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일상가젯 - 그 물건에 얽힌 일상 이야기. 폴라로이드 원스텝2

#겨울 사진 가을 무렵에 이런 주장을 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출사의 계절이다!' 이제는 겨울이다. 영하 10도를 오가는 추운 날씨가 지겹다. 어디 나가기가 싫다. '겨울도 출사의 계절'이라 우기는 건 기만이겠지.

사진 찍기엔 영 어울리지 않는 계절. 그럼에도 겨울에 사진을 찍어야 한다. 겨울에만 찍히는 사진이 따로 있거든. 소복하게 눈 덮인 도시풍경, 뾰족한 고드름, 앙상한 나뭇가지가 주는 헛헛한 느낌은 겨울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찍을 수 없다.

물론 겨울 출사는 대단한 도전이기도 하다. 차갑게 식은 메탈 재질 카메라를 장갑 낀 둔한 손으로 쥐고 콧물 흘려가며 셔터를 눌러대야 한다. 볼이 얼얼해진다. 막상 무채색 풍경을 프레임에 담으면 왜이리 칙칙한지.

▲ 사진=노연주 기자

#폴라로이드의 부활 겨울 무렵에 폴라로이드가 내게로 왔다. 즉석 카메라의 시조새 말이다. 이렇게 물을지 모르겠다. "폴라로이드 망하지 않았어?" 후지필름 즉석카메라 인스탁스를 가지고 다니면 이런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네!" 참 미묘하다.

폴라로이드는 죽었다 살아났다. 1990년대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시장이 맛이 갔다. 폴라로이드도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다. 회사가 문을 닫으며 브랜드 수명이 끝나는 듯했다.

임파서블 프로젝트라는 회사가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한 폴라로이드를 구하려 뛰어든다. 네덜란드 폴라로이드 필름 생산 공장을 인수해 다시 가동했다. 그리고 올해 9월, 임파서블 프로젝트는 아예 사명을 폴라로이드 오리지널스로 바꿨다. 부활이자 시작이다.

▲ 사진=노연주 기자

#40년 만에 돌아온 후속작 정확히는 폴라로이드 원스텝2가 내게로 왔다. 폴라로이드 브랜드 탄생 80주년 기념 신제품이다. 전작 원스텝1은 무려 40년 전에 등장한 물건이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대중화를 이끈 의미 있는 모델이다. 원스텝2는 두리코씨앤티가 폴라로이드 오리지널스와 독점 계약을 맺고 국내에 들여왔다. 가격은 16만원대.

원스텝 랜드 카메라 1000과 똑 닮은 디자인이다. 클래식을 보존하면서도 트렌드를 받아들인 겉모습이랄까. 아기자기한 인스탁스보단 중후하며 카메라다운 생김새다. 손에 쥐어보면 460g으로 다소 묵직하고 큼직하다. 토이카메라와는 다르다.

단순히 옛날 물건을 다시 출시한 수준은 아니다. 디자인과 기본 콘셉트는 유지하면서 조용한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노출 보정을 위한 강력한 플래시는 물론 셀프 타이머 기능을 새로 탑재했다. 렌즈 성능을 끌어올리고 내장 배터리를 장착했다. 휴대폰 충전기로도 충전이 가능하단 얘기다. 한번 충전하면 60일을 버티니 배터리에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이렇게 디지털 시대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 폴라로이드 원스텝 랜드 카메라 1000. 출처=위키미디어
▲ 출처=폴라로이드 오리지널스

#0과 1이 모르는 감성 요즘 시대에 너무 오래 기다리면 짜증만 난다. 장롱에서 필름 카메라 꺼냈다가 금방 다시 집어넣는 이유. 폴라로이드는 적당한 기다림을 안겨준다. 이 기다림은 디지털 카메라 시대를 지나 폰 카메라 전성시대인 지금, 색다른 경험이다.

설렘이 있다. 조금은 어설픈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응시하고, 셔터를 누른 다음에, 딸려나오는 필름 받아들어 상이 맺히기를 기다리는 일련의 과정이. 큼직한 정방형 포맷 클래식 폴라로이드 필름에 맺힌 일상 풍경 역시 낯설게 다가온다.

디지털 시대에 잊고 살았던 감성이 살아난다. 0과 1로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감성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포착해낼 줄 안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는 죽지 않는다. 조금 불편하거나 값이 더 든다 해도 끝내 살아남을 듯하다.

일상에서 뭔가를 가볍게 찍을 땐 역시 스마트폰 카메라가 편하지만 특별한 순간을 감성이 뚝뚝 흘러내리게 찍고 싶다면 폴라로이드가 딱이다. 이제 아날로그 감성 겨울사진을 찍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