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크루즈가 주연한 2002년 개봉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초반부에는 수사 당국이 범죄가 발생하기 전 현장을 급습, 예비 범죄자를 체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형사법이 말하는 ‘무죄 추정의 법칙’과 같은 법 제도적 고려를 제처놓고 기술주의 관점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현재 기술로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말하는 세상은 얼마나 구현됐을까?

하나의 패턴이 전체의 모양을 닮아가며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을 반복하는 것을 프랙탈(fractal)이라고 부른다. 최초 컴퓨터 그래픽 이론에서 출발했으나 부분과 전체의 총합을 유기적 관점으로 설명한다는 이유로 이제는 자연과학에서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 프랙탈 구조. 출초=픽사베이

일부분으로 전체를 유추하거나 전체에서 일부분을 분석할 수 있는 프랙탈의 존재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빅데이터 확보와 활용에도 큰 의미가 있다. 빅데이터의 비정량 데이터를 의미있는 가용 데이터로 수렴하려면 패턴을 파악해 기저에 흐르고 있는 ‘특이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터의 홍수에서 프랙탈 방식으로 특이점을 찾아내는 기술은 범죄‘예방’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경찰청은 70년간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범죄 패턴을 분석, 이를 바탕으로 수사하는 '클루(CLUE·Crime Layout Understanding Ending)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이다. 서울대학교 통계연구소와 빅데이터 개발 전문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이르면 2019년부터 시범운용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범죄인들이 작성한 조서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분석해 인공지능을 활용, 현재의 범죄 사건과 연동하는 것이 핵심이다. 범죄 발생 시간대와 장소, 피의자와 피해자의 특성 등을 의미있는 데이터로 정제한 후 현재의 공공데이터와 범죄학 이론을 적용해 빠르게 수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개인정보를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범죄에 대응하기는 어렵고, 경찰의 내부망인 '킥스'를 통해서만 운용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는 것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대목은 개인정보를 확보하지 않는 애플의 인공지능 방법론과 유사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특정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대략적인 실마리를 찾는 조력자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미국 뉴욕경찰이 도입한 콤프스탯은 대표적인 범죄예방 시스템이다. 과거의 범죄를 참고해 현재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IBM의 빅데이터 플랫폼 ‘i2 캅링크’ 역시 범죄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장소를 지목, 범죄예방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샷포스터’라는 프로그램은 건물 지붕에 센서를 장치해 총 소리가 난 지점을 경찰에 알리는 한편 시간과 장소를 데이터로 저장해 총기사고 예방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용의자의 구금 여부를 판단하는 하트(heart)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중국은 2015년부터 인공위성 GPS와 CCTV를 동원해 범죄자를 감시하는 텐망(하늘을 덮는 그물) 시스템을 구축했다.

▲ (자료사진) 천망에 활용되는 2000만대에 달하는 중국 CCTV. 출처=픽사베이

중국 상하이 자오퉁대학 후샤오린과 장시 연구원은 지난해 범죄자의 얼굴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머신러닝과 알고리즘을 조합, 소위 '범죄형 얼굴'을 식별하는 솔루션을 공개하기도 했다. 인공신경망이 89.5%의 정확도로 범죄자 얼굴을 가려냈다는 후문이다.

범죄예방에 활용되는 IT 기술들은 대부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혹은 GPS와 같은 위치기반 데이터를 사용하는 사례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서 데이터의 오염과 획일화된 패턴에 따른 ‘고정관념’은 넘어야 할 산으로 평가된다.

마이닝소프트웨어연구소의 강범식 연구원은 “모 데이터가 오염되면 과정과 결과 모두 논리적으로 성립되기 어려워진다”면서  “범죄예방을 위해 데이터를 활용하는 한편 인공지능의 판단력을 빌리는 것은 기술의 발전 측면에서 고무적이지만, 자칫 흑백논리로만 범죄예방에 나설 경우 치명적인 인권유린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생활 침해와 관련된 이슈도 있다. 경찰청의 클루는 이 문제를 최대한 피해갔으나 중국의 텐망과 같은 시스템은 심각한 사생활 침해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강 연구원은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범죄예방을 이유로 정보 비대칭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각 사회에 맡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빅데이터와 소위 프랙탈 이론은 범죄예방은 물론, 범죄사고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이 분야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드론이 범죄자를 추적하고 로봇이 제압하는 시대가 오려면 기술의 발전은 물론, 사회제도적 합의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전쟁터에서 부쩍 드론의 정찰, 정밀타격 이야기가 많아지고 군용로봇의 출현이 이어지는 등 무인 전투시대가 태동하고 있기 때문에 범죄현장에서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드론과 같은 로봇의 활약이 나타날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에 무게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