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정부는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이라는 보고서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위원회의 첫 단추를 꿴 셈이다. 지금까지는 GDP가 성장해도 국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미미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사람중심경제’로 전환해야 된다고 했다. 결국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서 제공하겠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동안 경제성장의 기둥역할을 해왔던 제조업이 저성장경제구조로 바뀌고 있고, 그동안 축적되어 왔던 사회문제점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서 첨단 지능기술을 폭넓게 활용해 보겠다는 밑그림이다. 정부는 지능화 혁신프로젝트들을 추진해 의료, 제조, 교통기관, 에너지, 금융·물류, 농수산업 등의 산업생산혁신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도시, 교통, 복지, 환경, 안전, 국방 등이 안고 있는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목표를 삼고 있다.

그런데 이 자료를 훑어보면 지능화 기술개발 프로젝트들을 촉진하겠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조금만 더 자세히 음미해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가의 경영전략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제조업 중심의 국가산업전략을 그대로 밀고 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화판 위에 물감 칠은 화려하지만 밑그림은 변하지 않고 똑같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추진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는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기술개발인력들이 일한 공간은 늘어날 것 같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 인력들은 어떻게 양성해야 하는가? 4차 산업혁명이 기술인력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가? 제조업에 지능기술을 접목하면 일자리가 늘어나는지 궁금하다. 이 자료가 국가의 비전인지 제조기업의 기술개발 전략인지도 헷갈리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정신 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의 붐을 일으킨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4차 산업혁명을 네 가지 혁명으로 설명했다. 속도(Speed)혁명, 융합·결합(Combined)혁명, 시스템(System)혁명, 그리고 정체성(Identity)혁명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체성이다. 국가나 조직이나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하는 이유다. 정신 줄을 어디에 연결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서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이젠 인당 GDP가 3만달러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4만달러, 5만달러대 국가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자원이 없는 나라가 GDP를 높이는 일은 쉽지 않다.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국가 중에 석유자원 없이 개인소득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국가는 독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국가들은 인구가 적거나 자원이 많은 경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물려받은 문화유산이 많은 나라라는 점에서 보면 천연자원이나 문화유산 없이 맨땅에서 선진국을 일으킨 건 독일과 일본뿐이다. 이들 국가들은 최고의 부가 가치 상품들을 생산해서 세계를 지배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문명을 지배해온 세상은 물질 상품이 세상을 바꾸던 3차 산업혁명기까지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에 초점을 맞추자

지금까지 산업이라면 자동차, 휴대폰, 가전제품, 식품 등 물질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으로 바뀐 21세기는 서비스 상품이 지배하는 사회다. 서비스 상품은 인간에게 삶의 질을 느끼게 해주는 상품이다. 물질 상품이 귀하던 시절엔 물건들을 돈 주고 샀지만 물질 상품이 풍부해진 21세기엔 서비스를 돈 주고 사서 즐기는 시대다. 앞으로는 물질 상품이 지배하는 세상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삶의 질은 더 이상 물질만으론 충족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앞으론 인간의 생명과 정신을 지원하는 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 간다고 본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은 물질생산 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서비스 산업이란 의료산업, 교육산업, 콘텐츠산업, 관광산업과 같은 무형의 산업들이다. 2016년도 국민총생산에서 광업을 포함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2%이다. 이에 반해 교육서비스업은 5%,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은 5%, 문화 및 기타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제조업 비중이 30% 정도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국민 소득은 1만달러 정도다. 국민 소득이 늘어날수록 제조업의 비중이 낮아져서 3만달러 이상이 되면 제조업 비중은 10~20%로 낮아진다. 선진국들의 제조업 비중이 낮아지는 이유는 개발도상국들과 제조업으론 경쟁하기엔 원가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진국가를 지향하는 국가 비전을 세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척도는 제조업 비중을 낮추고 서비스산업의 비중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국가는 앞으로 서비스산업 비중을 20% 이상 30%까지 높이겠다는 비전이 내세워야만 한다.

