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화폐의 조건은 1) 소비자, 기업, 정부 등의 경제주체 사이에서 지불수단이 되어야 하고, 2) 구매력을 측정할 수 있는 단위 또는 재화와 용역에 대한 가격기능이 있어야 하며, 3) 미래의 지출을 위한 현재소득에 대한 경제적 가치의 보전 능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나라별 고유화폐를 발행하고 지불수단으로서의 신뢰도를 법적으로 담보해 주고, 안정적인 가격기능 유지를 위해 중앙은행은 통화량 조절 등의 정책을 수행한다. 결국 이러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을 통한 화폐의 안정성에 의해 현재소득의 미래가치 보전도 가능해진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각국의 화폐는 한 단위당 어느 나라에서든 동일한 구매력을 갖도록 환율이 조정해주는데, 환율조정에 대한 기준이 필요한 바 세계2차대전 말인 1944년 전승국인 미국의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전 세계 44개국 대표가 모여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협정을 맺음에 따라 오늘날까지 미국 달러가 국제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기준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브레튼우즈 협정의 초기에는 미국 달러와 실물인 금과의 교환이 가능한 금태환제도를 시행함으로써 기준통화로서의 신뢰도를 유지했으나, 가치보전성에서 미국 달러가 실물인 금보다 낮아 각국이 금태환를 요구하고 미국은 금태환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1971년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고 이후 미국의 달러화는 법화로서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중앙은행 시스템이 국가가 아닌 세계적인 자산가들이 주인인 FRB(Federal Reserve Board; 연방준비제도)에 의해 통화가 발행되어 미국정부도 FRB에게는 채무자에 불과하고 미국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임에 따라 달러의 신뢰도와 달러에 Pegging(연동)되는 환율의 신뢰도에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서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필명으로 정체불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기존 화폐의 대안으로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개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상화폐는 전 세계 공통의 화폐개념이므로 환율이 필요 없고, 블록체인이라는 인터넷 가상공간에 거래기록이 분산 저장됨에 따른 해킹방지 시스템이라는 점 등은 기존화폐의 단점을 보완한 화폐로 보여진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취약성 때문에 화폐의 기능보다는 무형투자 또는 투기 상품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소비자,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 사이의 지불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거래가 이루어지는 모든 장소 및 주체가 가상화폐를 받아들이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신용카드나 페이시스템도 거래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을 다룰 수 없다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점, 무역거래를 위해서는 각국의 법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등에서 거래의 지불수단이 되기에는 극복해야 할 문제점들이 만만치 않다.

둘째, 구매력 측정 가격기능인 바, 가격기능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으나 가상화폐 자체의 가치가 극심한 변동성을 보임에 따라 가치의 안정성에서 취약성을 노정하고 있다. 기존 기축통화인 달러화는 그나마 발행주체의 통화정책에 의해 가치의 안정성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나, 가상화폐의 경우 발행주체가 없고, 통화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이 불가능함에 따라 가격기능을 수행하기에는 변동성이 너무 심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셋째, 현재가치에 대한 미래가치 보전성에서도 가상화폐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미 가상화폐는 비트코인 하나만이 아니고 이더리움, 비트코인캐시 등 여러 종류의 가상화폐가 등장하고 있으나 누군가 개인 또는 사기업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가상화폐를 만들 수 있고, 예정된 가상화폐의 총수량도 정체불명의 개발자 개인의 의지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점, 주조차익이라 불리는 시뇨리지효과(Seigniorage effect)를 개인이나 사기업이 누린다는 점, 공신력 있는 정부나 국가의 법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미래가치를 보전하가가 불확실하다.

즉,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새로운 가상화폐를 수없이 만들어내고, 한정된 발행량을 조작하여 사익을 추구하더라도 그 누구도 책임질 주체가 없는 상황이 오고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며 사라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상화폐가 진정한 화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들에서 취약점들이 존재하나 그것을 극복하고 화폐로서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오히려 가공의 무형가상화폐가 투기나 투자의 대상물로 급하게 진행됨에 따라 가치안정성 및 가치보전성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고, 투기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상화폐를 투기나 투자 대상물로 여기는 세력 입장에서는 주식과 마찬가지로 가치상승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가치상승후 기존화폐로의 교환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상화폐는 이미 화폐가 아니고 상품으로서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다.

다만, 익명성 때문에 가늠하기조차 불가능한 지하경제의 돈이 적절한 법적 규제에 따라 양성화 될 수도 있다는 점은 긍정적일 수 있다. 결국, 현재의 가상화폐 시스템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이상적인 화폐시스템을 위한 도전으로 만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