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많은 사람들은 정경유착, 즉 정치와 권력의 부조리한 만남을 족벌 대기업과 일부 부패한 정치인의 특수한 상황으로 이해한다. 나아가 불법적인 정경유착이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정치경제 공동체의 결성도 비슷하게 이해한다.

그러나 ICT 기업, 인터넷 기술을 발전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정치권력과 연결고리가 느슨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내 포털 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수장인 이해진 전 창업주와 김범수 의장은 스타일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의장’에 만족한다. 이들이 ‘상왕’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의장에 머물리 있는 이유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불필요한 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의장직을 고수한다는 말도 나온다.

과연 사실일까? 많은 ICT 기업들은 합법의 틀 안에서도 정치권력과의 ‘만남’을 극단적으로 피하고 독야청정 기술개발만 거듭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젊고 유능한 젊은이들이 ICT라는 해적선을 타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항해를 계속하고 있을뿐일까?

▲ CES 2018의 구글 부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구글과 유럽, 그리고 전쟁

혁신의 실리콘밸리, 자유로운 기업문화가 살아숨쉬고 독창적인 ICT 기술이 요란하게 굽이치는 곳. 많은 사람들은 미국, 혹은 실리콘밸리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치의 동물이며 실리콘밸리 기업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실리콘밸리는 전사적으로 뭉쳐 그를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그 누구보다 날선 정치적 언어를 내뱉는 곳도 바로 실리콘밸리다.

특히 구글의 행보가 인상적이다. 구글은 미국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철저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주로 유럽의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2014년 11월28일 유럽연합의 소위 구글 쪼개기 법안 논란이다. 당시 유럽연합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반독점 지위 남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구글의 검색 서비스와 기타 부가 서비스를 분리하는 결의안을 찬성 384표, 반대 174표로 가결시켰다. 물론 큰 의미가 없는 선언적 레토릭에 불과하지만 구글에 대한 유럽의 불편함을 잘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와야 한다. 유럽연합은 ‘왜’ 구글을 싫어할까? ‘왜’ 잊혀질 권리부터 시작해 막대한 과징금을 물리고 규제 일변도로 나서는 것일까? 여기에는 기본적인 시장잠식 논리를 뛰어넘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ICT 종속 현상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구글의 유럽시장 점유율은 90%를 넘기고 있다. 이러한 존재감은 유럽 ICT 및 테크 스타트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핵심적인 요소다. 반 구글 정서가 생겨난 이유다. 지난해 유럽연합의 구글 과징금 부과의 근본적인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 전문가도 있다.

물론 정면대결을 통해 구글과 승부를 보려던 시도도 있었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한때 "구글 등 미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검색엔진 시장에 프랑스와 독일이 대항해야 한다"며 독일과 협력해 `나는 찾는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콰에로(Quaero) 포털 프로젝트를 가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심차게 구글과 맞선 콰에로 프로젝트는 좌초하고 말았다.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감성만으로 시장의 선택을 받은 민간 플랫폼과 대결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원칙’만 확인했을 뿐이다.

2014년 악셀 스피링어가 구글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플랫폼 종속 거부를 선언했으나 결국 백기투항한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독일은 물론 유럽 최고의 언론사인 악셀 스프링어는 당시 구글의 독과점 지위에 반발해 자사의 콘텐츠를 철수시켰으나 급격한 트래픽 하락에 결국 구글에 복귀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악셀 스프링어는 “홈페이지 트래픽이 폭락한 것은 구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리콘밸리에 맞서 파트너를 찾는 노력도 있었다. 한국의 네이버가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전 프랑스 디지털경제 장관과 유럽 금융전문가 앙투안 드레쉬(Antoine Dresch)가 설립한 Korelya Capital(코렐리아 캐피탈)의 유럽 투자 펀드 ‘K-펀드 1’에 출자 기업으로 참여한 것이 좋은사례다. 실리콘밸리에 대항하기 위해 구글 등에 불만이 많은 유럽과 손을 잡았고, 그 중에서도 문화권력의 핵심인 프랑스와 공동전선을 꾸렸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당시 유럽에서 이는 반 구글 정서에 크게 반발하며 강경모드로 돌아섰다. 실제로 2014년 11월 구글 쪼개기 법안이 유럽연합에서 통과되었을 당시 미국은 상당히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원 재무위원회와 하원 의원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IT기업에 대한 (유럽의회) 결의안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에 대한 유럽연합의 생각을 의심하게 한다”며 "구글 문제를 정치쟁점화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도 나섰다. 그는 2015년 3월 "유럽의 제재가 지극히 상업적 목적으로만 행해지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또 국제적 명성을 가진 비벡 고살 조지아공과대학 경제학 교수는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기업에 가해지는 유럽의 견제를 두고“왜 우월한 형태의 서비스 제공을 차별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로비의 왕 구글

