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그남자 - 그 남자가 사랑하는 모든 것. 슈피겐 레가토 아크 R72E 편

#아재감 30대 중반, 스스로 아재감(感)을 느끼는 나이다. 그 남잔 잔뜩 주눅들어 지낸다. 뭐만 하면 주변에서 아재라고 놀려대니까. 평소에 위트 있다고 자부하는 그 남자. 이젠 농담하기가 무섭다. 아재 개그 그만 두라는 소릴 듣기 딱이니.

뭘 사려 할 때도 아재감이 몰려온다. 자기 취향을 믿지 못한다. '역시 아재겠지.' 참을 수 없는 아재감을 '아재파탈'로 승화하는 인간들도 있더라. 그 남잔 거기까지 진화 못한 우울한 아재다. 누가 그를 위로해주나.

▲ 사진=노연주 기자

#취향과_트렌드_사이 번들 이어폰이 고장 났다. 하는 수 없이 새 이어폰을 사야 하는 신세다.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물건을 찾기 시작한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어~~찌~~~~합~~~니까~~~" 영락없는 아재다. 현실을 부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그 남잔 검색어에 넥밴드 이어폰을 치고야 말았다. 순간 아차 싶다는 표정이 지어 보인다. 일각에선 넥밴드 이어폰을 아재의 상징, 그들만의 토템으로 취급하지 않는가.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넥밴드가 어때서.‘

에어팟 같은 완전 무선 이어폰을 찾아본다. 문제는 가격이다. 막귀가 이런 비싼 이어폰 써도 되나. 그 남잔 갈등한다. 이런 물건을 사용하면 트렌디한 오빠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모양이다. 취향과 트렌드 사이에서 방황한다.

'차라리 인기 많은 거 아무거나 살까?' 이런 생각으로 베스트셀러를 훑어본다. 그때 눈에 들어온 제품이 하나 있었으니. 폰케이스로 유명한 슈피겐 제품이다. 그 남잔 슈피겐이 아재스러운 브랜드라 생각했는데 화면 안에 보이는 모습은 아재보단 오빠였다. '그래, 이거야!' 그 남잔 그날 슈피겐 '넥밴드' 이어폰을 질렀다.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남다른_넥밴드_이어폰 레가토 아크 R72E란 물건이다. 질러 놓고는 확신이 없었다. '역시 아재일까.' 물건을 받고 실물을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며 잘빠진 몸체가 투박한 넥밴드 이어폰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이어폰 줄이 축 처진 귀걸이마냥 달랑달랑 춤을 추는 스타일이 아니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는 그 남자. 평소엔 이어버드가 넥밴드에 달라붙어 있다. 음악을 들을 땐 잡아당기면 된다. 다시 끝까지 잡아당기면 줄자처럼 넥밴드 안으로 줄이 빨려들어간다.

무게도 36g이라 가볍다. 그 남잔 혼잣말을 한다. "목디스크 걸릴 일은 없겠군." 갑자기 본인의 유머 감각에 감탄해 웃는다. 역시 아재. 사운드도 마음에 든다 하더라. 중저음이 강한 편이지만 대체로 부드러운 느낌이라 귀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나.

통화 품질에도 합격점을 줬다. 배터리도 부족하지 않다. 2시간 충전으로 최대 10시간 연속 재생·통화가 가능한 스펙이니. 대기시간은 600시간에 달한다. 가격은 8만원대. 그 남잔 이렇게 표현하더라. '믿을 수 없는 가성비'라고.

▲ 사진=노연주 기자

#숨길_수_없어요 아직 확신이 없긴 하다. 한동안은 밖에 차고 다니지 못했다. 왠지 뒤에서 '저 사람 아재인가봐'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으니. 하루는 자신을 믿기로 했다. 가족 행사에 레가토 아크와 동행하는 결단을 내린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 그 남잔 괜히 심장이 쫄깃해진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과 인사할 때마다 과하게 의식한다. 목에 뭘 걸고 있든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내심 서운하기도. '나 신상 이어폰 쓰는 남자라고요!‘

대학교 다니는 어린 사촌 여동생이 다가온다. "그거 뭐야? 이어폰 예쁘다." 잘못 들었나? 현실임을 깨닫고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젊은 애들한테도 먹히는구나.'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거? 레가토 아크 R72E. 넥밴드형 블루투스 이어폰이지. 14mm 다이나믹 드라이버를 탑재해 손실 적은 오리지널 원음을 들을 수 있어. 빔포밍 기술이 들어간 듀얼 MEMS 마이크 덕분에 또렷하게 통화할 수 있고. 어때, 좋지?“

사촌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아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