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누구나 꿈이 있었다. 대통령, 과학자, 아이돌 가수.... 하지만 점점 철이 들면서 자신의 적성과 재능 그리고 현실적 선택의 기로에 놓이면서 무언가 또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것으로 변해간다. 여기서 무언가는 직장, 누군가는 그 직장에서 함께 하는 동료 선후배일 것이다. 모든 직장인들에게 좋은 직장을 갖는 것, 그것만큼 바라는 것이 있을까.

모두가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이 꿈이 되는 세상이다. 내 자리가 보존되었으면 또는 우리 조직이 망하지 않았으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연차가 쌓일수록 포기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포기가 되질 않는다.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안정의 욕구들을 채우려는 것 같다. 직급과 직책, 그에 어울리는 연봉, 복리후생, 심지어 함께 일하게 될 동료들까지 아주 구체적인 조건들로 채우려고 했다. 그게 모두가 꿈꾸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라고 말이다.

물론 직장을 고를 때, 위 조건들은 매우 중요하다. 스스로 내 몸값을 떨어뜨릴 바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조건들이 직장생활을 지속하거나 일하는 행복을 만들어가는데 필요 충분 조건일까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 또는 직장에서 얻게 되는 행복이 단순히 몇 가지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 가치를 나누게 될 고객은 과연 겉치레만 채워진 진정성이 결여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얼마나 공감해줄까.

오히려 일하는 행복은 단순 보상에 있지 않다. 글로벌 기업들이 성과 측정과 평가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는 것만 봐도,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잠금 장치들로는 ‘진짜 인재’를 유지하지 못하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오히려 오래도록 함께 일하고, 조직이 만들게 된 가치에 공감해줄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이들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것, 그리고 제대로 된 ‘보상’을 주는 것이 조직을 더욱 오래도록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 판단하는 것 같다.

칼럼 제목처럼 이상적 행복의 직장은 없다. 하지만, 전혀 없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일터에 대한 행복감 보다는 오히려 일하는 행복을 더 추구해야 한다. 그게 곧 이상적 행복에 가깝게 가기 위한 내 노력이 될 것이다. 직장에 기대기 보다는 그 안에서 내가 이루고 싶어하는 일을 찾고, 보다 가치 있게 만드는 즐거움이 나에게 더 큰 직장 속에서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싶다.

겉으로 보여지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런 직장을 만드는 것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조건들은 노력으로 충분히 변할 수 있다. 내가 만들어낸 성과로 조직에 더 높은 가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으로 말이다. 만약 개선되지 않는다면 퇴직 또는 이직이라는 선택도 가능하다. 직장인이 대표보다 유리한 것 중 하나가 우리는 늘 직장을 옮겨 다니며 내가 필요한 경험과 실력을 얼마든지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은 더 이상 나에게 행복을 보장해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봐왔던 직장의 개념에서 탈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 행복의 직장은 없지만, 행복한 일 또는 행복한 일을 함께 만들어갈 사람들은 있다. 자신의 일하는 행복을 남에게 맡기지 말자. 대표 또는 조직이 만들어놓은 룰 안에서 안정적으로 지금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마치 서서히 끓을지 모르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린 직장에서 일을 보다 뾰족하게 갈고 닦기 위한 수련의 터로, 갖고 싶어하는 프로페셔널함을 멋지게 가꾸는 곳이다.

세상 모든 직장인들이 바라는 이상적 직장은 없다. 오로지 행복을 주는 ‘일’만 있을 뿐이다. 각자가 바라는 이상이 다르기 때문에 무작정 눈에 보이는 조건 등을 쫓아 보다 높아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 파블로프의 ‘개’가 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