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야의 영업 현장은 전쟁터다. 그만큼 치열하다. 특히 소비재의 판매 영업에서 가장 민감한 요소는 ‘납품 가격’이다. 개별 제품의 가격차는 단 1원이라 할지라도 거래 규모가 커지면 1원이 저렴한 제품도 무시할 수 없는 시장 경쟁력이 생긴다. 

그런데 최근 주류 영업 시장에서 대기업들이 자본력을 활용해 단가를 ‘후려치는(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는)’ 사례들이 발생하면서 상대적으로 영세한 지역 주류업체들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둔 소주업체 무학의 영업사원 A씨(36)는 최근 지난 몇 년 동안 제품을 납품 해 온 음식점과의 거래가 끊어졌다. 그 음식점의 주류 냉장고에는 대기업 브랜드 소주와 맥주 제품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A씨가 갑자기 점주에게 이유를 물으니 “이거 들여놓으면 한 박스당 단가 1만원을 빼 준다고 하잖아. 그것도 소주, 맥주 합쳐서.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1원이라도 싼 걸 쓸 수밖에 없지”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A씨는 동료 영업사원들을 통해 대체 대기업 제품이 어떤 방법으로 납품됐는지 알아봤다. 대기업 주류업체 영업사원들은 한 박스 당 출고가 약 4만원으로 계산되는 소주나 맥주를 를 납품하면서 일정 수량 이상 납품받는 점주들에게는 박스에 약 1만원을 ‘빼 주는’ 방법을 썼다. 가격을 빼 주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은 셈(실제로는 먹지 않고) 치고 카드 결제를 하거나, 가격을 뺀 만큼 현금이나 상품권을 점주들에게 건네주는 등 대기업 자본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방법들을 썼다.

사정은 수도권 외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전라남도에서는 지역 프랜차이즈 제품으로 점유율 80~90%를 차지하며 ‘잘 나가던’ 한 주류 브랜드는 대기업 제품들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점유율이 단 몇 년 만에 50% 이하로 뚝 떨어졌다.  

A씨는 “치열하게 영업을 해서 납품 판로를 만들고 지역 점유율을 높여 놓으면 대기업들에게는 ‘미개척’ 시장으로 타깃이 된다"면서 "대기업은 자본을 활용한 가격으로 밀어붙여 제품을 대량으로 밀어 넣는다. 이렇게 한 번 역전된 점유율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다른 지역 주류 브랜드 B사의 관계자는 “경쟁 제품보다 많이 팔기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업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지만 대기업들이 가격으로 ‘후려치면’ 지역 브랜드들은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탄식했다. 

대기업들은 영업에서 정해진 출고 가격 이하로는 납품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외 지역 영업에서는 지역의 대표 제품들을 제압하는 게 최우선 목표여서 암암리에 혹은 지역 영업 본부의 묵인 하에 ‘가격 후려치기’ 납품이 이뤄지고 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수도권 본사에서 지역 영업본부들의 이러한 ‘후려치기’를 모를 리 없지만 당장의 영업 실적이 개선되기 때문에 알면서도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기업 주류업체 관계자는 "본사에서 각지 도매 매장까지 납품되는 주류 가격은 전국 어디나 같다. 각 지역 영업사원들이 자기들의 중간 마진을 줄여서 영업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그들에게 제재를 가할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 마진 감소를 감당하는 것도 대기업이니까 가능한 것 아니겠냐는 게 지역 주류 업체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은 대기업 주류업체들의 자본력을 앞세운 영업에 지역 주류업체들이 수 년간 지역에서 쌓아 온 많은 것들이 삽시간에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