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혜빈 기자] 2013년 12월 19일, 정갑철 전 화천군수는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에서 ‘대한민국 CEO 리더십 대상’에서 녹색성장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제35대 강원도 화천군수가 된 이후 12년 동안 3선을 하며 화천을 이끈 그의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그가 군수로 재직하는 동안, 화천의 발전은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강원도의 작은 도시인 화천은 인구 2만700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재는 매년 약 250만명의 방문자가 찾는 스타도시가 됐다. GRDP(지역 내 총생산, 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t)는 2003년 3700억원이었으나 2012년에는 7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전까지는 화천에 위치한 3개의 군부대가 주요 경제의 축이었을 만큼 소규모였던 이곳이, 해외 관광객들까지 몰려들며 GRDP의 급성장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무엇일까.

2003년부터 화천에 있었던 역사적인 변화는 바로 ‘화천 산천어 축제’다. 하지만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축제의 성공 즉 화천의 성공 뒤에 숨은 비밀과 그 원동력을 찾다가, 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화천 산천어 축제의 매력

2003년 화천에서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가 처음 열렸다. 당시 이 축제를 기획한 팀에 있었으며 지금까지 축제를 담당하고 있는 송희열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계장은 당시 목표 방문객 수가 화천군민 수인 2만명이었다고 말했다. 예상을 깨고 목표숫자보다 열 배 이상 많은 22만명의 방문객을 맞이한 화천은 화들짝 놀라 두 팔을 걷고 화천 산천어축제 준비에 돌입한다.

▲ 화천 산천어축제 현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화천 산천어축제는 길이 2㎞, 폭 1400m의 호수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축제다. 대규모인 만큼 즐길거리도 많다. 절대 깨지지 않을 두꺼운 두께의 얼음 사이에 낚싯대를 넣고 산천어를 잡는 것이 메인 행사다. 이외에도 산천어를 맨손으로 잡는 이벤트, 야간 낚시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산천어 밤낚시 이벤트도 있다. 행사장 주변으로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으며 아이들은 행사장 한쪽 편에 마련된 곳에서 얼음썰매를 타고, 눈썰매도 즐길 수 있다.

연인들이 데이트하기 좋은 거리도 축제장 위편에 마련되어 있다. 따뜻한 먹거리를 파는 구역을 지나면 산천어 모양을 한 선등 거리가 펼쳐진다. 행사장 밖에도 산천어축제는 이어진다. 화천 곳곳에 선등 거리와 얼음 조각상이 있으며 사랑방 마실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된 즐길거리들이 모여 있다.

▲ 화천 산천어축제 선등거리.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화천 산천어축제의 입장료는 일반 기준 1만2000원이다. 하지만 화천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 즉 농특산물교환권 5000원이 제공된다. 그러니까 화천 산천어축제 방문객은 산천어도 잡고, 화천 농특산물도 가져가면서 7000원만 내면 되는 셈이다. 이처럼 다양한 매력을 지닌 화천 산천어축제가 성공했던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화천 산천어축제를 만들어낸 사람은

하지만 아무리 먹을 것 많은 잔치라고 해도, 소문이 나지 않으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 그 역시도 화천 출신인 송희열 계장은 당시 화천 산천어축제 홍보 활동을 상세하게 얘기했다.

“당시 화천군청 공무원들은 부서 구분 없이 화천 산천어축제 홍보를 위해 뛰었다. 언론 방송에 지역 축제 소개 형식으로 나가도록 노력한 것은 물론이고, 1박 2일 일정으로 전국의 고속도로를 다니면서 휴게소에 모두 들러 축제 전단지를 붙이고 나눠줬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가 각 지하철에도 홍보를 할 정도였다.”

화천 산천어축제 홍보에 열정을 지닌 사람은 군청 공무원뿐만이 아니었다. 화천의 발전이 간절했던 사람들은 누구보다 화천군민들이었다. 화천 산천어축제의 성공을 위해 이들은 약 100명 정도 자발적으로 모여 머리를 맞댔다. 그렇게 화천의 사회단체들과 화천군청, 그리고 재단법인 나라 등 세 집단이 모여 화천 산천어축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이 결집하게 된 것은 위기감 때문이었다. 시기는 2002년, 화천에 평화의 댐이 준공된 때다. 평화의 댐은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있는 댐인데, 이 댐이 준공되면서 화천의 명물 낚시터였던 파로호가 그 명색을 잃게 됐다. 이 때문에 평화의 댐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화천군민들은 ‘생존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화천의 성공이 간절했던 화천군민들을 한 곳으로 이끌었던 이가 바로 정갑철 당시 화천군수다. 송희열 계장은 “다양한 화천 사람들을 하나로 이끌었던 정 전 화천군수의 리더십이 주효했다”고 평했다.

이들과 함께 화천 산천어축제를 만든 정갑철 전 화천군수는 축제의 태동부터 안정기까지 12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다.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구심점이 단단하게 잡힌 작은 마을 화천군은 그 덕분에 사고나 잡음 없이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간절함이 정확함과 만나자 기적이 일어났다

올해로 화천 산천어축제는 햇수로 16년이 되었다. 이제는 축제 행사장에서 외국인 참가객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하지만 애향심 강한 화천군민들에게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화천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는 점이다. CNN 등 외신에서 화천 산천어축제를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칭했을 정도이고, 화천의 브랜드를 산천어축제 및 이외수문학관, 청정농산물 등으로 확실히 각인시켰다.

▲ 화천 산천어축제 현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절반이 지난 세월 동안, 화천 산천어축제에서 문제 한 번 없었을까? 송희열 계장은 한참을 고심하다 “화천 지역 내부 문제가 아닌 외부인들이 일으킨 문제는 있었다”고 입을 뗐다.

전국의 시장을 다니며 야시장을 열던 사람들이 몇 년 전 화천 산천어축제에서도 야시장을 연 적이 있었다. 축제의 성격과 맞지 않는 ‘그들만의 영업’을 하던 그들에게 화천 산천어축제를 꾸리는 재단법인 나라 측이 퇴거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잡음이 있었다는 것이 송 계장의 전언이다.

야시장 사람들은 결국 화천 산천어축제에서 발을 뺐는데, 송 계장은 여기에 “지역 주민들의 합심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축제행사를 진행하는 측에서 아무리 말려도 영업을 할 생각이었던 그들은, 지역 주민들이 하나같이 외면하자 설 자리를 잃고 결국 물러났던 것이다.

이들의 강한 애향심은 정갑철 전 화천군수부터 최문순 현 화천군수로 이어지는 리더십을 통해 변함없이 이어지는 중이다. 자칫 오합지졸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화천군민들은 적당한 때에 최상의 리더를 만나 가장 성공적인 지역 축제라는 과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절실함이라는 원동력, 그리고 리더십이라는 정확한 방향타와 맞아 떨어지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화천이라는 도시에서도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기적이 생길 수 있음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