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시장이 ‘춘추전국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7일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유통 중인 암호화폐는 1384개에 이른다. 올해 들어 새롭게 떠오르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이 늘어나면서 시가총액 1위인 비트코인의 비중도 전체 암호화폐 시장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 출처=코인원

그런데 이토록 다양한 암호화폐가 생겨나고 있지만, 모든 거래소에서 모든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거래소의 경우 업비트가 119개 코인을 상장해 가장 많고, 빗썸과 코빗은 12개, 코인원은 9개 등 10개 내외의 코인 거래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의 경우 비트코인, 비트코인캐시,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등 4개 암호화폐만을 상장한 반면 비트렉스(Bittrex·199개), 폴로닉스(Poloniex·68개) 등의 거래소는 비트코인 외에도 다양한 알트코인 거래를 제공하고 있다. 

거래소마다 상장∙폐지 기준 ‘천차만별’

거래소마다 취급하는 암호화폐가 다른 것은 거래소마다 상장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해당 코인의 기술적 가치나 미래 시장가치, 코인을 만든 개발자나 회사 등 여러가지 기준에 따라 거래소 상장을 결정한다. 특히 알트코인의 상장은 거래소마다 기준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한다. 비트코인처럼 거래의 절대량이 많고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오른 암호화폐는 괜찮지만 신규 알트코인의 경우 가치를 담보할 기준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 코인원 홈페이지에 안내되고 있는 암호화폐 상장 정책 및 지침. 출처=코인원

코인원의 경우 암호화폐 상장 정책 및 지침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비즈니스, 인지도, 기술, 시장의 4가지 범주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암호화폐의 가치를 면밀히 검토한다. 신규 상장을 원하는 암호화폐의 경우 코인 이름이나 티커, 해당 암호화폐의 목표와 장단점, 자금 모집과 사전 채굴 여부, 로드맵과 현재 개발 상황, 작성자 정보 등 자세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심사하고 상장을 결정한다.

코인원 관계자는 “상장되는 코인에서 최우선으로 보는 것은 기술적 가치”라면서 “해당 코인이 갖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이 향후 미래 시장에 미칠 영향을 본다. 개발팀 능력이나 시장에서 코인이 갖고 있는 영향력이나 현 위치도 중요한 파악 요소”라고 설명했다. 신규 코인의 상장에 대해서 그는 “내부 리서치 팀에서 신규 상장될 가치있는 코인을 계속해서 찾고 있다”면서 “현재도 검토와 분석이 계속 이뤄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업비트는 최근 암호화폐의 상장 기준을 정리해 시각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해당 개발자가 비트렉스나 업비트에 갖고 있는 계정 정보나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 가상화폐공개(ICO) 여부, 깃업(소스코드 공유) 링크, 에스크로(Escrow) 적용 여부 뿐만 아니라 코인의 이름, 티커, 심볼 등도 고려 요소가 된다.

업비트 관계자는 “업비트의 경우 비트렉스와 공동 검토를 진행하다보니 비트렉스에 상장된 코인 중 우량 코인을 주요 고려 대상으로 둔다”고 답변했다. 

미국 최대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지난 11월 홈페이지를 통해 신규 암호화폐의 상장 기준을 공개했다. 코인베이스의 상장 기준은 크게 6가지로 ▲코인베이스의 미션과 가치에 부합하는지 ▲기술적 가치가 충분한지 ▲법적∙정책적 문제는 없는지 ▲시장 유동성이 충분하고 국제 거래가 활발한지 ▲시장의 수요가 충분한지 ▲암호화폐 시장에 기여하는 바가 충분한지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상장 암호화폐,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냐”

거래소에서 다양한 암호화폐를 취급하면 투자자들의 선택권이 늘어난다. 그러나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다보면 선택에 따른 위험성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시장에 1300여개 암호화폐가 난립하는 와중에도 모든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거래소가 없는 이유다.

▲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CEO는 4일 트위터를 통해 "리플을 신규 코인으로 상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출처=코인베이스 트위터

4개의 암호화폐만을 취급하는 코인베이스는 지난 4일(현지시간) “리플(XRP)을 신규 코인으로 상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를 통해 “코인베이스의 미션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이용이 편리한 암호화폐 거래를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우리의 기준에 따라 신규 암호화폐 상장 결정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빗썸, 코빗, 코인원 등 한국블록체인협회 소속 거래소들은 지난달 15일 모든 신규코인의 상장을 당분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투기 양상을 띠고 있는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과열을 해소하고 시장 안정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당분간 상장된 코인의 거래만을 제공하고 시스템 보안과 소비자 보호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폴로닉스는 지난해 4월과 11월 20개의 암호화폐를 상장 폐지했다. 출처=폴로닉스 트위터

거래량이 적은 암호화폐는 상장이 취소되는 굴욕을 맛보기도 한다. 68개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폴로닉스는 보통 1월, 5월, 9월 등 4달마다 상장폐지를 진행한다. 지난해 5월에는 BBR, BITS, C2, CURE, HZ, IOC, MYR, NOBL, NSR, QBK, QORA, QTL, RBY, SDC, UNITY, VOX, XMG 등 17개 암호화폐를 한꺼번에 상장 폐지했고, 11월에는 SJCX, NOTE, NAUT 등 3개 암호화폐가 상장 폐지됐다.

199개 암호화폐를 상장한 비트렉스 역시 주기적으로 암호화폐를 걸러내고 있다. 비트렉스는 상장 폐지 요건을 홈페이지로 안내하고 있는데 ▲상장 4주 후 하루 평균 거래 규모가 7일 이상 0.5BTC(비트코인)보다 적은 마켓 ▲최소 거래량 밑으로 자주 떨어지는 마켓 ▲하루 거래 규모가 0인 마켓 ▲오더북 구매가 15BTC보다 적은 마켓 ▲개발자 지원이 멈추거나 프로젝트 참여가 없는 코인 ▲보안성이 취약한 코인 ▲비트렉스 정책에 어긋나는 코인 ▲법적인 문제가 있는 코인 등이 그 기준이다.

만약 내가 투자한 암호화폐가 거래량 부족 등의 이유로 상장이 폐지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싱귤러디티비(SNGLS) 등 3개 코인의 폐지를 결정한 업비트는 거래 종료 이후 고객들에게 유선과 메일, 문자 등으로 거래 중단을 알렸다. 또 거래가 중단됐다 하더라도 서비스 종료 이후 일정 기간 동안 고객의 개인 지갑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량이 지나치게 적은 암호화폐는 상장 폐지가 되기도 한다”면서 “거래소가 코인을 상장할 때 면밀한 검토를 거치긴 하지만 투자자들도 신중하게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