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가상화폐 거래소가 진짜 폐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래소들이 인정해야 한다. 막말로 수사가 들어와 ‘털면’ 뭐든 엮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거래소 폐쇄에 나설 수 있다.”

 

정부의 강도 높은 가상화폐 규제안이 나오기 전,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가 한 말이다. 당시만 해도 이 말을 들으면서 ‘설마’ 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됐다.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1월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현안 질의를 통해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를 전면 폐쇄하거나 불법행위를 저지른 거래소만 폐쇄하는 두 가지 방안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가 투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를 호도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가상화폐 옹호론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안으로 2030 세대가 반발하며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의 처지가 곤란해졌다는 말까지 나오지만, 현재의 열기는 분명 투기성 분위기가 역력하다. 심지어 관련 기사도 과열조짐을 보인다. 죽어라 취재하고 뛰어다녀 만든 기사보다 가상화폐 시세를 기계적으로 나열한 기사의 트래픽이 인기기사 상위권을 독차지한다.

여기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분리해야 하느냐, 가상화폐는 통화의 가치가 있느냐, 블록체인 기술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등의 논쟁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분리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블록체인이 가상화폐의 근간이 되는 기술일 뿐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하지만 ‘근간이 되는 기술인데 왜 상관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침묵한다. 투기성이 짙은 가상화폐와 신기술로 평가받는 블록체인을 분리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임은 아닐까. 가상통화의 거침없는 등락폭이 화폐의 가치를 가지기는 어렵지만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최근의 분위기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고, 블록체인이 그리는 미래인 권력분산형이 왜 중앙권력형보다 우월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의 이슈를 꺼낸다면 역시 ‘폐쇄 가능성까지 나오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운명’이다. 사실 가상화폐 거래소는 가상화폐의 정체성인 권력분산형 속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플랫폼이다. 모든 거래를 중앙의 플랫폼으로 구동하기 때문이다. 해킹 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블록체인의 방향성과도 맞지 않는다. 여기에 거래 트래픽이 폭등하면 제대로 거래를 지원하지도 못하는 등 많은 피해도 양산되고 있다.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안이 2030 세대의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가능성에는 2030 세대가 나름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는 반(反) 블록체인 플랫폼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공공의 적이다.

생각을 냉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공공의 적일까? 블록체인의 방향성과도 맞지 않고 중앙집중형 플랫폼을 지향하며 투기 열풍에 편승,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악마일까? 안타깝지만 이런 악평을 들어도 가상화폐 거래소는 할 말이 없다.

다만 투기 열풍을 해소하는 정국에서 가상화폐 거래소가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중앙집중 플랫폼의 폐해를 가지지만 사람들이 쉽게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에 생활밀착형 플랫폼이 될 수 있으며, 정부와 같은 관리자 입장에서는 가상화폐 자체가 아니라 거래소에 대한 제재에 나서며 분위기 쇄신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블록체인 기술이 완전히 상용화되기 전 과도기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철저한 분산형 권력을 추구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의 시대가 오기 전, 거래소가 중앙집중에서 탈 중앙화로 나아가는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인원과 같은 거래소는 단순한 거래를 떠나 직접 해외송금과 관련된 솔루션을 구축하며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공유경제에 ‘공유지의 비극’이 있듯이 블록체인과 같은 철저한 분산형의 약점은 ‘누구도 주체가 되어 기술 선도를 하지 못한다’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래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거래소도 변해야 한다. 단순히 거간꾼 역할에만 만족한다면 가상화폐에서 블록체인으로 발전하려는 시대의 열망을 역행하게 된다. 거래소들의 연합체인 한국블록체인협회에서 모두 탈퇴하거나 이름을 ‘거간꾼 협회’로 바꾸시라. 이 정도의 각오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산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