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와 나노전기화학을 연구하던 학자가 농식품 산업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데이터를 이용해 농산물과 가공식품의 신선도를 체크할 수 있는 센서를 만들었다. 제품 라벨에 붙은 유통기한보다 더 정확하게 제품의 선도를 표시할 수 있는 ‘실시한 유통기한’ 센서다. 독일의 얀 슈니트커(Jan Schnitker) 대표(34)와 동료들이 창업한 ‘이즈 잇 프레쉬’(Is it fresh?)라는 벤처기업 이야기다. 2011년에 발족한 이 벤처는 유럽에서 가장 큰 연구기관 중 하나인 독일 율리히 연구소(Forschungszentrum Jülich GmbH) 출신 전문가들이 만들었다.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나노전기화학을 연구하면서 정보가 제일 불투명한 농식품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얀 슈니트커 창업자와 박지현(30) 한국법인 대표를 12일 만났다.

▲ 사물인터넷 기반 실시간 식품 유통기한 측정 센서를 개발한 얀 슈니트커 이즈잇프레쉬 대표와 박지현 한국법인 대표(촬영=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10원짜리 센서 만들게 된 원동력은 나노 전기 화학 연구”

슈니트커 이즈잇프레쉬 대표는 뇌과학 박사다. 그가 전공한 분야는 나노-전기화학이다. 아주 작은 소재나 물질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화학적 에너지를 전기적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다. 그 중에서도 슈니트커 대표는 대용량의 인간 두뇌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기 위한 센서에 대해 오래 연구했다. 삼성전자, 구글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센서 기술 연구와 빅데이터 연구를 병행해 왔지만 충분히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상용화는 어려웠다. 센서 가격과 데이터 채집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슈니트커 대표는 “잉크젯으로 센서를 찍어내는 방식으로 접근법을 바꿨다”면서 “종이보다 좀 더 얇은 센서로 어떤 사물에나 부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그는 전세계에서 매일 1천 만 톤이 넘는 ‘멀쩡한 음식’이 그냥 버려진다는 사실에도 착안했다. 집단 식중독 문제도 계속해서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슈니트커 대표는 “정보 처리와 유통이 가장 후진적인 농식품 산업에 센서와 빅데이터가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보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와 동료들이 개발한 ‘10원짜리 센서’의 이름은 ‘프레쉬태그’(Freshtag)다. 박지현 이즈잇프레쉬 한국법인 대표는 “개인 소비자에게는 프레쉬 태그를 무상으로 배포할 것”이라고 밝히며 “이 태그를 통해 식품의 질을 관리하려는 사업자들, 국가 기관들이 유료 고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즈잇프레쉬는 실시간으로 얻은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플랫폼을 내부적으로 갖고 있다. 이 기반을 통해 제품의 품질은 물론이고 물류, 판매 실적, 향후 유망 시장 분석 등 다양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이즈 잇 프레쉬 포부는 ‘모든 사물의 디지털화’

이즈 잇 프레쉬가 지향하는 비전은 ‘모든 사물의 디지털화’다. 거의 10년 넘게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이야기가 전자업계에서 나왔지만 감히 꿈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비용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이즈 잇 프레쉬는 일반 고객에게는 보급형으로 센서를 뿌리고, 기업에게는 돈을 받는 모델을 통해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 정책을 실현하려고 한다. 슈니트커 대표는 “일회용 수준으로 쓸 수 있는 스티커형 센서를 연구한다기에 독일 농식품부에서 200만 달러(한화 20억 원)를 연구비로 지원했다”며 “각 식품의 산도와 습도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플랫폼을 통해 안전 관리 방향을 제안해 주는 서비스도 개발했다”고 밝혔다.

식품 유통 과정에서 기업 고객들의 비용을 가중시키는 ‘회색 시장’(정보의 비대칭을 활용해 제품 유통 가격을 올리는 것)을 막는 데에도 ‘프레쉬태그’가 유용하다. 박지현 대표는 “중간 유통업자들을 끼고 판매되는 식품이나 농산물의 경우 A 국가에서 싸게 산 제품을 B 국가에서 비싸게 유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프레쉬태그를 활용하면 생산 원가가 추적될 수 있기 때문에 회색 시장을 없애는 데에도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사물인터넷이 제품 원가를 줄여줄 수 있다는 점은 국내 식품 가공 회사들이나 전자제품 제조사들에게도 큰 매력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레쉬 태그’는 유통 과정에서 물량을 속이거나 원가를 지나치게 부풀리는 부패 문제에도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얀 슈니트커 이즈잇프레쉬 대표가 '10원짜리 센서' 프레쉬태그(Freshtag)를 소개하고 있다(촬영=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한국은 가장 좋은 테스트베드

슈니트커 대표는 “한국 시장이 매우 좋은 테스트베드”라고 강조했다. ICT 보급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높고, 정보에 대한 접근도 쉽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EU와 한국을 비교하며 “정보 공유에 매우 개방적인 문화”가 한국 특유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식품 기업들은 자신들의 데이터가 외부 플랫폼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데이터를 기업 안에 가두려고 한다”는 게 슈니트커 대표의 분석이다. 데이터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 때문에 유럽의 농식품 시장은 점점 규모가 커지기보다는 기존 기업들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얼룩져 있다.

또 슈니트커 대표는 “한국 기업의 경우 농식품 산업의 강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의 힘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기회 요소”라고 주장하며 “자기 제품을 객관화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품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개인 정보 보호 문제 등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고객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슈니트커 대표는 이 점에 대해 “프레쉬태그는 페이스북 이용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며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센서를 떼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자기 데이터가 분석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금방 서비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들 간의 동반성장 돕는 플랫폼 되겠다”

박지현 이즈잇프레쉬 한국법인 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데이터를 많이 모아서 빅 브라더(big brother)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 간 투명한 정보 공유를 돕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기업 간에 상품을 거래하는 경우에 품질 관리와 가격이 상당히 중요한 신뢰의 변수”라며 “프래쉬테크는 사물인터넷을 통해 비효율을 없애고자 하는 사업자들이 모두 이득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얀 슈니트커(Jan Schnitker) 이즈잇프레쉬 대표는 독일 아헨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율리히 연구소에서 뇌과학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부터 스마트 센서 연구를 시작해 '이즈잇프레쉬'를 창업하고 현재 최고경영자 역할을 맡고 있다. 
박지현 이즈잇프레쉬 한국법인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올 여름 이즈잇프레쉬의 아시아 시장 진출과 함께 참여하게 된 멤버다. 이즈잇프레쉬는 아시아 시장 진출의 거점 지역으로 한국을 선택한 뒤, 미래창조과학부 사업 중 하나인 ‘K-Startup Grand Challenge’에 참여했고 해당 프로그램 전반적 과정을 박 대표가 맡아 이끌어 최종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