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가 망 중립성 폐지를 결의하면서 글로벌 ICT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당장 국내만 봐도 통신사들은 환영하고 있으며 네이버, 카카오가 포함된 인터넷기업인협회는 우려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국내 망 중립성 원칙은 당분간 지켜질 가능성이 높지만, 글로벌 기업 역차별 이슈 등 국내 ICT 업계는 한동안 혼란에 빠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망 중립성 폐지가 이뤄진 미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통신사들이 망 운용권을 확실하게 가져가며 과도한 트래픽이 발생하는 ICT 플랫폼 기업인 구글과 페이스북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의외로 실리콘밸리가 침묵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글로벌 ICT 기업들이 완전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반발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을까요? 통신사들은 페이스북에 과도한 트래픽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돈을 더 요구할 것이며, 당연히 페이스북은 망 중립성 폐기의 ‘쓴 잔’을 맛봐야 합니다. 지난해 MWC 2016 당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이미 망 중립성 폐지로 가닥을 잡은 유럽 통신사들의 소굴로 들어갔고, 기조연설 당시 현지 통신사 임원들은 집단으로 ‘졸아버리는’ 방식으로 그에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인데, 왜 평온할까요?

NYT를 비롯한 다수의 외신들은 ‘시장을 선점한 거인의 여유’로 해석합니다. 망 중립성이 폐기되면 ICT 플랫폼 기업들은 통신사에 망 사용대가로 돈을 더 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인이고, 시장을 선점했으며 무엇보다 돈이 많습니다. 현재 모든 기업의 글로벌 시가총액 1위, 2위를 다투는 곳이 바로 구글의 알파벳과 애플입니다.

이들에게 망 중립성 폐지는 뜻밖의 호재가 될 수 있습니다. 사업의 유지비용은 더 들어가겠죠. 그러나 이미 시장을 확보하고 플랫폼 경쟁력까지 확보한 그들은 후발주자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이미 ICT 플랫폼 최강자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문제는 후발주자의 반격인데, 후발주자들은 구글과 페이스북에 도전하기 전 없는 살림을 쪼개 망 중립성 폐지에 따른 비용 지출부터 걱정해야 합니다. 100을 가진 사람에게 1의 피해는 소소하지만, 10을 가진 사람에게 1의 피해는 심각합니다. 10을 가진 사람은 100에게 도전할 길이 더 어려워집니다.

▲ 망 중립성 폐지 반대 시위. 출처=플리커

여기서 국내 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어떨까요?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구글과 페이스북처럼 ‘빙그레’ 웃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공식으로 두 회사는 망 중립성 폐지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통신사가 망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원론적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구글과 페이스북과 같은 ‘의외의 미소’는 지을 수 없을까요? 글로벌 ICT 업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사업의 국경이 없다’입니다. 망 중립성이 폐지되어 이미 시장을 선점한 기업들이 뜻밖의 호재를 만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에서나 1등과 2등이지 세계에서는 아직 확실한 입지를 다지지 못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과 싸우려면 망 중립성 폐지가 불리합니다.

온도차이는 있습니다. 상대적인 관점이지만 네이버는 글로벌 서비스를 차례로 시작하며 ‘탈 대한민국’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장한 라인은 물론 최근 조직을 쪼개고 합쳤던 캠프모바일까지. 프랑스와 협력해 유럽과 손 잡고 실리콘밸리에 맞서야 하는 네이버는 망 중립성 폐지가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잡는 순간 경쟁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면 카카오는 아직 철저한 내수지향 비즈니스 모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패스 모바일도 일단 실패로 끝난 마당에, 카카오택시가 도쿄택시와 만나고 콘텐츠 사업이 일본에서 태동하는 수준입니다. 내수지향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면 글로벌 ICT 업계의 변화에도 나름의 타격을 받겠지만, 일단 국내에서 벌어지는 ‘게임’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카카오는 망 중립성이 폐기된다고 가정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구글과 페이스북의 지위를 조심스럽게 넘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플랫폼으로 통하는 시대, 외부에서 내수지향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기 전의 ‘화양연화’겠지만 말입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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