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인 ‘GMO(유전자변형식물) 완전 표시제’가 언제부터 실현될지 각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한국에 들어온 GMO 농산물은 961만t에 이른다. 그러나 현장 조사에서 유전자 변형 DNA나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으면 GMO 표시를 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GMO 농산물을 정확히 구분하기 힘든 실정이다. 소비자들이 모르고 먹는 GMO 농산물이 많다는 뜻이다. 친환경 농산물 업계와 전문가들이 “예외 없는 원료기준 GMO 표시가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GMO 완전표시제에 앞장서고 있는 친환경 협동조합 한살림(출처=한살림 홈페이지)

GMO만 원료 기준 표시 예외

정부는 올해 2월 GMO 표시제를 발표하고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에 들어간 원재료를 기준으로 GMO 함유 여부를 표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GMO 농산물이 많이 쓰이는 액상과당과 식용유는 여기서 제외됐다. 농업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가장 많이 GMO를 섭취하는 식품이 간장, 식용유 등인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특혜를 줬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 당시 ‘GMO 완전표시제’를 공약했다. 식약처 기준상 국내에서는 모든 식품이 원료를 기준으로 성분을 공개하게 돼 있다. 그러나 그동안 GMO는 최종 상품을 기준으로 해서 논란거리였다. 원료에 GMO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나중에 완제품 단계에서 성분이 검출되지 않으면 표기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 <GMO, OMG>를 제작한 제레미 세이퍼트(Jeremy Seifert) 감독은 지난 5월 방한해 “안전성 검토도 되지 않은 GMO 제품들이 손쉽게 시판 승인을 받는데, 소비자들은 임상실험을 당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GMO 표기가 명확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유전자 변형 비중이 높은 수입 농산물들을 모두 GMO 식품으로 오인할 것”이라면서 “식약처나 식품업계는 여러 차례 GMO 표시제 요구를 듣지 않고 도입을 미뤄 왔다”고 비판했다. 일단 GMO 농산물을 먹어도 안전상 문제가 없고, 이미 식품 당국이 안전성을 승인해줬는데 논란거리를 남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식품 소비자들에게는 원산지 정보가 더욱 중요해지는 만큼 GMO 표시도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적극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광남 경상남도 6차산업지원센터 전문위원은 “GMO 표시 활자 크기를 확대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의심이 사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식용유·간장·당류 등에 한해 표기를 면제하는 것은 오히려 해당 식품군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 국내 GMO 농산물 연간 수입량(출처=식품의약품안전처)

FTA 등도 매우 중요한 변수

현재 전 세계에서 GMO 농산물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2014년 기준으로 7310만ha에서 GMO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생물 조작에 대한 반감이 심해 좀처럼 유전자 변형 종자가 기를 펴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GMO가 거의 표준처럼 자리 잡혀 있다. 콩의 94%, 옥수수의 90%, 목화의 96%가 GMO 종자로 생산된다. 미국 다음으로 GMO 비중이 큰 나라는 브라질로 4220만ha에서 유전자 변형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인도와 캐나다에서도 바이러스 저항성이 강한 목화, 밀 종자들이 재배되고 있다.

김영삼 정부 당시 농림해양수석을 지낸 최양부 전 아르헨티나 주재 대사는 “미국에서는 농업을 식량 기지로 바라보는 효용 위주의 사고가 팽배해 있다”면서 “미국 시장은 농업의 기업화를 추진하면서 농업의 사회적 가치와 소농(小農) 보호와 같은 요소들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GMO 농산물도 농업의 진정성이나 철학적 가치보다는 경제성 위주로 판단하는 가치 체계 위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전 대사는 “농장을 공장과 똑같은 공간으로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관점과, 농장을 ‘교외’(郊外)라고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관점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면서 “GMO 완전 표시제를 통해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한국 농업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전 대사는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산 GMO 농산물이 들어오게 될 경우에는 ‘가성비 위주’ 구매를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소비 때문에 한국산 농산물이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면서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GMO 완전 표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GMO 완전 표시제가 도입될 경우 FTA 등 통상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연구 중”이라면서도 “미국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부터 GMO 완전 표시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특별히 ‘비관세 장벽’이라는 오해는 받지 않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식약체와 식품업계 의견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해관계 충돌 여부를 조심스럽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