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 품목을 확대하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약사회 측 강력한 반발로 회의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논란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과 유통업계에서는 약사회와 의약품 업계의 ‘집단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편의점 판매 의약품 판매 확대를 논의하는 제5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회의를 열었으나 끝내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복지부 측은 “잠정 보류된 이번 안건에 대한 회의는 이달 중 열리는 6차 회의에서 다시 논의 할 것”이라고 4일 밝혔다. 

여기에는 약사회 측 강력한 반발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회의에 참가한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이 회의장에서 편의점 의약품 취급 품목 확대에 반대하며 자해소동을 벌였고 회의는 그 즉시 중단됐다. 

현행 약사법상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은 최대 20개까지 지정할 수 있다.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에 관한 고시’에서 제안하는 개정 절차만 따르면 법 개정 없이도 현재의 13개에서 20개까지 취급 품목을 늘릴 수 있다. 

복지부는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재검토 논의는 소비자들과 편의점 업계의 긍정 반응에 힘입어 지난 2012년부터 매년 편의점 약품 품목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그 때마다 약사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4차례 회의에서 제산제(制酸劑·위산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제)와 지사제(止瀉劑·설사약)를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이에 대해 편의점 업계는 의약품 판매 품목 확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제시했다. 편의점 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일주일 중 의약품이 가장 많이 판매되는 요일은 일요일(22%), 토요일(16.6%)로 약국이 쉬는 주말이었다. 고객 방문 시간대로는 약국이 문을 닫는 밤 8시~자정의 비중(35.7%)이 가장 높았다. 즉, 주말 이틀 혹은 8시~12시 사이 편의점 의약품 판매 비중이 전체 의약품 매출 비중의 3분의 1을 넘는 것이다. 

편의점 의약품 수요 증가는 매출로도 나타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완제의약품 유통정보 통계'에 따르면 편의점 판매 13개 안전상비의약품 매출은 2013년 154억원, 2014년 199억원, 2015년 239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일련의 통계에서 알 수 있듯, 편의점 의약품 판매는 오로지 소비자의 편익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며 현재 편의점에 판매되는 의약품들은 약사회에서 우려하는 약물 오·남용 문제와 거리가 먼 품목들이 대부분”이라면서 “편의점 의약품 판매 매출이 점점 증가해 200억~300억원대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편의점 매출 상위 3사(CU·세븐일레븐· GS25)의 연간 매출이 약 14조원(2016년 기준)임을 고려 할 때 의약품 매출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으로 편의점들이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의약품 판매를 확대하려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한 지적”이라고 말했다. 

▲ 현재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일반 의약품들.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편의점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은 편의점에서 소비자들이 구매 할 수 있는 의약품이 각각 3만 가지, 2000가지 종류에 이르는 것과 비교할 때, 편의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뒤쳐져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를 대하는 약사회를 포함한 의약품 업계의 반발은 만만치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부작용 가능성이 미미한 약이라도 기본적으로 모든 의약품의 처방과 사용은 전문가의 처방과 지도가 필요한 것이 원칙이며 이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약품 업계의 이러한 반발에도  이를 동조하는 의견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지난 2000년 전문의약품의 일반 판매를 제한하는 의·약분업 조치 이전부터 일반의약품은 여러 유통채널에서 판매되고 있었고 ‘국민 건강증진을 위함’이라는 원칙으로 대부분의 약사들은 이에 동의했다. 약 20년에 가까운 일반 유통채널 판매의 선례가 있었음에도 의약업계가 새삼스럽게 격렬하게 반대를 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의약업계에 몸담았던 한 전문가는 “업계의 이러한 반발은 각 약국들이 소위 ‘마진’을 붙여 판매해 수익을 내는 품목이 일반의약품으로 한정돼있기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발생하는 매출이 편의점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해 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국민 건강증진 우선 원칙’을 무색하게 만드는 집단 이기주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기치 못한 반응에 불가피하게 회의를 중단한 복지부도 이번 문제를 어떻게든 결론지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8개월 이상 논의를 계속해 온 만큼 어떤 방식이든 결론을 낼 것”이라면서 “이달 중으로 위원회를 다시 소집해 논의를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