유럽연합을 싫어하는 구글과, 구글을 낳은 미국. 상식적으로 보면 유럽연합은 미국을 경계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이건 전혀 다른 문제다.

브렉시트의 여파를 고려해야 하지만, 유럽의 강국인 영국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판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세계대전 직전까지 대영제국의 영광을 바탕으로 세계경영의 경험을 가진 나라다.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군림했던 그들은 과거의 영광을 아쉬워하지만, 수퍼파워인 미국의 현재도 인정하고 있다. 바로 미국과의 협력이다. 실제로 영국의 가디언은 영국을 두고 "한때 대영제국의 경험을 통해 세계 패권국가를 경험했던 상황에서 21세기 정보를 쥐고 있는 미국이 가장 훌륭한 파트너라는 점을 강렬하게 자각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폭로자 에드워드 스노든과 줄리언 어산지의 운명이 미국과 유럽의 운명 공동체를 잘 보여준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국(NSA)를 중심으로 프리즘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에드워드 스노든은 이를 대대적으로 폭로했다. 문제는 이후 전개다. 에드워드 스노든을 취재한 영국의 가디언이 당국으로부터 보복성 압수수색을 당했기 때문이다. 줄리언 어산지도 마찬가지다. 그는 위키리스크 폭로 후 영국 정부의 보호를 받으려 했으나 오히려 체포당할 처지에 놓이자 부랴부랴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유럽은 정보패권에 있어 미국과 단 한 번도 엇박자를 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유럽의 행보, 즉 미국과는 정보공조를 유지하고 구글과 같은 민간사업체를 철저히 배제하려는 움직임의 행간을 짚어낼 필요가 있다. 구글은 왜 유럽의 극단적인 반발을 사고 있을까?

에드워드 스노든은 지난 2013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중문화 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의 인터랙티브 행사장에서 화상대화에 나섰다. 그곳에서 그는 “미국 국가안보국의 감시 프로그램에 가장 협력을 많이 했던 곳이 바로 구글”이라고 폭로했다. 구글도 이를 인정했다. 2014년 발표된 구글의 투명성 보고서(transparency report)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정보공조를 위해 구글에게 알려 달라고 요구한 사례가 2013년 대비 120% 증가했고 거의 대부분이 미국 정부로 알려졌다. 이 보고서에는 구글이 확보한 각국 정부의 은밀한 정보가 미국 정부에 흘러갔다는 사실이 비교적 상세히 적혀있다.

지난해 구글 지도 반출 논란 당시에도,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유럽이 미국 정부와 협력하면서도 구글과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ICT 플랫폼 기업인 구글의 유럽 시장 확대로 인해 일종의 정보 비대칭이 벌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구글은 어떻게 미국 정부의 힘을 이용하거나, 혹은 함께 나아가고 있을 것일까? 오로지 기술만으로 세상과 승부할 것 같은 이들도 다양한 정치적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구글은 로비가 합법화된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2015년에 1666만달러, 2016년에 1543만달러, 2017년 3분기까지 1364만달러의 막대한 로비 자금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결국 ICT 패권 다툼에도 ‘로비’의 중요성은 필요하며, 이는 모든 세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핵심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