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영화 <아저씨>의 명대사다. <아저씨>가 개봉한 이후 주류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저항과 유머를 ‘오늘만 산다’고 표현하는 방법이 생겼다. 시계 브랜드 모저앤씨는 어떤 기준에서 보면 ‘오늘만 사는’브랜드다. 2016년 ‘스위스 알프 워치’에서 시작해 2018년 ‘스위스 아이콘 워치’까지. 지금 이보다 더 희귀한 브랜드가 있을까.

 

VERY RARE

▲ 엔데버 투르비옹 콘셉트에는 로고도, 인덱스도 없다. 출처=모저앤씨

모저앤씨는 세계 곳곳의 VIP들만 찾는 독특한 브랜드다. 모저앤씨의 모토는 “VERY RARE”. 표현 그대로 희귀함으로 가득 차있다. 이 브랜드는 태생부터가 독특한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설립돼 큰 성공을 거두고 스위스 르 로끌로 진출한, 보기 드문 사례다. 쿼츠 위기 이후 위르겐 랑에 박사에 의해 2002년 회사명을 되찾은 뒤, 단 4년 만에 퍼페추얼 캘린더로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수상을 할 정도로 기술력에 있어서도 희귀한 기록을 보이고 있는 브랜드다. 모저앤씨에서 만든 헤어스프링과 이스케이프먼트는 20여 개의 럭셔리 시계 브랜드에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믿기 힘들 정도로 유려한 다이얼 색감, 그 흔한 로고와 인덱스 없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아이덴티티도 모저앤씨가 갖고 있는 희귀함 중 하나다. 하지만 모저앤씨의 진짜 희귀함은 2016년부터 시작된 그들의 저항과 유머에 있다. 이제껏 시계 업계에서는 전례가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모저앤씨의 행보는 마치 ‘오늘만 사는 것’같다.

 

스위스 알프 워치(Swiss Alp Watch)

▲ 애플워치(좌), 스위스 알프 워치. 출처=애플, 모저앤씨

2015년 애플이 애플워치 출시를 발표했다. 전자기기의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놓은 애플이기에 ‘시계’라는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출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가격대를 겨냥한 애플의 전략은 대부분의 스위스 시계 브랜드를 타깃으로 했다. 많은 업계 전문가들은 매일같이 스위스 시계 산업의 위험을 기사로 내보냈다. 혹자는 1970년대 쿼츠 파동과 비교하며 스위스 시계 산업의 재 붕괴를 예언하기도 했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고, 실제로 애플워치와 비슷한 가격대의 시계 브랜드들은 주먹구구식으로라도 스마트워치를 기획해 애플에게 빼앗길 수요를 찾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VERY RARE’ 모저앤씨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다. 애플워치의 출시일부터 에드워드 메일란(Edouard Meylan) 모저앤씨 CEO는 “스위스 기계식 시계야말로 원조 스마트 워치”라고 이야기를 해왔으며, 같은 해 출시한 자사의 엔데버 퍼페추얼 캘린더를 ‘스위스 오리지널 스마트 워치’라고 명명했다. 그들의 콧대 높은 자존심은 2016년 그 정체를 드러냈다.

 

▲ 스위스 알프 워치의 백 케이스. 출처=모저앤씨

2016년 모저앤씨는 스위스 알프 워치를 공개했다. 전 세계 50점 한정 제작된 스위스 알프 워치 첫 번째 에디션인 Ref.8324-0200이다. 애플워치와 똑같은 케이스와 러그 모양을 한 시계 내부엔 모저앤씨의 인하우스 무브먼트인 HMC324칼리버를 담아냈다. 인터체인저블 모저앤씨 이스케이프먼트와 스트라우만 헤어스프링을 장착한 완벽한 기계식 시계. 백 케이스는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제작해 모저앤씨의 수준급 마감 실력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스트랩도 아프리카 영양의 일종인 쿠두를 이용해 최고급으로 제작했다. 시계 광고 영상도 애플의 CF를 패러디해 시계와 음성만으로 구성했으며 마지막에는 사과를 씹는 소리까지 넣었다. 애플워치 모양 케이스에 담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아날로그의 결정체인 시계 무브먼트. 모저앤씨는 애플워치에 겁먹고 떨고 있는 시계 브랜드들에게, 그리고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는 애플에게 시계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진짜 스마트워치는 바로 이런 것이다." 스마트워치 열풍에 보내는 스위스 고급 시계 제조사의 기품 있는 풍자였다. 이 시계는 순식간에 완판됐으며 높은 인기 덕에 현재 정식 시리즈로 생산되고 있다.

