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열풍, 그에 따른 투기논란이 급부상하며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외 알트코인으로 분류되는 리플, 라이트코인, 이더리움 등 다양한 가상화폐의 등장과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ICO 이슈를 둘러싸고 정부는 일단 ‘규제’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서 재미있게 봐야하는 대목이 정부의 블록체인에 대한 접근법입니다.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부처의 정책은 다소 엇박자를 내면서도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점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15일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다른 사안이기 때문에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의문은 ‘정부는 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분리하려고 할까?’입니다. 사실 간단하게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매력적인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가상화폐는 투기의 패러다임으로 밀어두고 가상화폐의 근간인 블록체인은 ‘우리가 지켜야 할 미래’라고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도 금방 나옵니다. ‘블록체인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블록체인은 공공 거래장부, 즉 디지털 장부(distributed ledger)의 개념을 가집니다. 비트코인이 돈 그 자체라면 블록체인은 은행의 거래기록으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의 강점 중 하나인 분산형 권력의 근간이 바로 블록체인 설계에서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과 금전거래를 했고 B라는 사람이 C라는 사람과 금전거래를 했다고 가정합시다. 이러한 과정은 각자가 가진 모든 거래장부에 자동으로 기입됩니다. 여기에서 누군가 장난을 치고 싶다면 기존 은행의 경우 거래장부를 해킹하거나 훼손하면 그만이지만, 블록체인의 경우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의 장부를 동시에 위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래장부(블록)가 연결(체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P2P(Peer to Peer) 분산 네트워크로 구동되는 배경입니다. 쉽게 말해 완전한 개인간 거래가 아니라면, 금전거래의 기록은 은행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인이 나눠가지는 구조입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블록체인의 마술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체인을 이어가며 위조를 시도한다면? 그 유명한 51%의 마법이 등장합니다. 소위 비잔틴 장군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공식입니다.

100명의 병력을 가진 비잔틴 장군 5명이 하나의 성을 정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들은 성을 공격해야 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으며, 각자의 진영은 사로 떨어져 있어 전령을 보내 통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격시간을 정해야 하는데 문제는 적의 성에 300명의 병사가 있다는 점. 결국 최소 300명이상의 아군이 동시에 움직여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비잔틴 장군들은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서로 완벽하게 믿을 수 없는 장군들은 꾀를 냅니다. 모든 장군은 10분의 시간을 들여 문제 하나를 풀고, 문제를 풀면 공격시간을 알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공격시간을 확인한 후 공격시간과 함께 문제를 푼 내역을 바로 다음 장군만 알 수 있게 넘깁니다. 즉 1번 장군이 오후 11시라는 공격시간과 함께 10분간 문제를 풀어 두 정보를 2번 장군에게 문제풀이 내역과 함께 보내면 2번 장군도 문제를 풀고 1번 장군으로부터 받은 공격시간과 함께 자신이 푼 문제 내역과 1번 장군의 문제 내역을 3번 장군에게 보내는 구조입니다.

만약 3번 장군이 배신자라면, 공격시간이 오후 9시라고 적고 4번 장군에게 보낼겁니다. 체인이 갈라지는 순간입니다. 2번 장군이 배신자라면 4번 장군은 1번과 3번의 공격시간과 문제풀이를 확인하고 2번 장군이 보낸 사슬을 삭제합니다. 비트코인으로 보면 블록에 담긴 거래 내용을 암호화한 상태에서 그 해시 값을 다음 블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계속 반복(Proof-of-Work, PoW)하는 식입니다.

물론 블록체인도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해시값이 폭증하면서 체인을 공유한 이들의 시스템 속도가 느려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드포크와 같은 작업이 나왔으며,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방식을 응용하거나 변형시킨 작업들이 새롭게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블록체인을 ‘미래 컴퓨팅의 비전’으로 100%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앙형 권력구조에서 분산형 권력 구조로 인터넷 패러다임에 가장 가까운 인프라를 창출하는 한편, 다양한 ICT 기회를 만드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정부가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분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상화폐는 투기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블록체인은 ICT 기술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가치일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위원회까지 구축한 정부가 블록체인을 포기한다? 말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을 현실에서 어떻게 펼칠 것인가? 모든 정보가 각 생태계 객체의 데이터에 정리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일본의 도요타가 보여줍니다.

도요타는 최근 폐막한 세계최대 가전제품 전시회 CES 2018을 통해 ‘이팔렛트’라는 자율주행차를 공개했는데, 이를 온디맨드와 블록체인 방식으로 활용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발표했습니다. 이팔렛트 내부는 필요에 따라 상점, 약국, 식당 등으로 변신할 수 있으며 도요타는 중국의 디디추싱과 미국의 아마존과 협력해 2022년 상용화를 선언했습니다.

▲ 도요타 이팔렛트.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차량공유와 온디맨드 사업을 연결하는 한편, 이를 운용하는 전 과정을 블록체인 기술로 채운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팔렛트를 이용하려는 사람과 플랫폼 사업자, 빌려주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정보가 블록체인으로 기록되어 구동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팔렛트를 상점으로 활용한 사람이 작업이 끝나고 도요타에 반납하면, 도요타는 약국으로 쓸 사람에게 이팔렛트를 다시 배분합니다. 모든 과정은 기록되며, 정보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게 됩니다.

블록체인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편입니다. 다만 가상화폐는 투기성 논란이 제기되어 정부는 일단 ‘색안경’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여기서 민감한 질문이 나옵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의 분리가 맞는 길인가?’ 정부와 업계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대목입니다. 정부는 두 사안이 분리되어 가상화폐는 규제, 블록체인은 육성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지만 업계에서는 가상화폐의 규제가 사라져야 블록체인 기술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상화폐가 보여주고 있는 열풍은 분명 투기에 한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이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니고, 가상화폐도 송금이나 결제기술에 있어 분명 의미있는 비전도 가지고 있습니다.

뷔페 음식점을 갔는데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도 있지만 건강에 해로운 ‘맛있는 음식’도 즐비한 상황.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현금없는 사회의 비전을 가상화폐에서 찾는 것은 너무 허황된 꿈일까요? 앞으로 남은 질문에 냉정한 답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