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층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저개발국가의 물이나 전기를 쉽게 사용할 수 없고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을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연간 소득 5만달러를 넘기는 선진국에서 극빈층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설령 빈곤층이 있다고 해도 아예 먹을 것이 없거나 물이 없는 최악의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에서 극빈층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그래서 더욱 어렵다. 믿기 어렵지만 인구 3억2600만명의 미국 국민 가운데 12.7%인 4100만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그나마 이 숫자도 예전보다 감소한 수치로 2014년에는 미국의 빈곤층 비율이 14.8%에 달했다.

4100만명의 빈곤층 가운데 900만명은 소득이 전혀 없으며 정부로부터 어떤 보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한 가정의 연봉 중간값이 약 5만9039달러이고 남성의 연봉 중간값은 5만1640달러, 여성의 연봉 중간값은 4만1554달러인 나라에서 900만명의 사람들이 어떠한 소득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소득 불균형이 심화돼서 나타난 현상인데 미국의 부호 1~3위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버크셔 해서워이의 워런 버핏 3명의 재산을 합치면 2485억달러로 이는 미국 하위 50% 소득자들의 재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미국에서 빈곤층의 모습을 더욱 명확히 보여주는 곳은 LA로, 미국 전체에서 소득 불균형의 격차가 가장 심한 곳인 동시에 부유층과 극빈층이 가까이 살고 있다.

LA 카운티가 소득, 건강지수, 교육수준을 기준으로 삶의 질을 알아보는 인간개발지수를 적용한 결과에 따르면 벨에어-베벌리크레스트 지역의 인간개발지수는 9.24~9.51로 전국 최고인 반면 사우스LA는 2.26으로 전국 최하위였다.

미국 최빈층의 많은 숫자는 노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연방 주택도시개발부에 따르면 2016년 1월 기준으로 노숙자 수는 전년에 비해 0.7% 증가한 55만4000명이다.

노숙자 최고 증가 지역은 LA로 26% 급증한 5만5000명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LA의 마천루 옆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텐트의 행렬이 바로 노숙자들의 보금자리다.

집이 없이 텐트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노숙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한 공원과 공공시설의 대처다. 공원이나 공공시설에서 밤에 모든 화장실을 닫거나 폐쇄하면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10여개가 채 안 되는 화장실을 놓고 싸우는 상황이 매일 밤 발생하는 것이다.

이용자 숫자 대비 화장실의 숫자는 UN이 추산하는 시리아의 난민 캠프 내의 화장실 숫자보다도 적다. UN이 미국의 극빈층 문제는 단순히 빈곤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종교단체들도 이들에게는 등을 돌린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과 신흥 부유층들로 가득한 샌프란시스코에서 노숙자들에게 쉬거나 잘 공간을 제공하는 교회는 단 2곳에 불과하다.

부실한 하수 시스템 문제는 노숙자들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흑인들이 몰려 사는 이른바 ‘블랙 벨트’ 지역에서는 오래된 하수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아서 비만 오면 오수가 집안으로 역류하는 경우가 잦다.

하수관과 오수관이 모두 합쳐지는 등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서 선진국에서는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생충인 ‘구충’ 감염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여러 차례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해당 지역의 기업들과 공장들의 시설만 개선했을 뿐 고통받는 주민들의 집에 대한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최근 트럼프 정부가 진행하는 세금 감면안의 경우 80% 정도의 혜택이 상위 1%의 부유층에 돌아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빈곤층의 상실감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