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탈원전 방침에 강하게 반발한 국내 원자력계가 뒤늦게 반성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후원으로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와 경희대학교 미래사회에너지정책연구원이 14일 연 ‘원자력 신뢰와 소통’이라는 제목의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한수원을 비롯한 원자력 관련 기관의 보수성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장순흥 한동대 총장,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황일순 서울대 교수 등 ‘원자력계 중진 인사’들이 참석해  한수원의 대응 방침을 비판했다. 두 기관은 원자력 정책과 사회 여론 조사 등의 융복한 연구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주한규 서울대학교 원자력센터장,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박상덕 전 한전 전력연구원장, 윤지웅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등이 핵심 구성원이다.

▲ 이유한 서울대 교수가 역대 정부와 원자력계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촬영=천영준 기자)

원전계 중진들 “원자력계 폐쇄성과 감정적 대응 반성해야 한다”

참석자들은 “원전과 관련된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동안 원전계의 보수성과 폐쇄성에 대해서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주한규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장은 “내년부터 원자력 안전 기준이 강화되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면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 지원에 대한 정부 검토,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상생 방안 등 다양한 미래 과제들에 대해서도 원자력계가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전까지 원자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듣기 힘든 발언이었다.

장순흥 한동대 총장(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이 정부 핵심 인사들이 탈원전을 주장한다는 게 그동안 정설이었지만,  대화를 거듭할수록 당국자들의 자세가 바뀌고 있다고 본다”면서 “정부가 원전계를 압살하려 한다고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뒤집어 말하면 원자력 업계가 정부에 감정적으로 대응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장 총장은 “이낙연 국무총리나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 모두 원전계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한수원 이종호 기술본부장의 뒤늦은 ‘반성’도 뒤따랐다. 이 본부장은 “오늘날 원전계의 위기는 결국 우리 책임”이라고 인정하고 “외부 여론의 변화를 직시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 동안 전력학계에서 원자력계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원자력계는 요지부동이었다.  국회 등 정치권과의 교감이 부족한데다  기술적인 해명 이외에 사회ㆍ문화적인 담론 조성 능력도 미흡하다는 비판도 들었다.

원자력 발전의 핵심은 ‘동반성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이명철 원장은 “40년 동안 핵의학을 전공하면서 원자력 발전 분야를 ‘형님’으로 보고 원자력계에 꾸준히 참여했다”면서 “원자력계는 제조업과 장치산업의 발전까지 함께 견인했던 만큼 앞으로도 다른 산업과 ‘공진화’(共進化)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진화는 함께 성장한다는 뜻이다.

박상덕 전 한국전력연구원장은 “탈(脫)원전이나 친(親) 원전이라는 극단의 주장이 아니라 ‘적정 원전’이라는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박 전 원장은 고리 1ㆍ2호기 운영 직원으로도 근무한 경험이 있는 ‘원전 1세대’ 연구자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원전이 언제까지 필요한지 기술을 따져 보고, 경우에 따라 줄여 나갈 수도 있다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도 이명철 한림원장과 마찬가지로 “타 산업과 원자력 발전의 동반 성장 방안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대중적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원장은 수소 연료 전지를 활용한 원전 비상 전원 설비 구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 이유한 서울대 교수가 분석한 원자력계의 강점, 약점, 기회, 위협(SWOT) 자료(촬영=천영준 기자)

“한수원의 소통부재 극복해야 ”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이유한 교수는 “정부와 원전의 관계는 지난 60년 동안 계속 변동성이 있었다”면서 "한수원 입장에서는 지금 정부의 탈 원전 기조가 원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고 역설했다.

원자력발전을 본격 시작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는 '친(親) 원전'이 우세했지만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원자력연구원을 ‘한국에너지연구원’으로 개편할 정도로 원자력에 대한 반감이 강했다. 그 후 김영삼ㆍ김대중 정부 들어 에너지원의 생산성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다시 시작되면서 국내 원전 개발과 해외 원전 수출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도 필요에 따라 원전을 국가 산업으로 연구한 정부”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탈(脫)원전 자체에 많은 대중들이 공감하게 된 원인에는 한수원 등의 소통 부재도 한 몫 했다”면서  “원전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여론을 원망하지 말고 새로운 전략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원자력계의 반성에도 한수원이 귀를 기울일지는 의문이다.  국민을 설득할  노력할 자세는 보이지 않고 고압적인 자세를 보인 한수원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에 진심으로 공감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