 

스위스 매드 워치(Swiss Mad Watch)

▲ 100% 스위스 메이드, 스위스 매드 워치. 출처=모저앤씨

스위스 알프 워치로 보여준 모저앤씨의 유머와 저항은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2017년 스위스에서 <Swiss Made Ordinance>라는 법을 공표했다.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 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무브먼트와 시계의 제조 비용의 60%가 스위스에서 발생해야 한다는 법이다. 날이 갈수록 아시아권에서 시계를 생산하는 비중이 늘어가며 스위스 시계의 품질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자 위와 같은 법이 제정된 것이다. 하지만 모저앤씨에게 60%라는 기준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는 시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무브먼트까지도 중국에서 들여올 수 있는 비율이기 때문이다. 2017년 1월 12일. 모저앤씨는 새로운 시계를 발표했다. 이름은 ‘스위스 매드 워치’. 60%를 말한 스위스 메이드 법에 모저앤씨는 또 다른 ‘오늘만 사는 시계’로 저항과 유머를 보여줬다. 스위스산 치즈로 케이스를 만들고 스트랩도 스위스에서 사는 소가죽으로 제작했다. 그 외 모든 부품은 말할 것도 없다. 시계의 가격은 108만 1291스위스 프랑. 스위스 건국일인 1291년 8월 1일을 가격에 그대로 담았다. 한화로 약 12억원인데, 이 시계의 매출에 의한 모든 수익금마저 스위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설립에 사용됐다. 역사상 가장 ‘스위스’적인 시계인 것이다. 절반뿐인 스위스 메이드는 진정한 스위스 메이드가 아니라는 모저앤씨의 대답이었다. 실제로 모저앤씨의 시계는 95%가 스위스 메이드다. 100%가 아닌 이유는 스트랩 때문인데, 스위스에 악어가 살지 않기 때문이다.

 

스위스 아이콘 워치(Swiss Icons Watch)

▲ 9개 브랜드의 특징을 한 몸에 담은 스위스 아이콘 워치. 출처=모저앤씨

올해 모저앤씨가 들고 온 풍자와 해학은 마케팅 비용으로 시계 값만 높인 명품 시계 브랜드들에 대한 메시지다. ‘스위스 아이콘 워치’는 무려 9개 브랜드의 특징을 한 몸에 담고 있다. 홍보 영상이 걸작이다. 시계에 들어가는 비용을 소개하며 할리우드 스타, 아티스트, 인플루언서 등을 포섭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90%를 차지하고 워치메이커에게는 시계 가격의 10%만 돌아가는 현실을 꼬집었다. 하지만 영상 끝에 나오는 시계는 더욱 걸작이다. 9개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특징을 모아놓은, 지금의 표현으로 ‘혼종’을 만들었는데 그 퀄리티가 상당하다.

나열하자면 이렇다. 롤렉스(인서트 베젤), 브레게(핸즈), 파네라이(인덱스&크라운가드), 지라드 페리고(투르비옹), 위블로(러그&케이스 볼트), 오데마 피게(옥타곤 베젤&케이스), 까르띠에(브레이슬릿&크라운), 파텍필립(다이얼 패턴), IWC(로고).

시계 하나에 표현된 인기 시계 브랜드, 유명 모델의 특징들. 이런 괴상한 작업을 했을 때 거부감 없이 열광할 수 있는 브랜드는 모저앤씨가 유일할 것이다. 이 또한 모저앤씨가 갖고 있는 ‘VERY RARE’한 부분이다. 이 시계도 올해 스위스고급시계박람회(SIHH)가 끝난 후 경매에 붙일 예정이며, 판매 수익금 전액은 스위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설립에 사용될 것이다.

 

작지만 큰 거인

▲ 스위스 아이콘 워치는 전 세계 단 한 점 제작한다. 출처=모저앤씨

역사와 기술이 있는 회사가 그 어떤 신생 회사보다 더욱 파격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오니 매혹 당할 수밖에 없다. 마케팅과 기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시계 업계에 보이는 이 브랜드의 존재감은 여느 대형 럭셔리 시계 브랜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거대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브랜드는 전 직원이 60명이 안된다는 것이며, 더 놀라운 것은 마케팅 직원이 고작 1명이라는 것이다. 작지만 큰 거인 모저앤씨는 이제 매년 기대할 수밖에 없는 브랜드가 되었다. 이제 막 2018년이 시작됐을 뿐인데, 벌써부터 모저앤씨의 내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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