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고객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사의 혁신활동을 활성화할 방안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의아했다. 20년 넘게 현장 오퍼레이터들과 엔지니어들이 지속적인 혁신활동을 하고 있고, 매년 수십억원의 개선효과를 낼 정도로 수준 높고 자부심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혁신팀뿐만 아니라 최고 경영진조차 상당히 우수한 혁신활동 추진력과 이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세히 얘기를 나눠보니 혁신활동이 예전 같지 않은데, 내부의 눈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고민의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요청을 많이 받는다. 예전에는 원가절감, 품질개선, 생산성 향상 등 명확한 혁신영역과 목적을 고객사에서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요청해 왔으나 이제는 요청 자체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고객사들을 만나보면 많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이 정말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해결책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혁신활동을 추진해 왔다고 하지만 정작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그래서 색 바랜 낡은 상패만 남은 혁신활동이 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최근 들어서는 이 ‘모호한 요청’이 더욱 다양해졌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이다. Big Data, IoT, 가상현실 등 매력적인 단어들이 경영진의 구미를 당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회사에서 저러한 것들을 적용할 방법을 생각하라’고 혁신팀에 요구하고 컨설팅을 요청한다. 그 결과 ‘Big Data 적용 중장기 계획’과 같은 혁신계획이 양산되고 있다. 정작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6 시그마나 TPM 광풍이 불었을 때와 같은 모습이 반복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나라의 혁신활동은 유행에 익숙해져 있다. TPM, 6시그마, Lean 등 매력적인 혁신기법들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도 혁신활동을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를 냈기 때문에 이러한 영광을 잊지 못하고 외형적으로는 계속 추진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앞서의 고객사와 같은 문제의식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멋있어 보이는 선진 혁신기법을 유행처럼 적용하는 혁신활동의 한계가 보이는 것이다.

예전의 한 컨퍼런스가 기억난다. 일본인 TPS(도요타 생산방식) 컨설턴트에게서 강의를 듣는 자리였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간반을 적용하려는데 잘 안 된다. 조언을 부탁한다’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그 일본인 컨설턴트가 되물었다. ‘왜 간반을 적용하려고 하죠?’ 그러자 질문자는 ‘경영진이 지시를 해서…’라며 얼버무렸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들이 관찰된다. Big Data 분석을 통한 보전 및 운전체계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정작 분석해야 할 Data의 정합성 문제가 있어 당장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최신의 혁신기법이 오히려 문제를 가려버리는 상황이다. 진정 이 회사에 가치를 줄 수 있는 혁신활동은 무엇인가?

증기기관으로 상징되는 1차 산업혁명, 전기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2차 산업혁명, 그리고 디지털화로 표현되어 정보혁명이라고도 불리는 3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공통점이 있다. 시대의 발전을 지배하게 된 빅뱅 수준의 혁신적인 기술과 발명품에 의해서 이후 산업의 발전 방향이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와의 차이점은 오히려 기술의 발전이 당시에는 ‘느렸다’는 것이다. 지금은 증기기관이나 인터넷의 발명과 맞먹을 만한 수준의 기술 혁신이 매년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가상현실, 암호화폐 등 날마다 새로운 기술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른 산업적, 사회적 변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고, 이러한 변화가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을 이전의 산업혁명과 같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아직 4차 산업혁명은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진행 중인 모습으로 정의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많은 CEO들이 ‘우리 회사의 Smart Factory는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Smart’의 정의를 ‘문제점이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보이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개선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이 질문을 다시 할 수 있다. ‘우리 회사가 Smarter하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혁신활동의 근본 목적으로 되돌아간다.

시장의 Needs를 정밀하게 분석해서 개발하고 그 가치를 공급함으로써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기업의 사명이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도구가 혁신활동이다. 혁신활동의 핵심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도구가 다양해진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가치의 중심’이 생산자에서 고객으로, 대중에서 개인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 이동할 뿐이다. 그리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Big Data와 같은 것이다. Sensor의 발달, Network의 발달. 결국 Data 수집 및 분석의 진화. 이것을 통해서 하고 있던 것들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혹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인 것이다. Big Data 분석을 통한 공정조건의 실시간 분석 및 최적화와 같은 것들이 그 사례가 될 것이다.

중요한 건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아는 것이다. <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는 10년 뒤 <How the Mighty Falls>에서 몰락의 5단계를 정의하고 있다. 그 첫 단계가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다. ‘우리 회사는 매년 품질분임조 전국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있어요’, ‘매년 수만건의 제안을 내고 있어요’ 등 수치로 보이는 ‘가짜 성공’이 우리를 자만하게 한다. 정말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뼈아프지만 객관적인 성찰이 있은 후에야 발전방안을 만들 수 있다. 앞서 예시로 든 고객사도 결국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시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안전이 개선되지 않고 젊은 직원들이 다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석한 후에 이에 대한 개선책이 나올 수 있었다. 이것이 혁신활동을 ‘Re-vitalize’할 방법이었다. 화려해 보이는 혁신방법들은 그 다음이다.

톱과 대패, 망치만으로도 훌륭한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수는, 어떤 도구를 주더라도 (필요하다면 그 도구를 개량해서)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기가 되어 있지 않은 목수에게는 리넬슨(LIE-NIELSEN)의 수백만 원짜리 공구를 주더라도 무용지물이다.

새로운 Tool을 필요한 곳에 적절히 활용해서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Tool에 대한 이해와 Tool을 활용할 수 있는 지식 및 역량이다. 이러한 것들을 지속할 수 있는 기업의 혁신체질을 만드는 것이 변하지 않는 혁신의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