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가전제품 전시회인 CES 2018을 참관하며 많은 것을 느꼈다. 글로벌 가전업계의 거대한 트렌드와 인공지능의 진화, 스마트홈을 넘어 스마트시티로 달려가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의 행운과 별개로, 국내 기업들의 행보를 보면서 내심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특히 상상력의 빈곤이 마음에 걸린다.

‘정확한 예측과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글로벌 전자 ICT 업계에 왜 상상력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민감하면서도 복잡한 사안이다.

CES 2018을 경험하며 흥미롭게 본 것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막강한 존재감’이다.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은 몰라도 가수 싸이와 방탄소년단, 삼성과 LG는 다 알아본다’는 말이 진짜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행사에서 두 회사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줬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각각 우리나라의 가전제품을 책임지고 있는 훌륭한 기업이다.

문제는, ‘너무 딱딱하다’에 있다. 행사 형식이나 개인의 성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CES 2018 기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경쟁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보여줬지만, 아직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준’에만 머물렀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삼성전자는 인텔리전스를 중심으로 초연결 패러다임의 정수를 보여줬고 LG전자도 씽큐와 OLED 등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는 기존 기술의 연장선에서 충분히 예상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물론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정말 대단하지만, ‘기존에 깔려 있는 레일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의 도요타는 다양한 자율주행차 기술을 발표하면서 여기에 상상을 불어넣었다. ‘이팔렛트’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이 자율주행차에 관심이 많고, 이를 적극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도요타는 이팔렛트 내부에 상점이나 약국, 심지어 스포츠 센터로 작동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줬다.

독일의 보쉬도 마찬가지다. 부품업체라는 선입관을 비웃듯 보쉬는 그 어떤 업체보다 4차 산업혁명에 가까운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나사와 볼트, 자동차 전장장비를 ‘잘 만드는 것’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에 머물지만, 보쉬는 자기가 가진 전자장비 경쟁력에 초연결을 덧대어 완성품 업체를 역으로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냉혹한 ICT 전자 업계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한가하게 상상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맞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정형화된 패러다임을 깨고 그 이상의 사용자 경험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미 확보한 인프라를 뛰어넘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내년 CES 2019에서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한국 기업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