는 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국제 CES는 혁신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에 기조연설을 유도해 관련 이슈를 선점하고, ‘국제 CES에선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서 자신의 브랜드로 만든 것이다. 이 전략은 연설자가 내세운 기술과 기업에 미디어의 관심이 쏟아지게 만들어 박람회에 참여한 기업에도 이익을 줬다.

KOTRA 해외전시팀 송연 과장은 “CES의 이슈 선점에 대한 욕구와 전략은 기업과 상호이익을 만들었다. 이는 곧 기업들이 박람회에 신뢰를 갖게 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기술을 선보일 장으로 CES를 선택하게 만들었다”며 “결국 ‘미래를 보려면 CES에 와야 한다’고 관객들을 매혹해 관람수요를 이끌어내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 인텔이 BMW와 합동개발 중인 자율주행차를 인텔부스에 전시했다. 출처=인텔

IT기업의 혁신과 확장, CES의 선순환을 만들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개발지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제조업 부가가치 성장은 저조했다. 세계적인 경제 저성장 환경 속에서 가전제조업계는 경기침체를 탈출하기 위해 IT기업들의 스마트폰 혁신과 더불어 사물인터넷(IoT) 산업영역으로 소비가전 제조영역을 확장했다.

게리 샤피로 대표는 “혁신을 위한 이런 움직임은 가전제품의 세계를 더 확장해준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혁신하는 것과 같이 국제 CES 또한 전시하는 품목을 확장했다. KOTRA의 송연 과장은 “소비가전은 그동안 산업 내 한 카테고리에 머물러 있었는데, CES는 끊임없이 전시품목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모습으로 혁신하는 산업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기업들이 혁신하고자 노력하는 기술에 기반을 두고, 더 나아간 미래 의제를 보여주려 했던 CES는 2010년 이후 증강현실(AR)과 자율주행차, 공유경제 비즈니스, 사물인터넷까지 혁신 가전제품 전시를 성사시켜 전자기술 제품 분야와 IT분야에서 미래의 기술을 선보이는 이미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CES의 혁신성은 자동차를 전시장에 끌어들인 데서도 잘 나타났다.

특히 CES에서 2014년 루퍼트 슈타들러 아우디 회장이 “자동차는 이제 이동수단이 아니라 모든 사물과 연결되어 진화하는 제품”이라고 기조연설에서 말하며 가치를 더욱 인정받기 시작한 모빌리티는 스마트폰 이후에 전자기술 산업을 이끌고 갈 제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모빌리티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음에도 CES2018에선 한 단계 더 나아가 스마트시티를 제시했다. CES는 이처럼 혁신기술에 대한 이슈를 선점하고 참가 기업에게 확실한 이득인 혁신기업 이미지를 주며, 최첨단 기업들의 신뢰를 극대화하고 있다. 기업들이 CES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은 세계최고가 된 가전박람회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