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는 전국 의사들이 지난 12월 1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의사들은 문재인 케어가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비급여 진료항목이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비급여 항목은 의사들의 ‘돈벌이 수단’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급여 항목과 달리 비급여 항목은 의사들이 마음대로 가격을 매길 수 있다. 동일한 검사항목이라도 동네의원, 병원, 상급종합병원 등 병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유다. 일부 병원에서는 일부러 비급여 진료행위를 유도해 폭리를 취하거나 전문성 등을 이유로 진료비를 비싸게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러니 3800개 비급여 의료항목이 급여 항목으로 전환되면 의사들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의사들은 동네의원과 대학병원 간 의료비 차이가 사라지면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것이며,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고, 폐업하는 동네의원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의료 소비자인 국민들은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제 밥그릇 챙기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의사’라는 직업은 고수익 직종임에 틀림없는데도 집단행동을 하고 있으니 곱게 볼 리가 없다.

병원 관계자들의 생각도 일반 국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의대 지원율이 높은 이유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부터 6년이라는 교육과정, 레지던트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뭐겠는가. 물론 ‘존엄한 생명을 다룬다’는 의식 때문에 의사가 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의사도 직업이다.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것과 같다. 그렇더라도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해 국민의 ‘생명’을 이용하는 게 정당한가. 의사가 될 때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외친다. 선서 내용은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해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등이 들어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는 철학이 녹아 있다.

비급여 항목으로 의사들이 돈을 벌게 된 의료 환경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의료수가가 원가의 69%에 불과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아 비급여 항목이 사라지면 병원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의사들의 하소연은 설득력이 있다. 피부과가 아닌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등에서 미용시술 등을 하는 곳이 늘어나는 것도, 성형외과와 피부과에 전공의들이 몰리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저수가를 이유로 주사기 재사용, 과잉진료, 3분진료 등 의료소비자를 하찮게 여기는 관행을 계속해서는 곤란하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못지않게 의사가 직업윤리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의료소비자들의 불신과 불만을 읽을 필요가 있지 않는가. 의료계와 정부의 심사숙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