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이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탄탄한 반석에 올랐다는 평가다. 그러나 시스템 반도체로의 확장이 제한적인데다 올해부터 시작된 각국의 견제가 내년에도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되며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미세공정으로 대표되는 초기술 격차를 중심으로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요 실적. 출처=이코노믹리뷰 DB

중국과 미국의 딴지걸기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슈퍼 사이클(장기호황)의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D램과 낸드플래시 1위인 삼성전자는 3분기에만 반도체에서 10조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SK하이닉스는 올해 최초로 10조원 영업이익을 돌파해 13조원 달성도 유력하다. 내년에는 16조원을 넘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후발주자의 맹추격도 만만치않다. 특히 국내 반도체 업체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각국이 다양한 태클을 시도하는 장면이 감지된다.

최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현지 삼성전자 관계자를 불러 반도체 독과점 이슈로 면담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시에 중국 언론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가격 담합설을 흘리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중국 관영언론인 신화통신은 21일 "D램 가격이 199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IT 매체 전자공정세계도 비슷한 논리를 들어 가격담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글로벌 D램 가격이 치솟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독과점에 따른 가격담합이 있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직 중국 당국으로부터 독과점에 관련한 정식조사나 공문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지만, 최근 봇물 터지듯 제기되는 중국의 '담합 의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의 주장대로 D램 가격이 폭등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담합이 존재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거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이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은 내년 1분기 D램 가격이다. 모바일용 D램 가격이 내년 1분기 최대 5%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미 각 제조사에 가격 인상이 통보된 상태다. 자연스럽게 수요를 책임지는 이들은 모바일용 D램 가격의 상승을 두고 '너무 올랐다'는 주장에 이어 '이렇게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담합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러나 D램은 시시각각 공급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닌, 월이나 분기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물량이 한정적인데 공급을 원하는 곳은 대량물량을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사정에 밝은 전문 IT 칼럼니스트는 "D램은 타이트한 수급으로 올해 하반기에도 공급이 부족해 난리였다"면서 "D램을 필요로 하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최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단말기를 출하했는지 확인하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의 화웨이는 올해 4분기 애플을 누르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 2위가 유력하며 비보와 오포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보인다. 샤오미도 중국은 물론 인도를 중심으로 몸집을 키우며 상당히 많은 단말기 출하량을 기록하고 있다. D램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며 공급이 타이트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격이 오르는 것일 뿐, 절대 인위적인 '담합'은 없다는 논리가 성사된다.

'D램 가격이 지나치게 많이 올랐다'는 문제제기도 넓은 시각으로 보면 국지적인 해석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D램 가격은 1.31달러였으나 올해 11월 3.59달러로 크게 올랐다. 중국이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그러나 2014년으로 돌아가면, 당시 D램 가격은 무려 6분기 연속 하락하며 지난해 5월 1.25달러까지 가격이 떨어지는 등 바닥을 쳤던 사례가 있다.

올해 11월 3.59달러의 가격도 2014년 초의 3.5달러와 동일한 수준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긴 호흡'으로 책정된다는 점을 무시하고 가격이 올랐던 최근의 사례만 들어 '담합'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4GB 모듈의 평균 고정거래가는 더욱 확실한 가격 하락세를 보여준다. 2014년 10월 32.75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이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 4GB 모듈의 평균 고정거래가. 출처=D램익스체인지

중국이 D램 가격 담합 운운하며 전방위적 압박에 나선 이유는 '초조함'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올해 중국 D램 시장은 375억달러, 내년에는 470억달러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중국 제조사들은 글로벌 모바일 반도체의 최대 60%를 소비하는 큰 손이다. D램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 때문에 가격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구조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제조사들의 최대 공급 파트너다. 중국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며 D램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D램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메모리 반도체 역량을 강화하려는 행보도 빨라지고 있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중국의 기술력은 미세공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계와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달부터 세계 최소 칩 사이즈의 10나노급 8Gb DDR4(Double Data Rate 4) D램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1세대 10나노급 D램보다 생산성을 약 30% 높였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2012년에 양산한 2y나노(20나노급) 4Gb DDR3 보다 용량, 속도, 소비전력효율을 2배 향상한 이번 2세대 10나노급 D램 양산을 통해 일부 응용처 제품을 제외하고 전면 10나노급 D램 양산 체제로 돌입할 계획이다. 반면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18나노 미세공정 양산 계획을 이제 세웠을 뿐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지만 업계에서는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중국 D램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기술력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자 '담합'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압박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삼성전자 10나노급 8Gb DDR4(Double Data Rate 4). 출처=삼성전자

중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미국 마이크론에 대한 압박도 계속하고 있다. 독과점 담합 의혹에 포함시켜 연일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마이크론이 중국 반도체 기업인 푸젠진화반도체를 대상으로 반도체 특허와 영업비밀 탈취로 소송을 걸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으로 여겨진다.

미국도 반도체 코리아를 견제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의 반도체 패키징 시스템 업체인 테세라는 삼성전자가 패키징 기술과 같은 24개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연방지방법원, 국제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테세라의 모기업인 엑스페리도 삼성전자 반도체 제품이 들어간 갤럭시 스마트폰이 10개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한 상태다.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넷리스트는 지난 7월 SK하이닉스를 상대로 LRDIMM(Load Reduced Dual In-line Memory Module) 제품을 두고 특허 침해 소송을 걸었다. 지난해 9월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특허를 문제삼았으나 최근 ITC로부터 SK하이닉스가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예비판결을 받았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다시 SK하이닉스의 서버용 메모리 제품 중 RDIMM, LRDIMM 등의 특허침해 소송을 거는 등 SK하이닉스에 대한 공세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보호 무역주의를 내걸고 외국기업에 강력한 압박전술을 펼치고 있다. ITC의 삼성전자, LG전자 세탁기를 대상으로 하는 세이프가드 적용과 함께 반도체 분야에서도 파상공세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최근 ITC 세이프가드의 발화점인 미국의 월풀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더 큰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 2017 글로벌 잔도체 장비 출하량 보고서. 출처=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

첩첩산중...결국 기술력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에 성공했으나 미국 웨스턴디지털과의 계약위반 등을 이유로 반발하며 글로벌 낸드플래시 업계가 크게 출렁인 바 있다. 그러나 도시바와 낸드플래시는 지난 13일 이와 관련된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하고 일본 욧카이치에 건설 중인 제6공장 설비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하는 등 갈등을 봉합했다. 결국 협상의 기술로 각지에서 들어오는 '태클'을 막아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의 사례는 장기간 협업을 했던 두 회사의 특수한 사례일 뿐, '적자생존의 정글'에서는 상황이 다르다는 평가다. 결국 미세공정 등 기술격차를 통해 시장 장악력을 올리고 수요와 공급을 적절하게 조절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장기호황을 끌어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또 시스템 반도체 시장 공략을 통해 성장의 여백을 채우는 한편 무리한 시설확충을 지양하고 영악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후자가 중요하다. 최근 반도체 설비시장을 시작으로 무리한 치킨게임의 전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가 13일 발표한 '2017 글로벌 반도체 장비 출하량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매출은 559억달러로 사상 최대일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7.5% 증가한 601억달러가 예상됐다. 현명한 수요공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