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혹은 암호화폐를 둘러싼 열기가 상당합니다. 비트코인에서 시작된 가상화폐의 등장은 리플,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등 다양한 알트코인을 세상에 불러냈으며 그 중심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논의는 초기단계입니다. 가상화폐와 암호화폐를 둘러싼 용어의 통일도 필요하고 화폐의 가치, 중앙집중과 탈 중앙집중을 둘러싼 냉정한 가치판단도 필요합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을 하나의 가치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모든 가상화폐가 탈 중앙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트코인 리플은 채굴을 할 수 없고 발행될 수 있는 코인 양이 1000억개로 한정돼 있으며 발행주체가 코인을 시장에 정기로 뿌리는 방식입니다. 가상화폐도 중앙집중화를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맞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ICO(가상화폐공개 / initial coin offering)와 하드포크가 연이어 벌어지고, 각 가상화폐의 특징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시장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중앙은행과 각국 정부가 처음 가상화폐를 두고 ‘공포’를 느끼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자산의 이동에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 특히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는 가상화폐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와 화폐 가치, 그 이상의 경제 파급력을 따지기 전 가상화폐에서 탄생한 블록체인의 기술 지향점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를 건져내야 합니다. 버블에 대한 공포는 잠시 접어두고, 혹은 다른 이들에게 넘겨두고 인터넷 전체의 역사를 반추하며 블록체인을 둘러싼 큰 그림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포털의 등장 전 최초 인터넷의 등장에서 시작됩니다.

인터넷은 1960년대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 연구국(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연구용 네트워크가 시초입니다. 냉전시대 핵전쟁이 벌어져도 서로 고립된 지역의 통신체계를 연결하는 연구를 진행하던 중 처음 인터넷의 개념이 완성됐습니다. 역사적인 최초 2 노드의 상호연결은 1969년 10월29일 UCLA와 SRI연구소였고 현재와 같은 TCP/IP 기반의 네트워크 방식은 1983년 아파넷(ARPANET)이 처음이었습니다.

군용으로 시작해 발전한 인터넷은 1989년 월드와이드웹 개념이 잡히며 더욱 연결성을 강화합니다. 인터넷의 상업적 이용이 허용되며 다양한 초기 홈페이지들이 마치 거대한 바다에 떠있는 섬처럼 등장했습니다.

▲ 월드와이드웹. 출처=픽사베이

그러나 파편화된 섬들을 찾아가기에 항해자, 즉 네티즌들의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포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구글과 네이버, 다음입니다. 이들은 ‘검색어’라는 명령을 통해 섬으로 달려갈 수 있는 최적의 항해로를 서비스했으며, 네티즌들을 빨아들이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포털, 즉 플랫폼 권력이 강화되며 포털과 플랫폼 자체가 인터넷이 돼버린 현상입니다. 네이버와 다음, 구글은 인터넷 세상으로 넘어가기 위한 항구, 혹은 창문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들은 영악하게도 스스로가 인터넷으로 보이게 만드는 길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한 때 PC에서 모바일로의 변화기를 맞아 포털의 입지가 잠시 흔들린 적이 있으나, 그들은 기어이 패권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정점에는 다양한 콘텐츠로 무장한 네이버가 있습니다. 검색 품질을 포기하면서 네이버를 인터넷으로 보이게 만들려는 시도는 장기간 이어졌고, 그 동안 네이버는 미지의 바다로 향하려던 모험가들에게 안락하고 편리한 워터파크를 제공했습니다. 다행히 초연결 시대가 열리며 네이버의 방침도 일부 바뀌고 있으니, 더 두고 볼 일입니다.

여기서 건져낼 수 있는 인터넷의 핵심 가치는 포털의 등장 전, 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원래 인터넷은 모든 정보 접근성을 담보하는 일종의 공공 인프라와 같았으나 포털의 등장으로 강력한 플랫폼 권력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를 두고 IT칼럼니스트 듀어스 베이는 “낭만적인 무정부주의와 효율을 선택한 중앙권력의 관문화”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차이는 PC시대를 넘어 모바일 시대가 되자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애플의 iOS 등 모바일 운영체제가 새로운 원동력으로 부상하고 페이스북과 같은 다양한 ICT 플랫폼 회사들이 통신사의 네트워크에 올라탔습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2015년 4월13일 오픈 인터넷 규제(Open Internet Rules)를 통해 ICT 플랫폼 회사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자 세상은 점점 ‘중앙권력의 관문’으로 무게가 쏠렸습니다.

생태계(ecosystem, 生態系)라는 단어가 ICT 업계에서 흔히 보입니다.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정보의 이합진산, 혹은 연결이 플랫폼의 등장으로 패턴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O2O(Online to Offline)가 시작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사용하려는 사용자 경험도 등장했고, 이 모든 생태계에는 플랫폼이라는 권력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드웨어 기기에 소프트웨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며 iOS라는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애플, 안드로이드라는 플랫폼으로 모바일 운영체제 시장의 80%를 장악한 구글, OTT 플랫폼으로 작동하며 세계의 콘텐츠를 이동시키는 넷플릭스, 텍스트와 사진을 비롯해 영상까지 동원하며 가상현실을 소통의 플랫폼으로까지 삼아버린 페이스북 등이 성장한 이유입니다. 이들은 모두 플랫폼 기업이자 생태계 기업입니다. 여기에는 소비의 개념인 공유경제를 수익창출의 비즈니스 모델로 차용해 성장하고 있는 우버, 에어비앤비 등 온디맨드 기업들도 포함됩니다. 포털 이후 우리는 인터넷과 관련된 모든 ICT 세상에서 ‘중앙권력’을 가지게 됐으며, 기꺼이 데이터를 생산하며 중앙권력이 만드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2018년, 만인의 인터넷에서 플랫폼 권력의 등장까지 이어진 최근의 ICT 역사가 다시 변하려고 합니다. 플랫폼의 중앙집중화가 단기간에 무너지기는 어렵겠지만, 그 전조가 조금씩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입니다.

블록체인이 비트코인을 위해 탄생했고, 비트코인이 화폐경제의 변화를 노리고 고안됐다는 것은 2008년 10월 발표된 나카모토 사토시 논문인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에서 잘 드러납니다.

▲ 블록체인 자료사진. 출처=블록체인

여기서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의 방식입니다. 일정한 주기마다 블록(Block)을 찾아내고 보상을 받아가는 식으로 화폐가 생성되는 개념은, 시작부터 탈 중앙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가상화폐가 탈 중앙화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블록체인은 모든 사람이 각자 가지고 있는 분산장부를 바탕으로 동일한 기록을 확보하는 개념입니다.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체계적인 정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대목은 탈 중앙화, 즉 특정 플랫폼이 없는 풀뿌리 권력의 집합체라는 대목입니다. 이는 포털의 등장과 플랫폼, 생태계의 대두로 불거진 중앙집중형 인터넷 개념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혁명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성공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블록체인이 모든 정치, 사회, 문화 등등의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은 비중있게 다뤄야 합니다.

물론 블록체인 세상이 완전히 온다는 보장도 없고, 탈 중앙화의 바람이 현실정치와 충돌해 살아남을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고고학자가 되어 새로운 인터넷 패러다임이 된다면, 우리는 1989년 등장했던 월드와이드웹에서 세워진 ‘진짜 인터넷’의 세상과 다시 조우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각자의 충돌은 2018년 올해, 가상화폐 열기가 달궈지며 벌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