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속칭  '김영란법' 개정안이 11일 국민권익위원회 회의에 재상정됐다.

정부는 10월 말부터 김영란 법 개정을 예고하고 지난달 말까지 국민보고대회를 마칠 계획이었다.  지난달 27일 국민권익위 일부 위원들의 반대로 개정안 상정은 표류했다. 

농축산업계는 “위축된 농축산물 소비 활성화를 위해서 꼭 김영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잇다.  반면 전문가들은 “김영란 법이 개정돼야만 농업계가 살 수 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국민권익위, 11일 김영란법 개정안 상정

국민권익위는 11일 전체 위원회의를 소집하고 ‘부정청탁과 금품 등 수수 방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다시 표결했다. 주된 골자는 3만원ㆍ5만원ㆍ10만원 한도인 식사ㆍ선물ㆍ경조사비 한도를 3만원ㆍ5만원ㆍ5만원 체계로 개편하는 것이다. 농축산물은 선물 한도를 10만원으로 올리는 예외를 두기로 했다.   농업계가 지난해부터 개정을 요구해 온 사항이다.

지난 달 27일 열린 권익위 전체회의에서 김영란법 개정안은 찬성 6명ㆍ반대 5명ㆍ기권 1명으로 부결됐다.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권익위 입장을 존중한다”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월부터 “내년 설 전까지 김영란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말해왔기에 “정부 곤란해졌다”는 게 중평이었다. 지난달 29일로 예정된 김영란법 개정안 국민보고대회도 재상정 시점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선물 한도 상향 여부가 논의되는 것 자체가 몹시 불쾌하다”면서 “원천적으로 이해관계자들끼리는 식사, 선물, 경조사비 모두 금지하겠다는 것인데 논점이 비용 한도로 흐른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권익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는 개정안이 처리될 것 같다”고 한다. 정치권과 농축산업계의 입김이 거세고, 총리 차원에서 개정안 의결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수축산업계 전문가들은 반반

농수축산업계 관계자들은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고 있다. 선물 비중이 높은 청과ㆍ한우ㆍ인삼의 경우에는 김영란법 개정안을 반기지만 유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외로 반대 여론이 나오고 있다. 과거 농가 소득 문제를 집중 다룬 퇴직 관료도 “김영란법 개정은 농축산업계가 불명예를 떠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우협회 황엽 전무는 “김영란 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당장 위축된 한우 소비가 되살아나지는 않는다”면서 “전체적인 시장 분위기가 위축돼 있기 때문에 긍정 여론 환기용으로는 좋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우협회는 8일 성명서를 통해 “국내산 농축산물을 아예 김영란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선물 한도를 10만원으로만 조정하면 수입산 축산물도 규제 완화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게 골자였다.  한우협회 측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설 추석 등 명절선물 제외’법안과 ‘농수축산물 구매 예외’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주장했다.

수산물 유통 전문가인 김양환 얌테이블 이사는 반대의 의견을 내놨다. 김 이사는 “농수축산물 시장 위축은 단순히 김영란 법 때문이 아니라 저성장과 경기 둔화가 근본 원인”이라면서 “선물 한도를 10만원 대로 높이더라도 근본적인 소비자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이사는 “수산물의 경우 선물용 상품이 조기ㆍ굴비 등 어종이 매우 한정적”이라고 지적했다.

▲ 최양부 전 대통령비서실 농림해양수석은 이코노믹리뷰  인터뷰에서 "농수축산업계가 살기 위해 김영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촬영=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농가 소득 때문에 김영란법 개정 해야 한다”는 주장 적절한가

국내에서 농가 소득 정책을 제일 먼저 입안한 최양부 전 대통령비서실 농림해양수석은 “농민들의 팍팍한 삶을 개선하기 위해 김영란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 뒤가 안 맞는다”고 주장했다. 최 전 수석은 “침체된 농축산물 경기는 단순히 규제 때문이 아니라 불황기에 접어들어 구매자들이 가격에 극도로 예민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한우ㆍ한돈의 경우 소매단계 유통비가 전체 가격의 40%를 넘는다. 최종소비자가격에서 중도매인들이 떼어가는 수수료 비중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최 전 수석은 “김영란 법으로 농축산물 소비를 활성화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유통업자들 배를 불릴 수도 있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농축산업계가 반부패법인 김영란법의 의미를 퇴색해가면서까지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다.

최 전 수석은 “모든 반부패 규정은 한번 시도하면 더 이상 뒤로 돌릴 수 없는 ‘역진불가능성’이 있다”면서  “국민의 합의를 얻어 만들어낸 김영란법을 애써 무력화시키는 모양새가 좋지는 않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