물론 좋은 시설에서 좋은 음식을 즐겨야 하므로 물질 상품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질 상품은 서비스 상품에 비해서 부가가치가 낮다. 즉, 물질 상품에 주력하다 보면 저개발 국가들과 경쟁해야만 한다. 물질 상품은 제조 원가를 따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로봇자동화로 인해 첨단제품을 생산해도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모든 기술개발은 고품질 서비스 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데 주력해야만 한다. 사람의 정신을 위로하는 서비스 상품은 원가를 따지지 않는다. 인재들의 창의력만 있다면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무한 성장이 가능한 영역이다. 따라서 첨단기술개발은 사람들의 오락과 건강생활을 얼마나 높여줄 수 있는가에 따라서 기술성을 평가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국가비전도 사람들이 편히 잘 쉬고, 잘 놀고, 오래 사는 세상으로 바꾸는 데에 목표를 둬야 한다.

정부는 우선 사람들이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 사람들이 첨단 기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국민재교육이 절실하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게 되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적은 경비로도 쉽게 국민 재교육 사업이 가능해진다. 누구나 원하면 지식에 대한 갈증을 쉽게 채울 수 있게 서비스를 만들어 줘야 한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재등록하지 않아도, 인공지능 교육시스템을 이용해 계층별로 손쉽게 새로운 문명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면 지식격차로 인한 세대 간 갈등도 줄어든다. 그래야 노인들도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아는 체 할 수 있게 된다. 알지 못해서 발생하는 계층 간 불협화음이 심각하다. 알지 못해서 겪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해줘야 한다.

 

미래도시에서 체험하는 미래 놀이문화

정부는 국민들이 오락과 여행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오락거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첨단기술을 활용하면 이제껏 상상할 수도 없었던 다양한 놀이산업을 가능해진다. 국인이 해외여행보다 국내 여행에서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면 된다. 지능기술을 동원해서 창의적인 놀이를 많이 만들어 내자. 예를 들면 첨단 미래도시를 조성해서 사람들이 첨단기술들을 미리 경험해 보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미래도시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에게 장기 분양을 해줘서 기업들이 새롭게 개발한 첨단장치나 기술들을 실제로 서비스해보는 실험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서비스 실험은 새로운 제품이나 상품에서 발생할 오류들을 색출해 내는 검증수단이 될 수 있다. 첨단 로봇들이 방문객들에게 서비스해주고 가정에서 미처 느껴보지 못하는 미래환경을 이들 미래도시에서 숙박하면서 즐길 수 있게 된다. 미래도시에는 해외에서도 맛볼 수 없는 차별화된 21세기 놀이문화가 싹틀 수 있도록 장마당을 펼쳐 준다. 이런 재미있는 오락거리들이 있다면 외국인 관광객들도 알아서 몰려들게 된다. 오락산업과 여행산업은 한 묶음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첨단기술들을 모두 이곳에 접목할 수 있다. 그리고 덧붙여서 휴식문화산업과 첨단 의료건강 산업도 결합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생활에 밀접하게 발달해 있다. 음성인식, 안면인식, 자연어 대화가 보편화되었다. 게다가 음성모방이나 표정모방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홀로그램 박스 내에 좋아하는 가수의 홀로그램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유명인의 음성과 표정 그리고 동작조차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이 홀로그램을 가상비서로 삼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홀로그램 인형이 자기의 개인비서가 되는 셈이다. 가수의 음성과 표정으로 일기예보도 알려주고 뉴스도 설명해주며 일정관리도 해준다. 홀로그램 가수는 말대답까지 해주므로 집 밖에 나와서도 집 안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문자로 소통할 수 있다. 조용한 저녁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가상비서가 불러주는 노래를 혼자 감상할 수도 있게 된다. 좋아하는 영화배우와 매일같이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홀로그램 가상비서는 사람의 마음속을 후벼 파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한류스타를 맞춤식으로 수출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모든 문화 콘텐츠는 막강한 미래 경쟁력이다.

이런 문화산업의 아이디어들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다. 인문학자들이 기획을 하고 기술자들이 첨단기술들을 동원해서 실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인문계 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업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술혁명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정신혁명이고 문화혁명이다. 초점을 잘못 맞추면 실패한다. 첨단 휴대폰이 속도가 빠르다고 좋은 게 아니다. 스마트폰이 스마트하게 자기의 생활을 윤택하게 서비스해줘야 한다. 스마트폰이 자기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자기를 감동시켜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정부의 자세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첨단기술들을 나열하지 말고 생활 속에서 삶이 풍요롭게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고 사는 게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하루하루 느끼게 만들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