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산하 민간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과 소득세 부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차명 계좌는 객관적 증거에 의해 비실명이 드러난 것이므로 과세 부과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윤석헌 혁신위원장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윤 위원장은 “혁신위는 2008년 삼성 특검으로 드러난 이 회장의 1197개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과 소득세 차등 과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서 “과세당국의 중과세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당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된 비실명계좌에 대해서도 혁신위는 과징금 부과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명의인 실명으로 개설된 계좌가 추후 실명제 실시 이후 실소유자가 밝혀진 경우는 예외로 뒀다. 이에 대한 과징금 부과는 해석상 논란이 있기 때문에 국회 등의 논의 과정에서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특검이 밝혀낸 이건희 차명계좌, 실명전환·세금납부 모두 없었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논란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은 이 회장이 삼성 임직원 명의로 된 차명계좌에 4조 5000억원 규모의 재산을 은닉한 사실을 적발했다.

당시 삼성은 이를 인정하고 차명계좌의 실명 전환을 약속하고 세금을 내겠다고 했으나 이를 모두 지키지 않았다. 계좌의 실명(이건희) 전환도 없이 돈을 인출해간 정황히 포착됐으며 인출 당시 세금도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 1197개 중 금융실명법상 실명확인 절차가 제대로 준수되지 않아 제재를 받은 계좌는 모두 1021개다. 이중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시행일 이후 개설된 계좌는 1001개로 이는 삼성 구조본부에서 임직원의 실명을 이용해 편법으로 만든 계좌다.

나머지 20개는 금융실명제 이전에 개설됐는데 이중 일부는 차명이고 나머지는 가명으로 개설됐다. 이들 계좌는 실명 전환 의무 기간(1993년 8월 12일~1993년 10월 12일) 동안 실제 소유자(이건희)가 아닌 타인의 ‘실명’으로 전환됐다.

채워지지 않은 금융실명법 '맹점'

정황 포착 이후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법에 ‘맹점’이 있었기 때문이다.현재 금융실명법(금융실명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법률)이 의미하는 ‘실소유자의 차명계좌’가 금융실명법상 ‘거래자의 실지 명의 계좌’에 해당하는 지 여부와 실명 전환 여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이 이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금융실명법 제3조는 “금융회사등은 거래자의 실지명의로 금융거래를 하여야 한다”라고만 돼 있을 뿐 ‘거래자’가 실제 소유자’만을 의미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금융실명법 제5조는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소득세의 원천징수세율을 100분의 90”으로 중과세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이에 해당하는지를 해석하는 데 논란이 있었던 것.

금융위원회는 그간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타인 명의의 실명으로 개설된 계좌로 금융실명법 상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고수해왔다. 차명계좌에 있는 재산은 현존하지 않는 가상인물의 재산인 비실명재산이 아닌 실명재산이라는 입장이었다.

지난 10월 치러진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는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10월 30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당국 종합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차명계좌라도 수사당국 등에 의해 확인되면 금융실명법 제5조에서 말하는 비실명재산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지적했고,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최 위원장은 “삼성 관련 차명계좌는 금융감독원과 협의해 인출, 해지, 전환 과정을 점검하고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 지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국정감사 직후 금융위가 낸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차명계좌는 원칙적으로 차등 과세 대상”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금융위원회 산하 민간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20일 권고안을 통해 이 회장 차명계좌는 과징금·소득세 부과 대상이 맞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혁신위,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과 소득세 부과 대상"

이번 혁신위의 권고안으로 이 회장 차명계좌를 둘러싼 논란은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혁신위는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차등 과세 적용 여부를 “최근의 금융당국의 입장에 다르면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개설된 차명 계좌는 금융실명법 제5조의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 해당하므로 금융실명법 제5조에 따라 고율(최대90%)의 소득세가 부과될 것”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이 회장 차명계좌의 실명 전환 의무와 관련해서는 판례에 따라 과징금과 소득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의 경우 실명 전환 의무가 있어 전환 의무 기간(1993년 8월 12일~1993년 10월 12일) 안에 실소유주로 실명 전환이 이뤄져야 했다.

이 회장 차명계좌의 경우 의무기간이 지난 후에 실소유주로 실명을 전환했기 때문에 금융실명법 부칙 제6조에 따라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자 및 배당 소득에 대해서도 금융실명법 긴급재정경제명령 제9조와 금융실명법 부칙 제7조에 따라 고육의 소득세가 부과될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실명 전환 의무 대상인지에 대한 해석상의 논란을 없애기 위해 국회와의 논의를 거쳐 입법으로 이를 해결하도록 권고한다고 밝혔다. 금융실명법 상 ‘차명계좌도 실명 전환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