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로 여겨지는 인공지능(AI)이 음성 인터페이스와 만나 스피커라는 하드웨어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는 에코 스피커에,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는 구글홈에 담겼으며 국내 통신사 KT는 IPTV 경쟁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TV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기가지니 패밀리 파생 플랫폼까지 출시했으며 SK텔레콤은 누구 스피커에 이어 누구 미니 등 파생 라인업을 추가하는 한편 내비게이션 T맵과 연동됐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국내 ICT 업계를 좌우하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행보다. 각각 '클로바'를 탑재한 웨이브, '카카오 I'를 넣은 카카오미니를 통해 인공지능 스피커 경쟁에 나선 가운데 플랫폼 확장의 방식을 두고 이색적인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 웨이브. 출처=네이버

클로바 “스피커와 모든 플랫폼”
네이버의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는 지난 3월 MWC 2017 현장에서 처음 공개됐다. 음성인식 인공지능 엔진, 비주얼인식 인공지능 엔진, 대화형 엔진 등 다양한 기술들이 총 집결된 통합 인공지능 플랫폼이다. 기조연설에 나선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주식회사 대표는 “클로바는 인간의 오감에서 모티브를 땄다”면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이 될 것”이라는 자부심을 보였다.

클로바는 지난 5월 베타 테스트에 돌입했다. 네이버 I와 에어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클로바 경쟁력을 담금질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네이버는 딥러닝 학습 데이터를 설립했으며 세계적인 인공지능 연구소인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도 인수했다.

클로바에 퀄컴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제품군이 들어가기로 결정되는 등 글로벌 모바일 AP 강자인 퀄컴과 협력해 기초체력을 다지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스냅드래곤이 들어간 스마트기기에는 클로바가 지원되며, 이는 클로바 생태계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는 방침이다. 네이버는 클로바를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략에 퀄컴 SoC 제품군을 도입, 글로벌 IoT 시장의 판로를 열어가는 전략을 채택했다.

클로바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사 인공지능 스피커 웨이브는 물론 포털 콘텐츠 배치까지 관여하고 있다. 스코픽 기술이 들어간 스마트렌즈에도 클로바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CES 2018 혁신상을 받은 코드리스 블루투스 이어폰 ‘MARS(마스)’에도 클로바가 연동된다.

마스는 전화통화와 음악감상은 물론, 클로바 엔진을 활용한 인공지능 서비스 활용이 가능하며 이어폰 착용만으로 파파고 엔진 통한 10개 언어 동시 통역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내년 상반기 중 한국에 가장 우선 출시되며, 이후 파파고 지원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 위주로 판매 범위를 확장해 갈 계획이다.

외부로는 LG와 많은 협력에 나서고 있다. LG유플러스와 함께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아파트가 구현하는 스마트홈 협력에 나서는 게 대표이다. 앞으로 푸르지오 입주민들은 클로바를 중심으로 냉난방과 조명가스 제어, 무인택배, 에너지 사용량 확인, 주차관제 등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비롯해 에어컨, 로봇청소기, 공기청정기, 밥솥, 가습기 등 개별 구매하는 사물인터넷 가전은 물론 플러그, 멀티탭, 블라인드, 공기질센서 등 LG유플러스 홈IoT 서비스까지 음성명령만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또 LG유플러스가 조만간 출시할 인공지능 스피커에도 클로바가 탑재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LG전자의 스마트가전과도 힘을 모으고 있다. 클로바가 LG전자의 스마트 스피커 씽큐 허브에 탑재된다. 올해 초 인공지능 분야에서 두 회사의 협력 청사진이 발표된 후 처음 나온 성과다. 클로바에 연동된 가전제품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며 네이버 뮤직 접근도 가능하다. 네이버와 협력한 LG전자는 지금까지 인공지능 영역에서 오픈 플랫폼 전략을 구사해왔다.

LG전자와는 스마트 가전과 스마트홈의 시너지를 추구하는 방향으로도 움직이고 있다. LG전자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 신도시에 조성되는 주거형 생활숙박시설 인 ‘별내역 아이파크 스위트’ 1100실에 스마트가전과 스마트홈 솔루션을 공급한다고 발표하는 한편 씽큐 허브에 탑재된 클로바 인공지능 기술력을 중심에 뒀다.

