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와 근하신년 카드를 사거나 만들어서 정성스럽게 우표를 붙여 보냈다. 우편물 폭주로 인해 평소보다 배송 소요일이 길어지기 때문에 일찍부터 부지런히 챙겨야 했다. 그래서 더더욱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라는 것이 12월 초부터 훨씬 더 생활 속에서의 큰 일로 느껴졌는데, 이제는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미리 준비하게 하는 ‘아날로그적’ 카드가 사라지면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저 사라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들을 만들어낸다. ‘아날로그’ 카드가 사라지면서 한동안 많았던 것이 대량의 문자 메시지였다. 이는 대량의 수신자에게 일괄적으로 발송하는 ‘의례적인’ 것으로 느껴져 발송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한다. 또 반대로 수신하면 답변하기도 답변 안 하기도 애매했던 터라 어느 순간 서로 피곤함을 느끼고 사라져가는 것 같다.

또한 요즘에 활발하게 쓰이는 것이 바로 e-쿠폰이다. 이전에는 중요한 사람의 기념일에 케이크를 선물하고 싶으면 케이크를 사서 가져다주는 수고까지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e-쿠폰으로 보내면 받은 사람이 근처 매장에서 케이크를 교환 픽업할 수 있는 옴니 선물이 대세다. 손으로 쓴 손카드의 따뜻함은 부족하지만, 기념일에 필요한 애정어린 아이템을 편리하게 모바일 쿠폰으로 보내고 실물을 편리하게 원하는 시간에 픽업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선물 받은 사람의 행복한 기념일을 물리적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편리함과 실용성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관계와 경험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필자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지난 1년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줬던 직책자들과 열심히 애써줬던 동료에게, 그리고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 케이크 e-쿠폰을 선물했다. 고마움을 케이크만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량의 케이크를 한 번에 준비하거나 케이크들을 하나하나 다 전달하거나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것들이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나 10명이고 100명이고 편리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도 커피 전문점의 쿠폰을 선물받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들을 데리고 해당 커피 전문점에 갔다. e-쿠폰은 바코드 스캐닝만으로 편리하게 결제가 되었고, 이 쿠폰은 또한 많은 이들이 몇 배의 커피값을 지불하고도 갖고 싶어 하는 다이어리의 쿠폰으로도 인정해주어 1석 2조다.

이 커피 전문점의 다이어리는 디지털 기기와 기록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다이어리 등의 아날로그적인 기록 저장소가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컬러로, 새로운 콘텐츠로 매해 만들어져 이슈가 되었다. 대부분 사은품은 그해의 ‘Hip & Hot’한 아이템으로 품목을 변경해 만드는데, 이 브랜드는 디지털 기록 저장소의 발달로 인해 인기가 줄어가는 다이어리를 고수해왔다. 그런데 아이템을 변경해야 하지 않나 했던 다이어리가 재작년에 판매량 최저점을 찍고 작년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휴대폰이나 PC에도 다이어리나 노트를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앱이나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 굳이 손으로 쓸 것을 별도로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색상의 펜으로 쓰고 스티커를 붙여가며 정리하는 즐거움이 있고, ‘아날로그적’ 정리가 훨씬 더 잘되는 사람들은 여전히 다이어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전히 아날로그의 아기자기한 손맛을 기억하고 있고, 타이핑보다는 펜을 들고 그림도 그려가며 적은 메모가 훨씬 더 상황을, 그리고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 같아 새 다이어리도 다시 준비했다.

2017년에 쓴 휴대폰 내의 노트를 쭉 보았다. 생활에서 발견할 때마다 메모해 놓은 ‘호모 옴니쿠스’에 쓸 글감 리스트도 있었다. 연초에는 온라인에서 신기술과 새로운 플랫폼 서비스가 많이 나오면서, 오프라인 구매부터 은행까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이되는 서비스들이 많았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 기술이 오프라인 생활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편리하고 새로워서 좋았지만 사용해보고 나니 그래도 아날로그가 그리운 것들은 다시 ‘고백(Go back)’하는 현상들이 체험 쇼핑이나 다이어리처럼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 모 통신사 광고처럼 ‘기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 전반에 기술이 ‘들어가’ 생활 밀착형 옴니 서비스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2017년은 오프라인의 인프라가 디지털 플랫폼과 만나 온-오프의 연결 고리가 확산되고 다양한 디지털 기기와 디지털 행동을 통해 빅데이터가 쌓였고, 그 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검색과 추천, 그리고 개인화 등 서비스(Offering)의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 것 같다. 이제 2018년은 구축된 옴니 인프라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생활 밀착형 서비스(Offering)로 구현되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대로’ 채널을 넘나드는 호모 옴니쿠스는 의지적 ‘선택’이 아닌 생활 속 자연적 ‘습관’으로 변화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