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일상가젯 - 일상을 바꾸는 물건 이야기. 와콤 뱀부 슬레이트 편

#메모습관의_최후 좋은 생각을 붙잡아두지 않으면 영영 기억이 안 날지 모른다. 메모가 필요한 순간.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방식을 다양하다. 단순히 키워드 몇 개만 적어놓을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스케치까지 곁들이면 기억을 온전히 불러오는 데 유리하다.

누군가는 단순 낙서로 볼지 몰라도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는 메모로 생명을 얻곤 한다. 대학 다닐 때 메모습관을 들인 이유다. 쓰고 그리고 낙서하고. 언제 빛을 볼지 모를 아이디어였지만 하나하나 쌓아갔다. 제법 많은 노트가 책장 한구석을 차지하는 데 이르렀다.

대학 졸업할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메모를 디지털화해야겠다'고. 매번 필요한 메모를 찾기 위해 노트를 하나하나 뒤지는 건 비효율 극치였으니. 스캐너도 없어 메모를 몽땅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메모마다 키워드를 달아 '검색'할 수 있게 하려 했다.

4년치 메모는 너무나 방대했다. 디지털화 작업이 진전이 없어 지쳐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기보단 지난 생각에 매몰된 상태랄까. '이 메모가 나중에 필요하긴 할까?' 의구심도 들었다. 작업에 소홀해지다가 이내 포기해버렸다.

▲ 사진=노연주 기자

#디지털화_실패의_대가 직장생활 3년째. 여전히 메모를 한다. 노트가 아니라 스마트폰 메모 앱에 아무렇게나 적는다. 잊지 말아야 할 생각이 떠오르면 키워드 몇 개로만 대충 잡아둔다. 이전 메모는? 옛 앨범처럼 가끔 들춰보며 추억을 떠올린다. 디지털화 실패의 대가일지도.

지금은 기본이 디지털 데이터다. 디지털화가 필요 없다. 결여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작은 화면에 제한된 인터페이스로 아이디어를 온전히 붙잡긴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실제 노트 필기에 너무 익숙한 탓도 있겠지만.

아니면 머릿속 아이디어가 단순하고 초라해진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뭐가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판단하는 머리가 생겨 헛된 상상을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다. 상상 없는 척박한 현실만 남은 느낌이다. 날 흥분케 하는 아이디어가 고갈된 걸까.

▲ 사진=노연주 기자

#아날로그와_디지털을_잇다 다시 노트를 샀다. 예전 메모습관을 그리워하며. 뭐라도 끄적이겠단 생각으로 노트를 펼치기를 반복했지만 또 펜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옛날 앨범처럼 될 텐데.' 이런 메모 방식이 이젠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고상한 취미일지도 모른다. 취미보단 현실 걱정이 먼저인 요즘.

그러다 뱀부(BAMBOO)가 내게로 왔다. 와콤이 만든 신기한 물건이다. 와콤은 태블릿으로 유명한 일본 브랜드. 그림 그리는 사람이면 대부분 아는 회사다. 뱀부는 내게 문제해결 그 자체로 다가왔다.

뱀부에 노트든 종이든 올려놓고 뱀부 잉크 펜으로 자유롭게 끄적이면 스마트폰에 메모가 디지털 데이터로 전송된다. 이게 뱀부 핵심 콘셉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이어준다. 뱀부가 내게 딱 어울리는 물건인 이유.

뱀부는 세부 모델이 여러 가지다. 크게는 폴리오와 슬레이트로 나뉜다. 폴리오는 커버가 있고, 슬레이트는 노트패드만 있다. 사이즈에 따라 모델이 나뉘기도 한다. 가격은 10만원대부터 20만원대까지. 대형 뱀부 폴리오가 가장 비싸다.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다시_크리에이티브를_위해 뱀부 패키지를 열면 노트가 들어있다. 꼭 이 노트에 메모해야 뱀부가 작동하는 건 아니다. 원하는 종이에 뱀부 펜으로 생각을 그리면 된다. 언제나 곁에 두고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다가 폰과 연결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디지털 파일로 동기화 가능하다. 최대 100페이지까지 저장했다가 나중에 동기화할 수 있다.

동기화를 위해선 전용 앱이 필요하다. '와콤 잉크스페이스(Wacom Inkspace)' 말이다. 뱀부로부터 불러들인 메모를 정리와 편집은 물론 다양한 서비스로 공유할 수도 있다. 잉크스페이스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면 저장한 메모를 다른 디바이스에서도 불러오는 게 가능하다.

'뱀부 페이퍼(Bamboo Paper)'란 앱도 있다. 잉크스페이스를 보완해주는 앱이다. 그리기 툴이 훨씬 다양하다. 잉크스페이스 클라우드를 통해 메모를 불러와 뱀부 페이퍼로 검은 선들에 컬러를 입힐 수도 있다.

크리에이티브는 어디에서 오는가? 앞으로는 뱀부로부터 올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시 과거 메모습관으로 과감하게 돌아갈 수 있을 듯하다. 대신 더 스마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