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달 28일 국내 스타트업인 플런티를 인수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비브랩스를 인수하고 올해 갤럭시S8을 통해 빅스비를 야심차게 출시했으나 기술력만 두고 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던 중이었습니다.

봇빌더 경쟁력을 중심에 두고 활동한 플런티는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 스퀘어에 선발돼  활동하고 있었기에 삼성전자와의 궁합도 잘 맞았고 무엇보다 토종 인공지능 스타트업 첫 인수합병, 인재 확보의 측면에서 큰 화제였습니다.

 

사실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사랑은 유명합니다. 지난해 3월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을 선언하며 임직원 600명이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 위에서 아래에서 내려오는 '지휘서신'의 성격이 강했다면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포식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자유로운 스타트업 문화 그 자체였습니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C-랩을 통한 사내 스타트업 스핀오프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국내 스타트업 지원에도 전사 차원에서 나서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삼성전자가 플런티를 인수하자 업계는 축제분위기로 뒤덮혔습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라는 국내 최고의 기업이 스타트업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캐나다에 인공지능 연구소를 설립하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외부 행보는 활발했지만 유독 토종 스타트업과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삼성전자가 토종 스타트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유럽에서 열렸던 IFA 2016 직후 삼성전자 임원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당시 그는 "중국은 화웨이를 비롯해 많은 중소 기업들이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으나 우리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빼면 딱히 두각을 보이는 곳이 없다"면서 "야구로 치면 이승엽과 이종범만 있지, 라인업을 두텁게 만들 후속주자들이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삼성전자의 플런티 인수로, 상황은 변하게 됐습니다.

▲ 지난해 스타트업 삼성 선포식. 출처=삼성전자

여기서 저는 오래된 논쟁을 하나 꺼내볼까 합니다. 바로 스타트업의 최종 목표.

카카오가 김기사를 운영한 록앤올을 626억원에 인수한 지난 2015년 4월. 당시 스타트업 업계는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토종 스타트업의 기술력이 ICT 대기업에 성공적으로 인수되며 록앤올은 모든 스타트업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반론도 나왔습니다. "스타트업을 키워 대기업에 넘기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가?"라는 질문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말했습니다. "왜 제2의 네이버, 카카오가 될 생각은 하지 않고 모두 피인수에만 매달리느냐"

이 논쟁은 창업가 정신과 맞물리며 당시 상당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현장의 스타트업 사람들은 "세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지금 국내 스타트업의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에 인수합병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반면 직접 경영보다 컨설팅, 경영학 전문가들은 "인수합병과 투자에만 매달리니까 국내 스타트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일침한 대목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하는 셈입니다.

사실 정답이 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넥슨이 코빗을 912억원에 인수하고 SFC가 110억원으로 빌리를 손에 넣은 것이 창업자 정신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일까요?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풀러스와 럭시 등 카풀앱 충돌을 봐도 토종 스타트업은 강력한 규제를 받고있으며, 지난 3년간 스타트업 생존율을 비교하면 미국이 58%, 영국이 59%, 스웨덴이 75%의 수준인 반면 국내는 38%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스타트업이 대기업만 바라보며 뛴다? 스타트업은 영원히 '스타트업'에만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삼성전자의 플런티 인수가 이색적인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ICT 기업의 스타트업 인수는 이제 일상이 될 정도지만 대형 제조업체의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토종 스타트업 인수는 지금까지의 인수합병과는 결을 달리하는 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왜? 소프트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은 한 나라의 단위에서 힘을 모으기 용이합니다. 그러나 제조업을 중심에 둔 삼성전자와 같은 대형 제조업체가 ICT 소프트웨어의 영역인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그것도 국내에서 찾았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이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의 영역에서 소프트웨어의 분야로 넘어오려는 기존 제조업체가 새로운 비상을 위해 소프트웨어 토종 스타트업을 품었다는 것은, 소프트웨어 일변도인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새로운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래된 논쟁, 스타트업의 목표를 보면 뭔가 다른 그림이 보입니다. '맞다 그르다'의 결론을 떠나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수합병을 통한 '엑시트'와 제2의 네이버, 카카오가 되려는 의지를 저울질한 스타트업 업계는 이제 선택지가 많아졌습니다. 이건 단순히 선택의 문제입니다.

▲ 왼쪽부터 함샤우트 공동대표 김재희, 함시원. 출처=함샤우트

홍보대행사 함샤우트가 5일 서울 소동동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종의 스타트업 보육 플랫폼을 공개했습니다. 스타트업에 지분을 투자해 홍보부터 인력 매칭, 유통 판로까지 지원한다는 로드맵입니다.

질문했습니다. "스타트업과 협력해 투자를 단행하고 성공하게 된다면, 엑시트가 목표인가? 아니면 지속적인 성장이 목표인가?" 사실 스타트업에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함샤우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며, 그것에 대한 책임도 투자자로서 우리가 진다"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여기에 정답이 있습니다. 선택지가 많아졌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길도 많아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해묵은 논쟁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