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일상가젯 - 일상을 바꾸는 물건 이야기. 니콘 쿨픽스 A900 편

두꺼운 노트북을 꺼냈다. 대학시절 함께한 오래된 컴퓨터다. 뽀얀 먼지를 털어내고 작동시켜 봤다. 마치 옛 앨범 들춰보는 느낌. 소음이 크지만 다행히 켜지긴 한다.

데이터 더미가 잔뜩이다. 온갖 잡동사니 파일이 가득하다. 사진 폴더도 발견했다. 대학시절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대며 찍은 사진들이 튀어나왔다. 대부분 왜 찍었는지 알 수 없다.

뭔가에 홀린 듯했다. 카메라 뉴비(Newbie, 입문자를 뜻함) 시절이었다. 찍는 맛을 알아가는 단계였기 때문일까. 당시엔 세상이 온통 매력 넘치는 피사체로 다가왔다.

그땐 외출 준비물이 DSLR 카메라였다. 슈퍼를 가도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싸구려 보급형 인생 첫 카메라다. 몸집 산만한 물건이 어깨를 짓눌러도 괜찮았다. 사진은 더럽게 못 찍었다. 그땐 그랬지.

▲ 사진=노연주 기자

카메라를 팔아치운 지 오래다. 카메라로 사진 찍는 재미에 무감해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다. 훗날 구형 니콘 미러리스 카메라 하날 다시 샀지만 장식용 신세.

카메라란 존재가 예전만 못하다. 내게만 이런 게 아니다. 마니아는 여전히 있지만 사람들이 카메라를 ‘하나쯤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이라 생각하는 시댄 지났다.

특히 1020에게 카메라란 골동품처럼 다가오기 일쑤. 역설이 있다. 카메라는 죽었지만 사진 찍는 행위 자체는 여전히 많이들 한다. 더 하면 더 했지.

이게 다 폰 카메라 때문일지 모른다. 폰으로도 충분히 예쁜 사진 찍을 수 있는데 왜 돈을 또 들여야 하나. 카메라를 사려고 수십, 수백만 원 들이는 건 낭비 아닐지.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옛 노트북에서 옛 디지털 사진을 열어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카메라로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조용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폰카로는 채울 수 없는 카메라 감성이란 게 분명 있으니까.

다시 카메라 뉴비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뭐냐. 새 카메라를 만난 일이다. 예전처럼 DSLR이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유행이 지났으니까.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가벼우며 예쁘고 성능도 괜찮고 가격까지 착한 카메라 뭐 없을까?’ 이런 난해한 기준을 충족하는 카메라가 있었으니. 바로 니콘 쿨픽스 A900.

새로 나온 콤팩트 카메라다. 예전 같으면 눈에 차지도 않았을 거다. ‘에이 똑딱이잖아. DSLR이나 미러리스가 훨씬 낫지!’ 세월이 흐른 탓인지 생각이 달라졌다.

내 생각에 A900은 유니클로 옷마냥 합리적이다. 일단 가격이 30만원대로 부담이 없다. 콤팩트 카메라니까 렌즈 추가 구매할 돈은 생각 안 해도 된다.

사이즈 부담도 없다. 113×66.5×39.9mm에다가 무게는 299g. 주머니에 충분히 들어간다. 폰 못지않은 휴대성이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어딜 가든 나와 함께할 확률이 높겠다.

▲ 사진=노연주 기자

촬영 성능도 충분하다. 2029만 화소 이면조사형 CMOS 이미지 센서에다가 광학 35배 줌 니코르 렌즈를 물렸다. 다이내믹 파인 줌을 설정하면 최대 70배 확대가 가능하다.

손떨림 방지 기능도 지원한다. AF(자동 초점) 속도는 0.7초로 재빠르다. 30프레임 4K 영상 촬영을 지원하며 타임랩스, 슈퍼랩스, 쇼트 무비 쇼 같은 재미있는 영상 모드를 더해 디테일을 채웠다.

팝업 플래시와 틸트식 액정 모니터가 달렸다. 작지만 구성엔 빈틈이 없다. 스마트폰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면 찍은 사진을 실시간으로 SNS에 공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잘생겼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로 생겨나는 감성을 보존해줄 디자인이다. 카메라답게 생겼으면서도 옛 물건 느낌보단 스마트함이 묻어난다.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내게 카메라는 다시 일상 물건이 됐다. 언제까지 이럴지 모르겠지만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른다. 주변에 죽은 피사체가 되살아났다. 카메라 뉴비 시절 풋풋한 마음도 깨어났고.

생각났다. 옛날에 왜 이유 모를 사진을 마구 찍었는지를. 그 시절 카메라와 함께라면 지겨운 일상은 여행이고 이벤트였다. 사진을 잘 찍고 못 찍고는 상관없다. 지금 마음도 그때랑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