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7년간 구글을 이끌며 글로벌 ICT 업계의 거인으로 군림했던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이 내년 1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2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슈미트 회장은 내년 1월 열리는 정기 이사회에서 회장은 물론 이사회 의장에서도 물러날 것이며, 앞으로는 알파벳의 기술고문으로 남는다고 발표했다. 이사회 이사직은 유지한다.

슈미트 회장은 “알파벳이 성장하고 있고 구글의 다른 서비스도 모두 번창하는 중”이라면서 “앞으로는 과학 기술 문제 해결과 자선사업에 공을 들이겠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의 행보와 비슷하다.

슈미트 회장의 퇴장은 일개 경영자의 용퇴가 아닌, 글로벌 ICT 업계의 지각변동에 준하는 거대한 역사의 변화다. 그는 적자에 시달리며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던 신생기업 구글을 최고의 ICT 기업으로 키워냈으며, ‘MS 패러다임’ 이후 펼쳐진 ICT 업계의 밑그림을 그린 창조주로 평가받는다. 항상 말끔한 정장 차림을 고집하는 나이 지긋한 초로의 신사로 보이지만, 그는 일생동안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ICT 투사이기도 했다.

▲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 사진=이코노믹리뷰DB

젊은 창업자에 끌린 20년 경력 사업가
에릭 에머슨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는 미국 프리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버클리 대학교에서 공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경력을 쌓아 선마이크로시스템의 CTO를 거쳐 노벨 CEO로 부임한다.

구글에 합류한 것은 2001년이지만 첫 만남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젊은 엔지니어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가 일으킨 신생기업 구글은 당시 닷컴버블이 꺼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무엇보다 슈미트는 구글에 합류하는 것에 미온적이었다. 그러나 두 젊은 엔지니어 창업가의 통찰력에 감탄한 슈미트는 결국 합류를 결정한다.

구글은 엄청난 천재성과 잠재력을 가진 회사지만 슈미트 부임 전, 다크호스의 지위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슈미트의 합류는 구글을 체계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는 생태계 기술회사로 변신시켰고, 그가 가진 20년 경력의 노하우는 구글을 세계 최대의 ICT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4년 구글의 기업공개, 안드로이드 개발과 발전을 주도하며 슈미트 회장은 승승장구했다. 2011년 구글의 CEO에서 물러나며 '살짝'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그는 구글이 2015년 알파벳 중심의 지주회사로 변신하자 회장직에 올랐다.

특히 2015년은 슈미트 회장은 물론 구글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으로 평가받는다. 지주회사 알파벳의 등장과 함께 선다 피차이가 구글의 CEO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2004년 구글 크롬팀에 입사한 선다 피차이는 2014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던 앤디 루빈이 회사를 떠나자 더욱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5년 2월 래리 페이지의 오른팔로 불리던 앨런 유스터스 당시 구글 부회장도 구글을 떠나는 일이 벌어지자 선다 피차이는 더욱 선명한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슈미트 회장은 알파벳의 수장으로 전체 ICT 업계를 조율하고, 선다 피차이가 핵심인 구글을 책임지는 현재의 지형이 2015년 탄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 선다 피차이 구글 CEO. 출처=GSMA 트위터

슈미트 회장은 2015년 초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인터넷은 사라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인터넷이 정말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연결의 방식이 변한다는 개념이며, 현재 우리가 말하는 초연결 사물인터넷 시대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발언으로 역사에 남았다. 슈미트 회장의 의제설정기능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한국과의 인연으로는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 최양희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만난 일이 있으며 지난해에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이 벌어졌을 당시 방한한 바 있다. 최고의 인공지능과 인간 최강자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으며 슈미트 회장은 대회가 열리던 서울의 포시즌스 호텔에 찾아왔다.

▲ 왼쪽부터 슈미트 회장,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 출처=구글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
슈미트 회장의 퇴진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일이다. 슈미트 회장은 말끔한 정장과 온화한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지만 의외로 개방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평가다.

특히 구글의 공식행사에 자신의 여자친구를 데려올 정도로 사회통념을 깨는 파행을 몸소 보여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 대표팀 감독이 선수단 캠프에 여자친구를 데려왔던 것처럼 '100%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내부에서는 잡음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근 불거진 각국의 구글 견제를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구글은 독과점 이슈로 유럽연합으로부터 3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받았으며, 세금회피논란에도 시달리고 있다. 슈미트 회장이 몸집이 커진 알파벳과 구글을 이끌며 각국의 견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도 전격적인 퇴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지루하게 흐르는 우버와의 법정공방도 슈미트 회장의 입지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최고수준의 인적자원 관리에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앤디 루빈에 이어 지난해 6월 홈 자동화를 맡은 구글 네스트 최고경영자(CEO) 토니 파델이 퇴사했다. 구글 자율주행차의 핵심이자 아이콘이던 크리스 엄슨도 구글을 나갔고 빌 메리스 GV(구글벤처스) 창업자도 지난해 회사를 나갔다.

▲ 토니 파델. 출처=위키미디어

슈미트 회장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조직 내외부를 단속하지 못한 책임론도 일부 제기된다. 실리콘밸리에 우호적이던 오바마 행정부 뒤를 이어 트럼프 행정부가 실리콘밸리에 날을 세우기 시작했던 일이 그의 퇴진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슈미트 회장의 퇴진을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증거'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슈미트 회장은 경력 초기 MS의 시장 지배에 맞서 싸웠고 오라클과의 자바 전쟁을 이끌었으며 안드로이드의 생태계 전략을 극적으로 끌어냈다. PC에서 모바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기에서 MS의 시대를 끝내고 모바일 패권을 강력하게 거머쥐었다.

이제는 모바일 너머 인공지능, 클라우드를 비롯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시대다. 모바일 퍼스트가 아닌 인공지능 퍼스트의 시대가 열린 현재 모바일 시대의 시작을 열었던 슈미트 회장의 퇴진은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이라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