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월트 디즈니가 미디어 공룡인 21세기 폭스의 스튜디오와 TV 프로덕션 사업 부문을 600억달러에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 동안 두 회사의 빅딜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번번히 무위로 그친 가운데, ‘이번에는 정말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르면 다음주 정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빅딜은 엄밀히 말해 21세기 폭스 ‘일부’만 디즈니가 인수하는 것이다. 21세기 폭스가 가지고 있는 영화 스튜디오, TV 프로덕션 사업부, TV 콘텐츠, 일부 케이블 채널과 네트워크 스카이, 온라인 스트리밍 훌루의 지분 일부와 폭스 지분 일부가 대상이다. 디즈니는 21세기 폭스의 뉴스 채널과 스포츠 사업부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가 21세기 폭스 사업부 일부를 품는다는 전제로, 중요한 관전 포인트 두 가지를 살펴보자.

▲ 출처=픽사베이

훌루 지분 30% 인수..넷플릭스 `대항마` 부상

대다수의 언론은 디즈니와 21세기 폭스의 빅딜을 두고 ‘디즈니가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IT매체 와이즈믹은 6일(현지시간) “디즈니가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되려고 21세기 폭스의 콘텐츠를 확보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중간 단계가 크게 생략된 피상적 분석이다. 디즈니가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되려는 것은 맞지만, 이번 빅딜은 중간포석의 성격이 강하다.

디즈니는 지난 8월8일(현지시간) 넷플릭스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은 공교롭게도 넷플릭스가 만화사인 밀라월드를 인수한다는 것을 발표하는 시기와 겹쳐 업계에 묘한 여운을 남겼다.

디즈니가 넷플릭스와 콘텐츠 수급 계약을 중단하는 이유는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자연스럽게 소멸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디즈니가 내년 초부터 ESPN의 스포츠 전용 온라인 라이브 TV를 출시한다는 소식이 중요하다. 디즈니는 ESPN 브랜드의 온라인 라이브 TV 출시를 위해 스포츠 콘텐츠 방송 솔루션 업체인 BAM테크(BAMTech)에 15억 8000만달러를 투자, 지분 42%를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해 8월 BAM테크에 10억달러를 투자해 지분 33%를 확보한 후 추가 자금을 투입해 플랫폼 기업으로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디즈니는 자체 OTT 플랫폼 구축도 발표한 상태다.

또 주목해야할 대목은 디즈니의 방식이다. 넷플릭스와 결별하고 콘텐츠 공급자에서 플랫폼까지 확보, 단독 OTT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이를 위한 구체적 계획도 모두 나왔다. 여기에 현실적인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바로 매출이다.

올해 3분기 디즈니 미디어 네트워크 사업부문의 매출은 58억6600만달러로 지난해 동기 59억600만달러 대비 1%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18억4200만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23억7200만달러와 비교하면 22% 떨어졌다. 미디어 네트워크 사업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디즈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에서 41.1%와 45.9%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다. 킬러 콘텐츠인 ESPN의 영향력이 줄어들며 유료방송 코드컷팅(OTT 등을 시청하기 위해 유료방송을 중단하는 현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핵심 주력 사업부문이 흔들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OTT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 미국 유료방송 시장 증감율. 출처=디지에코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으나 디즈니 특유의 ‘히어로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디즈니와 콘텐츠 수급 계약을 맺고 계속 거액을 지불하는 것도 어렵다는 내부판단이 섰고, 비슷한 히어로 콘텐츠를 가진 밀라월드 등을 품어내며 디즈니와 결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디즈니는 어떤 전략을 취할까? 이번 빅딜이 중간포석의 정석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디즈니는 21세기 폭스 사업 일부 인수를 통해 훌루 지분 30%와 막강한 콘텐츠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후자인 막강한 콘텐츠 인프라에 집중하고 있으나 사실 훌루 지분 30%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훌루는 현재 OTT 시장에서 아마존 비디오, 넷플릭스와 직접 경쟁하고 있는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에 도전하기 위해 넷플릭스의 도전자인 훌루, 아마존 비디오와 먼저 경쟁을 벌여야 하고 이번 빅딜을 통해 훌루의 지분 30%를 가져갈 수 있다. 내년 초 ESPN 앱을 라이브TV로 리뉴얼하며 자체 경쟁력을 키우고, 그와 별도로 OTT 시장에서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21세기 폭스의 방대한 콘텐츠와 훌루 지분 30%를 확보하게 된 셈이다. 훌루는 지난 2007년 디즈니와 21세기 폭스가 지분 30%를, 컴캐스트가 30%를, 타임워너가 10%의 지분을 투자해 만든 OTT 합작회사다.

이번 빅딜로 디즈니는 단순계산해도 넷플릭스의 현재 경쟁자인 훌루의 지분 60%를 확보하게 된다. 앞으로 OTT 시장에서 디즈니는 자체 OTT 플랫폼과 훌루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다. 디즈니의 콘텐츠 확보만큼 훌루 지분 인수가 중요한 이유다.

▲ 로버트 아이거 CEO. 출처=위키디피아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만 연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도 이변이 없다면 연임을 꿈꾸고 있으며, 특히 빅딜이 걸린 ‘큰 판’에는 복잡다변한 사람의 문제가 배경에 깔리기 마련이다.

디즈니는 3선 연임에 성공한 로버트 아이거 CEO의 거취가 주목된다. 그의 임기가 마무리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빅딜이 성사된다면, 그는 무난히 4선 연임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회사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빅딜 도중 CEO를 교체하는 일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12년간 디즈니를 이끌었던 아이거 CEO가 2019년 7월까지만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아이거는 자신이 CEO에서 물러나도 여전히 디즈니를 도울 것이라는 의지를 밝히는 등 나름의 집착을 보여왔다.

이번 빅딜이 성사되면 최근 실적에 따른 사퇴압박을 받던 아이거 CEO가 후속조치를 이유로 자연스럽게 CEO 4선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1세기 폭스 사정도 심상치않다. 조직을 이끌고 있는 언론황제 루퍼트 머독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할리우드 산업보다 보도 기능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수 차례 밝혀왔다.

흥미로운 지점은 루퍼트 머독의 장남인 라클런 머독이 21세기 폭스 이사회를 맡고있는 가운데 차남이자 사장인 제임스 머독이 디즈니와의 빅딜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대목이다. 아버지와 형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그가 이번 빅딜을 통해 전통의 디즈니 CEO로 합류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보도가 미국 현지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물론 디즈니 CEO가 되려면 아이거 현 CEO를 넘어서야 한다. 빅딜 이후의 주도권 다툼도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