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면세점에 입점한 하이트진로 주류 제품들. 출처= 하이트진로

국내 제조업계에는 “물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물’이 주원료로 들어가는 상품들은 생산 단가가 높지 않아 판매액과 수익의 차이가 적어 일단 팔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이 말을 대표하는 상품군은 주류(酒類)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인구 감소로 절대 수요가 줄어들고 있고 국내 소비자들의 술 소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물장사도 망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 감소는 국내 주류업체들이 ‘뭔가를 잘못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추세를 업체들이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주류 업체들은 이전의 방식과 다른 전략으로 위기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술 줄이는 소비자들 

17일 통계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산 주류과 수입 주류를 합친 2016년 국내 술 출고량은 399만5000㎘(킬로리터)를 기록했다. 이는 직전 연도인 2015년 같은 기간보다 1.9% 감소한 수치다. 주류 소비 감소는 주종을 구분하지 않았다. 2014년과 비교하면 소주는 2.7%, 맥주는 3.7%, 막걸리는 7.2% 소비가 줄어들었다. 업계는 지난해 국내 주류 출고량은 이미 380만㎘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민 주류’ 소주 소비량은 2008년 100만㎘를 넘어선 이후 2016년 93만2000㎘로 감소했다.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업계는 위스키 업계다. 국내 위스키 소비량은 2008년 이후 9년 연속 감소해 2016년 166만9000상자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는 2008년 대비 41% 감소했다.  

물론 이러한 술 소비 감소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흐름은 아니다. 국제 주류시장연구소(IWSR)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전 세계 술 시장의 규모는 전년대비 1.3% 감소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술을 적게 마시고 있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추세는 국내 주류업체들에게도 직·간접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1위 맥주업체 오비맥주는 2016년 4월, 11월 두 차례 임직원 140여명의 희망퇴직을 받았다. 경쟁사인 주류업체 하이트진로도 임직원들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전체 임직원의 9%인 약300명이 퇴직했다.  당장의 수익성 악화에 따른 정리해고는 아니었다. 업계에서는 이런 조치에는 조직 효율화로 비용 절감 효과도 의도한 것이란 견해도 있다. 

▲ 고령화 사회 진입 이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일본의 맥주 소비량. 출처= 기린

주류 소비 감소에는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증가, 고령화에 따른 소비 감소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의 앞날을 그려볼 수 있는 지료다. 일본 음료업체 ‘기린(KIRIN)’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일본의 2015년 맥주 소비량은 전년보다 1.5% 감소한 540만㎘를 기록해 10년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주류업계가 찾은 답, 저도(低度) 그리고 해외시장 

국내 술 소비의 눈에 띄는 감소에 주류업체들은 적절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업체들은 ‘트렌드’와 ‘시장 확장’ 두 가지 접근법으로 답을 찾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트렌드’ 측면으로 업체들이 찾은 답은 ‘저도(低度·낮은 알콜 도수)화’다. 주류의 알콜 함량을 낮춰 특유의 쓴 맛을 줄이고, 이를 통해 소비자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가장 잘 반영한 업계는 위스키 업계다. 

▲ 국내 위스키 업계에 저도주 열풍을 불러일으킨 골든블루 위스키 제품군. 출처= 골든블루

경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주류업체 골든블루의 성장은 알콜도수 40도 이하 저도 제품의 전면 배치가 주효했다. 골든블루는 2009년 국내 최초로 36.5도 저도주 위스키로 업계에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힘입어 골든블루는 지난해 국내 위스키 시장 점유율 1위(1상자 9ℓ기준, 37만4609상자가 판매)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시장의 반응에 국내 위스키 업계 상위 업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35도 위스키 ‘35 바이 임페리얼’, 디아지오코리아는 ‘윈저 W 시그니처’ 저도 신제품을 내놓았다. 

업계에서 산출된 지표에 따르면 40도 이상 위스키 시장 점유율은 2016년 73%에서 지난해 65.3%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40도 미만 저도 위스키 제품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27%에서 34.7%로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은 일반 주류업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이트진로의 주력 제품인 진로·참이슬의 알콜 도수는 1998년에는 23도, 2014년 17.8도 그리고 최근에는 16.9도(참이슬 16.9)까지 낮아졌다. 롯데주류의 소주 ‘처음처럼’도 최근 3년 동안 20도에서 17.5도까지 알콜 도수가 낮아졌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주류의 저도화 추세는 이전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술 소비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면서 “업체들은 알콜 도수를 낮춰 순하고 부드러운 맛을 강조해 ‘30대 이상 성인 남성’에 지나치게 편중됐던 주류 소비층을 젊은 층으로 또는 여성 소비자까지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 주류업체들이 찾은 또 하나의 대안은 해외 주류시장 진출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국내 소비자들의 한정된 수요를 해외로 확장시킨다는 취지다. 
 
해외시장 확장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국내 주류업체는 하이트진로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12월 자사의 미국법인 진로아메리카의 물류센터를 신설하고 법인사옥 통합 등을 통해 미국 현지시장 공략 강화에 본격 나선 이후 해외시장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일 소주 ‘자두에이슬’을 출시해 캄보디아·중국·태국·호주 등 11개국에 초도물량 23만병 수출하는가 하면 지난 15일부터는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면세점에 입점해 참이슬 후레시, 자몽에이슬, 청포도에이슬, 일품진로 등 대표 제품의 판매를 시작했다. 16일에는 베트남 호찌민 지사를 설립해 현지 주류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법인이 없던 필리핀에는 현지 사무소를 열었다.  

▲ 하이트진로 미국 법인 진로아메리카 물류센터 신설 행사. 출처=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 해외사업본부 총괄 황정호 상무는 “국제공항 면세점 입점은 다양한 나라의 관광객들이 브랜드를 체험하고 이후의 추가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세계 거점 공항의 면세점 입점, 시장 확대를 지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사인 롯데주류도 해외 시장 확장을 시도했다. 롯데주류는 지난해 11월 자사의 맥주 ‘피츠 수퍼클리어’의 첫 수출 물량을 선적하고 12월 초부터 상해 지역을 시작으로 중국 현지 판매를 시작했다. 롯데주류는 중국 상해 지역 내 마트, 주류 전문매장, 주점 등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현지 마트에서 시음회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 마케팅으로 제품 인지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롯데주류는 중국에 이어 홍콩, 호주에도 약 21만캔의 맥주를 수출하고 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이후 중화권, 오세아니아 지역을 시작으로 동남아지역과 미주지역까지 점차 수출 지역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베트남으로 수출되는 위스키 그린자켓. 출처= 윌리엄그랜트앤선즈

국내 위스키 업계도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스코틀랜드 주류업체 윌리엄그랜트앤선즈의 한국 법인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이하 윌리엄 그랜트)는 15일부터 자사의 36.5도 위스키 ‘그린자켓(Green Jacket)’12년산, 17년산의 베트남 수출을 시작했다.

윌리엄 그랜트는 올 연말까지 베트남에 그린자켓  3500 상자(1상자=6병)를 수출하고, 향후 3년 내  2만 상자 수출을 목표로 베트남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윌리엄 그랜트 김일주 대표는 “앞으로 캄보디아, 태국 등 동남아 전 지역으로 수출 시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해외시장 확장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