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지주 출범식에서 기념사를 전하는 롯데 신동빈 회장(사진 왼쪽)과 스타필드 하남 오픈식에서 기념사를 전하는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사진 오른쪽). 출처= 롯데/신세계

국내 유통업계에는 ‘숙명의 라이벌’이 있다. 롯데와 신세계.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이다. 그래서 두 리더의 모든 결정은 다분히 상대를 의식한 것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글로벌 유통업계에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요즘, 롯데와 신세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이러한 가운데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의 경영 일선에서 모든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다양한 실험에 앞장서고 있다. 반면, 롯데는 신동빈 회장 중심 경영 체계를 완성시키려는 이 중요한 순간 경영진 비리 문제에 휘말려 최악의 경우 신 회장이 감옥에 수감되면서 지난 몇 년간 준비해온 신사업들이 중단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두 업체의 경쟁 구도는 사실 어느 한 쪽이 앞섰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이었다. 

신세계가 정용진 부회장의 전폭 지원으로 만든 이마트의 자체브랜드(PB) 가정간편식 피코크와 가성비(가격 대비 효능)를 앞세운 생활용품 PB ‘노브랜드’로 소비 트렌드에 파란을 일으키면 롯데는 롯데마트 PB 생활용품 브랜드 ‘온리 프라이스’, PB 가정간편식 브랜드 ‘요리하다’, ‘초이스엘’ 등 신세계에 뒤처지지 않는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가진 제품들로 대응했다.  

신세계가 자사 종합 온라인 몰의 통합 간편 결제시스템 SSG(쓱)을 선보이면 롯데는 간편 결제 시스템 엘 페이(L.Pay)로 응수했다.  

오프라인 유통 부문에서 두 리더의 운영 방향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경쟁을 이어간다. 

정용진 부회장은 기존의 편의점 브랜드 ‘이마트 위드미’의 브랜드 이름을 ‘이마트24’로 변경하고 3년간 3000억원 투자를 결정하는 등 과감한 승부수를 띄운다. 이마트 24는 기존 편의점 점주들의 불만사항을 반영한 영업시간 자율 선택, 고정 월회비, 영업 위약금 0원 등 이른바 3무(無)정책을 표방하며 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제안했다.

▲ 스타필드 고양. 출처= 신세계그룹

그런가하면 정 부회장은 쇼핑몰과 테마파크의 조합이라는 콘셉트로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쇼핑 경험을 선사하는 복합쇼핑몰 ‘스타필드’로 오프라인 유통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한다. 2016년 문을 연 스타필드 하남, 2017년 문을 연 스타필드 고양은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로 각각 약 1조원 이상이 투입됐다.

반면 신동빈 회장이 주도하는 롯데 오프라인 유통 운영을 정리하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옴니채널(Omni-Channel)이다. 이는 모바일-IT기술 활용으로 온-오프라인 유통을 일원화해 시간과 공간 조건을 뛰어넘는 쇼핑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신 회장의 ‘큰 그림’이다. 신동빈 회장은 2014년부터 공개 석상에서 유통의 옴니채널화를 줄곧 강조해왔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롯데는 다양한 첨단 기술을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도입한다. 아마존의 무인 식료품점 아마존 고(GO)를 연상하게 하는 롯데백화점의 무인 쇼핑 시스템 ‘스마트 쇼퍼’, TV 홈쇼핑 상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온라인과 모바일로 같은 상품을 주문할 수 있는 롯데홈쇼핑 ‘스튜디오샵’ 등은 롯데가 추구하는 옴니채널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례다.

▲ 롯데홈쇼핑 옴니채널 샵 '스튜디오 샵'. 출처= 롯데홈쇼핑

직원 복지도 마찬가지다. 롯데는 2016년부터 남성 임직원들의 육아휴직을 의무화 했다. 지난달 롯데는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직원이 1000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에 질세라 신세계는 지난 8일 국내 대기업 최초로 내년 1월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마치 냉전 시대 ‘핑퐁 외교’를 연상시키던 롯데와 신세계의 경쟁 구도가 최근 점점 신세계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검찰은 신 회장에게 경영 비리, 자금 횡령 등 여러 가지 혐의로 징역 10년, 벌금 1000억원의 중형을 구형했다. 물론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 비리를 근절하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의 취지와 검찰의 확고한 의지가 오는 22일 판결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 롯데에게는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의 의사 결정권이 총수에게 집중돼있는 롯데의 특성을 감안하면 신동빈 회장의 부재는 곧 롯데가 지난 5년 동안 추진해 온 다양한 변화와 시도들이 ‘올 스탑(ALL-STOP)’ 될 수도 있다”면서 “만약 신동빈 회장의 부재가 확정되면 이로 인해 롯데가 입을 손해는 최소 10조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22일 열릴 대법원 1심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8월 스타필드 고양 오픈 기념식에서 “연내에 모두를 깜작 놀라게 할 소식을 전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커머스 경쟁력 강화를 시사한 것은 두 업체의 팽팽했던 경쟁 구도를 더욱 신세계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 스타필드 고양 오픈식에 참석한 정용진 부회장. 출처= 신세계그룹

케이프 투자증권 김태현 연구원은 “정용진 부회장의 ‘고양 발언’이 실제로 국내 유통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시도인지는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신세계가 롯데와의 경쟁에서 완전 우위를 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그러나 롯데는 신 회장을 중심으로 더 많은 변화들을 계획하고 이를 실현시켜야 할 중요한 시점에 총수의 부재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과연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의 말대로 유통업계를 깜짝 놀라게 할 시도로 롯데와의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까. 롯데는 신동빈 회장을 지켜내 지난 수년을 지속해 온 변화들을 혁신으로 완성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