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오 복음서 6장 9절에서 13절에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한 주기도문 구절이다. 이 구절은 ‘시험’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고난도의 시험은 예수도 치른 바 있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있는데 시험하는 자(사탄)가 나타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을 빵으로 바꿔보라’고 유혹한다. 그러자 예수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답하여 사탄의 첫 번째 유혹을 물리쳤다고 한다.

말이 쉽지 40일간 금식하고 있는데 음식으로 유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예수는 이런 어려운 사탄의 시험을 세 번이나 통과했으니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주기도문에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말도록 기도하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시험을 당하는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이리라.

시험에 대한 학생들의 괴로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험을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해진 기준에 의해 자신의 우열이 정해진다는 것은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세상사는 모든 것이 시험과 평가에 의해서 정해지지 않는가.

최종 발표와 평가를 하는 강의실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마지막 수업에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누가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 누가 자신의 조를 집요하게 감시했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특히 ‘미투 전략’을 사용한 조가 누구였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한 팀 한 팀이 발표를 이어갔다. 최종 수익률을 발표할 때에는 탄성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은 모두들 똑같이 ‘지옥의 문’을 거쳐 왔기 때문에 각 팀의 성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동병상련’,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목표 달성에 실패한 팀에게는 오히려 많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왜 목표 달성에 실패했는가, 그리고 자신의 전략 전환이 왜 신속히 되지 못했는가를 담담하게 이야기할 때는 안타까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인간사회는 다 그런 것이다. 인간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승리한 자에게도 박수를 보내지만 처절하게 패배한 자에게는 더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실패한 팀 중에 원재료의 독점적 거래를 시도한 팀(편의상 A팀이라 부르자)이 있었다. A팀은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해서 수요와 공급의 시간대와 누가 공급하는지를 파악했다. 그리고 제품 제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지만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 품목을 골랐다. 소위 시장의 독점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들은 재료를 사 모으고 매각의 시간을 기다렸다.

그들이 기다리던 가운데 원자재의 가격이 폭등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공급이 쏟아져 나왔다. 가격은 반대로 폭락했고, A팀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A팀을 모방한 미투전략을 사용한 ‘닌자 집단’이 바로 당사자로 지목되었다(B팀이라 부르자). 누군가 자신들을 감시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팀이 바로 실패한 A팀이었다.

드디어 모방전략을 사용한 B팀이 등장했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필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B팀은 A팀보다 빨리 원자재를 처분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린 팀이었다. 자신들의 미투 전략을 설명하는 순간 강의실이 술렁였다. 그리고 패배한 A팀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너희들이었어!”

A팀 팀원 4명은 일제히 일어서 부르르 떨고 있었다. 두 팀은 개인적으로도 친구들이 섞여 있었다. 그랬기에 분노와 배신감은 더욱 컸던 것 같다. 내버려 두었으면 뛰쳐나가 난투극이 벌어질 상황이었다.

일단 상황을 진정시킨 후 다시 한 번 이번 수업에서의 규칙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실제 사례를 들려주었다.

1997년은 한국인에게는 악몽과 같은 외환위기의 해다. 이 위기에 직면한 삼성전자는 필사의 전략을 수립하고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일본의 DRAM 경쟁자들이 대응할 수 없는 날, 그것은 골든위크라 불리는 일본의 황금 연휴였다. 거의 10일에 걸쳐 일본 전체가 휴가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로 따지면 구정이나 추석 연휴와 비슷할 것이다. 음식점도, 가게도, 은행이나 관공서도 대부분 문을 닫는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골든위크가 시작된 바로 다음 날 삼성전자는 시장에 DRAM의 물량을 쏟아 부었다. 그해 연말까지 소요되는 물량을 대폭 할인한 가격으로(혹자는 반값이라고 하지만 가격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글로벌 시장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이 비상 상황에 일본의 반도체 업체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연휴가 끝나 회사에 복귀했을 때 그들은 이미 상황이 종료된 것을 알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은 몰락하기 시작한다. 삼성전자의 전략에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B팀이 사용한 것은 바로 삼성전자가 IMF 직후에 사용한 전략이었다. 학생들에게 삼성전자의 전략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를 질문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경쟁과 윤리는 양립할 수 있는가.’

A팀과 B팀은 수업 후 각각 다른 문으로 나갔다. 그 후 두 팀의 친구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