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에는 금융소비자, 금융당국, 금융기관 등 많은 주체가 있다. 금융회사라고 부르기도 하는 금융 기관은 신용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이다. 일반 기업보다 더 큰 공공성과 책임성이 필요한 이유다.

금융기관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사외이사 제도를 두고 대주주와 기업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방지하도록 하고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던져진다.

이는 금융권에서 그동안 낙하산 인사와 관치금융 등 금융지주회사체계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지주회사 지배 체제 아래서 금융산업의 공공재적 역할 수행이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면서 “금융산업은 자타공인 낙하산 인사의 천국이다. 그로 인한 폐단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뿌리가 깊고 넓다”고 지적했다.

평생 연임 가능한 금융지주회사법

우리나라는 금융지주 대표이사 연임에 제한이 없다. 금융지주사마다 내부규정을 두고 연령제한을 두고 있긴 하지만 법적으로 3연임은 물론 4연임, 5연임도 가능하다.

국내 한 금융지주의 경우 ‘지배구조 및 회장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후보들의 경력과 재임 중 성과 등을 살핀 후 회장 후보자를 추천한다. 이사회 결의로 이사 중 대표이사 회장 1인을 선임하는 체제다. 위원회 구성은 이사회 결의로 결정하고 실제 대표이사는 이사회에서 후보를 확정한 뒤 주주총회에서 후보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모든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사의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로 주주총회에서 결정하며, 연임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다. 임기의 제한은 있지만, 연임의 제한은 없다. 

이러다 보니 이사들이 계속해서 연임하는 일이 생겼고, 회장을 추천하는 위원회 구성원은 매번 비슷한 이사진들이 포진하게 됐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 대표는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안에서 대표이사 후보 추천을 이사회에 모두 위임하는 것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얻기 어렵다”면서 “결과적으로 대표이사의 장기 연임을 가능케 하는 큰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지주회사 대표이사의 권한은 연임을 거듭할수록 더욱 강화된다. 신한 사태에서 라응찬 회장은 차기 신한금융지주회장으로 거론되던 신상훈 금융지주회사 사장에 대한 고발을 이백순 신한은행장과 공모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최순실의 자금유출을 도운 하나은행의 이상화 독일법인장을 글로벌2본부장으로 승진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사 특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신한사태와 하나은행 인사·경영 개입 사태는 모두 대표이사 장기집권 체제하에서 문제가 불거졌다”면서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대표이사 연임 제한이 없는 것은 연임을 위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 일갈했다.

제도적 보완… 왜 안 하나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먼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금융사 지배구조법에 따르면 이사회 내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으나, 이사회가 견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현행 체제하에서 대표이사 권한을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현행 이사회 내 후보추천위원회 체제를 유지할 경우 우리사주조합이나 노동이사제도를 법으로 명문화해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의 의사 결정에 참여해 기업과 대주주를 견제하는 시스템이다. 노동환경 후보추천위원회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제한할 경우, 이사회 구성원에 우리사주조합이나 노동조합 추천 이사를 포함해 구성원을 다양화하거나,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원을 이사회에 한정하지 않는 방법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인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동이사제’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노동이사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국정과제에도 담겨 있다”면서 “공공기관부터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계획이지만 금융기관의 공공성과 책임성 제고를 위해 노동이사제 도입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사 연임 제한 규정도 신설하자는 의견도 있다. 국내 금융지주 역대 회장 재임 기간을 살펴보면 농협금융지주와 초기 KB금융지주 대표이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지주회사 대표이사들은 연임을 통해 장기집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