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베트남에서 독특한 소재의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바로 <내가 니 할매다>라는 영화다. 70대 할머니가 젊고 예쁜 20대 아가씨로 다시 돌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다 그들과 떨어져 살아야 할 위기에 놓였지만 젊은이로 되돌아오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좌충우돌 스토리가 웃음과 감동을 준다. 이 영화는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의 <수상한 그녀>를 현지에서 리메이크한 영화였다. 현지에서는 보기 힘든 새로운 소재의 완성도 높은 영화에 베트남 관객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결국 베트남 역대 로컬영화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3년 국내 영화시장은 처음으로 2억명 관람객 시대를 열었다. 1998년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CGV강변11이 처음 문을 열 당시 연간 관람객 수는 5000만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멀티플렉스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국내 영화 관람객 수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억명을 넘어서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영화관과 스크린은 계속 늘어나는데 관객수는 정체되기 시작했다. 벌써 5년째 영화 관람객은 제자리걸음이다.

몇 년 동안의 정체를 거치는 동안 국내 영화 투자 제작사들은 자연스럽게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글로벌 배급망을 가진 할리우드 영화는 세계 어디에서도 문화적 장벽이 없다. 반면 한국 영화는 완성작 그대로 해외로 수출됐을 때 언어적,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 리메이크 판권이 실제로 제작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게 바로 ‘해외로컬영화 제작’이었다.

이 방식을 가장 선도적으로 헤쳐나간 회사는 CJ E&M이었다. 2007년 처음 한미 합작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제작했던 CJ E&M은 이후 10년 동안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세계 6개국에서 총 23편의 해외 로컬영화를 제작해 개봉했다. 흥행에서도 나름 의미 있는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한국에서 제작해 큰 반향을 일으킨 <수상한 그녀>를 여러 나라에서도 개봉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한중 합작영화 <20세여 다시 한 번>은 역대 한중 합작영화 가운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베트남에서도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내가 니 할메다>를 포함해 <마이가 결정할게 2>, <걸 프롬 예스터데이> 등 3개 작품이 베트남 역대 로컬영화 박스오피스 Top 10에 들었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CJ E&M은 더욱 공격적인 행보를 선언했다. 현재 연간 10편 이내에 지나지 않는 해외 로컬영화 편수를 2020년부터는 매년 20편까지 늘리겠다는 것이다. 특히 터키 공략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현지에 이미 법인을 설립한 상태에서 현지 로컬영화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미 터키판 <이별계약>이 개봉을 눈 앞에 두고 있고, 터키판 <스파이>, <수상한 그녀> 등의 작품을 준비 중이다.

이처럼 CJ E&M이 해외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고 배경에는 CJ CGV가 해외에 나가 기본적인 플랫폼을 구축해 놓은 것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CJ CGV는 터키 현지 1위 극장 체인을 운영 중이다. 지난 2016년 현지 극장 체인 Cinemaximum을 인수해 2017년 12월 현재 총 95개의 현지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CJ CGV의 현지 극장 체인은 CJ E&M의 영화사업을 펼치는 데는 천군만마(千軍萬馬)와도 같다. 무엇보다 영화를 만들면 이를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흥행 산업이라는 영화의 속성상 흥행이 되지 않는 영화에 대해 무한정 스크린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CJ E&M이 보다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은 될 수 있다. 이런 조건은 비단 CJ E&M에 한정되지 않는다. 국내 그 어떤 영화사라도 CJ CGV가 진출한 어떤 나라에서 영화 사업을 펼칠 경우 현지 영화관 플랫폼은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한국영화의 글로벌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연간 영화관을 찾는 관람객이 2억명 정도인 시장에서, 1인당 연간 관람 횟수는 4.2회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연간 개봉하는 영화 편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국내 영화의 제작 편수도 늘고 있지만 수입 영화의 증가세는 더 빠르다. 이 상태라면 개별 영화가 느끼는 경쟁 체감도는 이미 견디기 어려운 수준일 것이다. 이런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은 결국 글로벌화밖에 없다. 국내 영화 제작업계는 글로벌화에 성공한 한국 극장 플랫폼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해외 공략 방법론을 찾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