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귀가길에 종종 가던 아파트 단지 내의 편의점이 두어 달 전에 문을 닫았다. 맨해튼 시내의 대형 편의점과 비교할 수가 없는 작은 점포로, 편의점이라기보다 동네 구멍가게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대형 상업빌딩이 없는 아파트와 주택 등 주거단지로 구성된 이 동네에서는 그래도 이 편의점이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밤중에 배가 고프거나, 비가 갑자기 억수같이 쏟아지거나 할 때 이 작은 점포가 많은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소해줬다.

폐점 세일을 한다는 소식에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을 헐값에 주워담으면서 직원에게 왜 문을 닫느냐고 했더니 귀찮은 듯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편의점이 문을 닫은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이번에는 그 옆의 남성 전용 미용실이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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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블루클럽과 비슷한 콘셉트의 이 미용실은 늘 비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문을 닫는다고 했을 때 지금까지 버틴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한 달여가 지나자 이번에는 역시 인근에 있는 비타민 등을 파는 건강용품점이 문을 닫았다. 이 상점은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선반의 모든 제품들을 없애더니 빈 점포가 되었다.

주택가라서 장사가 안 되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맨해튼 시내에서도 빈 점포가 눈에 띄었다. 맨해튼 외곽도 아니고 메이시스 백화점이 있는 펜실베이니아 기차역에 인근한 맨해튼에서도 가장 번화하고 바쁜 지역에서도 점포들이 속속 문을 닫고 빈 채로 남겨졌다.

신발을 파는 한 업체는 폐점이라는 큰 간판을 내걸고 모든 제품을 70% 세일한다고 프로모션을 해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싼 가격에 물건을 사는 손님들은 즐거워 보였지만 점포가 폐점하는 바람에 졸지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 직원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다른 점포로 옮겨가느냐는 질문에, 회사가 맨해튼 내의 점포 여러 곳을 닫는 바람에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할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광객과 뉴욕 주민들로 가장 붐비는 거리 한가운데에, 경기도 호황이라는데 왜 이들 점포는 ‘폐점 세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뉴욕시의회 헬렌 로젠탈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부유층이 많은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 지역에서만 12%의 점포가 현재 비어 있거나 임차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업체들이 최근 잇달아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설명하는 ‘온라인 쇼핑의 일상화’와 ‘온라인 쇼핑몰들의 공격적 확장’이 오프라인 상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은 이유라고 밝힌다. 정말 아마존이 오프라인 상점들의 ‘공공의 적’인 것일까.

미국 전체를 한꺼번에 일반화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인터넷이 아니라 비상식적으로 높은 맨해튼의 ‘임대료’가 상점들을 폐점으로 내모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과거 맨해튼은 대형 백화점이나 체인점보다는 작은 규모의 상점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임대료에 내밀려 개인이 운영하는 상점들은 거의 없어지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체인점들만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특히 상점들이 자리 잡은 대형 건물의 소유주가 개인이 아닌 기관투자자들이나 헤지펀드로 바뀌면서, 임차인들을 취사선택하거나 낮은 임대료를 받느니 아예 비워두는 현상이 가속화된 것이다.

특히 건물의 가치를 산정할 때 개인점포보다 대형 기업의 체인 점포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으면서 소규모의 영세점포들이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든 것이다.

맨해튼 번화가 한복판의 점포들이 잇달아 문을 닫는 것은 손님이 줄어들어서도, 온라인에 손님을 빼앗겨서도 아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임대료에 치여서 버티지 못한 때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