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핀테레스트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외로움은 현대사회의 새로운 전염병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닌 일이 되었다.

미국 통계국의 보고서 '늙어가는 세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65세 이상 인구는 2014년 5억 5천만명이었으나 2050년까지 16억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기간 중 세계 전체 인구는 34% 증가하지만 65세 이상 인구는 무려 세 배 가까이 늘어나는 가파른 고령화가 예고된 것이다.

영국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9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항상 또는 외로움을 자주 느끼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한 달 이상 친구나 친척과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해 발간된 보고서를 인용, 외로움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고 보도했다.

일본 남성 넷 중 하나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초고령 사회인지라 결혼해도 사별과 이혼으로 혼자 사는 이가 많다. 이에 일본을 '단신(單身)' 사회라 부른다.

우리나라도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곧 고독 사회를 맞는다. 노인 자살률이 인구 10만명 당 55.5명으로 전체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등 노년층의 외로움과 빈곤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 및 시민사회(Sport and Civil Society) 장관을 외로움 문제를 담당할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으로 겸직 임명한 것은 75세 이상 영국인 중 절반이 혼자 생활하고 있으며 외로움으로 고통을 겪는 인구가 900만 명에 이른다는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인 결과다. 사실상 외로움을 실업, 폭력, 빈곤 같은 사회 문제로 분류한 것이다.

▲ 왼쪽: 故 조 콕스 의원 오른쪽: '외로움 담당 장관'에 임명된 트레이시 크라우치 장관

영국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외로움 문제를 주도했던 고(故) 조 콕스 노동당 하원 의원의 추진했던 사업을 이어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콕스 의원은 생전에 외로움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를 설립했으며, 이를 담당할 장관을 임명하고 외로움과 싸울 수 있는 국가적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콕스 의원은 2016년 2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를 앞두고 '영국 우선'을 외친 우파 극단주의 괴한에 의해 살해되었다. 조 콕스 노동당 의원이 살해된 이후 영국 내 외로움 문제는 크게 주목받았다.

메이 총리는 크라우치 장관을 외로움 담당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외로움은 현대인의 슬픈 단면"이라며 "노인, 간병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등, 대화하거나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눌 상대가 없는 사람들과 우리 사회를 위해 고독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담당 장관에 임명된 크라우치는 “콕스 전 의원의 열정적인 문제 제기를 이어받는 것이 그를 기리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며 “외로움에 고통 받는 수백 만 명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외로움 담당 장관은 통계청을 통해 사회적 고립을 겪는 이들의 실태를 살피고, 외로움 관련 전략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사회단체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에 따라 영국 통계청은 고독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파악할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낼 계획이다.

영국이 외로움을 사회 문제로 간주하고 담당 장관을 임명하는 등 발 빠른 대처를 하고 있지만, 외로움 문제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다른 국가들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고령사회 일본에서는 2016년 누구도 곁에 없는 채 세상을 떠난 고립사(고독사) 비율이 3%를 넘어섰고, 이중 대다수가 노년층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상속 때 배우자를 우대하고 연금수급 개시 연령도 70세 이후로 늦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법무성의 '법제심의회'는 지난 17일 사망자의 배우자가 주거와 생활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거주권' 개념을 도입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 제안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사망자가 발생하면 유산은 배우자와 자녀가 균등분할해 나눠 갖게 되는데 이에 따라 혼자 남게 된 배우자가 기존에 살던 거주지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법제심의회는 고령화 심화로 장기간 혼자 사는 독거 노인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배우자에게 기존에 살던 주택에서 계속 생활할 수 있는 '거주권'을 부여해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또 고인이 숨지기 전 배우자에게 증여한 주택은 유산 분할 대상에서 제외하고, 배우자가 재산 분할 전 고인의 예금을 생활비 등으로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