클로바는 네이버의 서비스를 비롯해 오픈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LG와 주로 협력하고 있다. 재미있는 대목은 클로바의 행보다. 클로바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활동하면서 필요하다면 타사의 인공지능 스피커에 기꺼이 탑재되고 있다. 클로바의 속성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주로 협력하고 있는 LG전자가 오픈 생태계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클로바는 LG전자의 씽큐 허브, LG유플러스의 새로운 스마트 스피커에 연이어 탑재될 전망이다.

▲ LG전자 스마트홈. 출처=LG전자

가전에 집중하는 카카오 I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 경쟁력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 모든 사업은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온디맨드 방식에 집중되고 있으며 야심차게 가동하고 있는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김범수 의장이 직접 운영하는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은 장기적 인공지능 기술력을, 사내 인공지능 부서는 당장 활용될 수 있는 로드맵 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다소 학술적 의미의 연구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은 나오지만 카카오의 인공지능 기술력은 발군이라는 후문이다.

카카오 I가 지금까지 협력의 파트너로 삼은 곳 중 대표적인 곳은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다.

지난 9월 출시된 현대차의 제네시스 G70에 카카오 I가 탑재됐다. 운전자가 말한 목적지를 카카오 음성인식에 적용해 서버로 전송하면 정보가 카카오 지도 서버로 이동, 운전자 관심지점 정보를 차량에 부착한 내비게이션으로 보여주는 알고리즘 중심으로 가닥이 잡혔다. 8월 출범한 카카오 모빌리티와 더불어 카카오 인공지능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키워드다.

삼성전자와 협력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카카오와 삼성전자는 지난 9월14일 카카오I와 빅스비의 연동을 발표했다. 생각보다 살아나지 않는 빅스비의 구원투수로 카카오 I가 선택됐다. 카카오 임지훈 대표는 “삼성전자와의 협력은 카카오 서비스가 가진 경쟁력과 함께 카카오 I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카카오의 인공지능 기술은 카카오 서비스 안에 머물지 않고 수많은 파트너들을 통해 확장해 전 국민의 일상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12일에는 두 회사가 구체적인 업무협약도 맺었다. 스마트 가전 서비스가 핵심이다. 카카오톡 메시지나 카카오미니(카카오의 스마트 스피커)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생활 가전제품을 명령하고 제어할 수 있는 서비스다. 카카오의 다양한 생활 밀착형 서비스와 음성 엔진, 대화 엔진(챗봇) 기술을 삼성전자 가전제품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 모든 가전제품에 빅스비를 탑재할 계획이다. 당연히 카카오 I도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카카오미니 체험관. 출처=카카오

음원, 스피커, 그 다음은?

네이버의 클로바는 포털 생태계는 물론 스피커, 나아가 타사 스피커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카카오의 카카오 I는 타사 스피커에 탑재되지 않지만 가전 생태계와 같은 플랫폼 지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듯, 다른 두 인공지능의 행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네이버가 강력한 포털 경쟁력을 바탕으로 클로바를 일종의 운영체제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지점이 중요하다. 카카오는 기본적으로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으로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전 생태계와 같은 유기적인 플랫폼 활용도가 높다는 평가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두 회사의 방식이 완벽하게 겹쳐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두 회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각 회사가 가지는 정체성에 따라 인공지능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파트너로 삼은 전자회사의 속성도 관전 포인트다. 네이버와 손잡은 LG전자는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역량을 강화하며 철저하게 오픈 생태계를 지향한다. 아마존, 구글과 같은 글로벌 ICT 기업과 협력해 초연결 생태계를 완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자체 가전 생태계를 중심에 두고 타이젠과 빅스비 등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내적 플랫폼 지향이 강하다. '네이버=LG, 카카오=삼성'의 궁합이 맞는 이유다.

현재 인공지능은 음성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스마트 스피커를 그릇으로 삼는 트렌드가 대세다. 여기에서 네이버와 카카오는 클로바와 카카오 I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를 출시해 음원 스트리밍 생태계도 확장시키는 한편, 궁극적으로 스마트홈 전반을 노리고 있다. 여기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다른 방식'은 네이버와 카카오의 미래 인공지능 행보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로 여기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